공동번역 성서
에스델 5장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궁중 예복을 입고 왕의 거처가 바라보이는 대궐 안뜰에 들어섰다. 마침 왕은 궁궐 문이 마주보이는 용상에 앉아 있다가
에스델 왕후가 뜰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반가워하여 손에 들고 있던 금지팡이를 에스델에게 내밀었다. 에스델이 가까이 다가가서 지팡이 윗머리에 손을 대었다.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기도를 마치고 상복을 벗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었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으로 성장한 에스델은 모든 사람을 지켜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그리고 왕후는 두 시녀를 데리고 나섰다.
왕후는 한 시녀가 옷자락을 받쳐들고 동반하는 가운데, 또 한 시녀에게 우아하게 몸을 기대고 나왔다. 왕후가 한 시녀에게 나른한 자태로 몸을 기대었던 것은 그 몸이 너무나 허약해져서 혼자서는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시녀가 땅에 끌리는 왕후의 옷을 받쳐들고 뒤를 따랐다.
그 여자는 넘쳐흐르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희색이 만면하여 마치 사랑의 꽃이 핀 듯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여러 개 문을 지나서 왕 앞으로 나갔다. 왕은 금과 보석이 번쩍이는 왕복으로 성장을 하고 옥좌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어마어마하였다.
왕은 위풍당당한 얼굴을 들어 노기띤 눈으로 왕후를 쳐다보았다. 왕후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실신하여 창백해진 얼굴로 자기를 따라온 시녀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러나 하느님은 왕의 마음을 변심시키어 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셨다. 왕은 몹시 걱정스러워져서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 왕후가 정신차릴 때까지 그를 품안에 껴안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였다.
"에스델, 이게 웬일이오? 우리는 서로 남매간이오. 안심하시오.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오! 내 명령은 평민들에게만 해당되오.
가까이 오시오."
왕은 황금장을 번쩍 들어 에스델의 목에 대고 껴안으며 "나에게 이야기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에스델은 말하였다. "임금님, 저에게는 임금님께서 하느님의 천사처럼 보였고, 제 마음은 임금님의 위풍에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정말 훌륭한 분이시고 임금님의 얼굴에는 인자하신 정이 흐릅니다."
에스델은 이렇게 말하다가 실신하여 쓰러졌다.
왕은 몹시 근심하였고, 그의 모든 시종들은 에스델을 깨어나게 하려고 최선을 다 기울였다.
왕이 물었다. "에스델 왕후, 웬일이오? 무슨 간청이라도 있소? 이 나라 반이라도 주리다."
에스델이 말했다. "소첩이 오늘 임금님을 모시려고 잔치를 차렸습니다. 좋으시다면 하만과 함께 와주셨으면 합니다." 에스델의 초청을 받고
왕은 곧 영을 내렸다. "왕후의 소원이니 하만을 곧 들라고 하여라." 그리하여 왕은 하만과 함께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술이 한 순배 돈 다음 왕이 에스델에게 물었다. "그래, 왕후의 청이 무엇이오?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말하시오. 이 나라 반이라도 떼어주리다."
그러자 에스델은 이렇게 아뢰었다. "소첩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겠습니다.
임금님께서 소첩을 귀엽게 보아주신다면, 또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내일도 잔치를 베풀고 두 분을 모시고 싶습니다. 하만과 함께 다시 한번 와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말씀대로 청을 드리겠습니다."
그 날 하만은 기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리를 물러나오다가, 대궐 문간에 이르러 모르드개가 자기 앞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굽실거리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 하만은 속이 뒤집혔지만
꾹 참고 집에 돌아가 친구들과 아내 제레스를 불러들였다.
그 자리에서 자기는 재산도 많고 지식도 많은데다가, 왕이 자기를 어느 고관 대작보다 높은 자리에 앉혀주었음을 자랑하고 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그뿐인 줄 아는가? 에스델 왕후께서 손수 베푸신 잔치에 나 혼자만이 왕과 자리를 같이 했다네. 게다가 내일도 왕과 함께 초대받았지.
그런데 대궐 문간에서 일보는 모르드개라는 그 유다인 녀석만 눈에 띄면 속이 뒤집힌단 말이야!"
아내 제레스와 친구들이 하만에게 의견을 내어놓았다. "높이 쉰 자짜리 기둥을 세우고, 내일 아침 왕께 청을 드려 모르드개를 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개운한 마음으로 왕과 함께 잔치에 나가십시오." 하만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 곧 기둥을 세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