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사도행전

10장1)

코르넬리우스가 환시를 보다

1

카이사리아에2) 코르넬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부대라고3)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이었다.

2

신심이 깊은4) 그는 온 집안과5) 함께 하느님을 경외하며,6) 유다7) 백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8)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3

어느 날 오후 세 시쯤,9) 그는 환시 중에10) 자기가 있는 곳으로 하느님의 천사가11) 들어와 “코르넬리우스!” 하고 부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4

그는 천사를 유심히 바라보며 겁에 질려, “천사님,12)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너의 기도와 너의 자선이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 좋게 기억되고 있다.13)

5

이제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14)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7

코르넬리우스는 자기에게 말하던 천사가 떠나가자, 집종 두 사람과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사들 가운데 신심이 깊은 사람 하나를 불러,

8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나서 야포로 보냈다.15)

베드로가 환시를 보다

9

이튿날 길을 가던 그들이 그 도시 가까이 이르렀을 즈음, 베드로는 기도하러 옥상에 올라갔다. 때는 정오쯤이었다.16)

10

그는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베드로는 무아경에 빠졌다.17)

11

이어서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18)

12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19)

13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20)

14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21)

15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6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를 찾아가다

17

자기가 본 환시가 무슨 뜻일까 하며 베드로가 속으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알아내고서 문간에 다가섰다.

18

그리고 사람을 불러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이 여기에 묵고 있는지 물었다.

19

베드로가 환시에 대하여 계속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그에게22) 이르셨다. “지금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20

그러니 일어나 내려가서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거라. 내가 그들을 보냈다.”23)

21

그래서 베드로는 그 사람들에게 내려가, “내가 바로 여러분이 찾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그들이 대답하였다. “의롭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온 유다 민족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이, 선생님을24) 집으로 모셔다가 말씀을25) 들으라는 지시를 거룩한 천사에게서 받았습니다.”26)

23

베드로는 그들을 맞아들여 그곳에 묵게 하였다. 이튿날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떠났는데, 야포에 있는 형제들 가운데 몇 사람도 그와 함께 갔다.27)

24

그다음 날 그는 카이사리아에 들어갔다. 코르넬리우스는 자기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5

베드로가 들어서자 코르넬리우스는 그에게 마주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26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리고 코르넬리우스와 이야기하며 안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28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 사람에게는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찾아가는 일이 불법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더럽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28)

29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데리러 왔을 때에 이의 없이 따라온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무슨 일로 나를 데리러 사람들을 보냈는지 묻고 싶습니다.”

30

그러자 코르넬리우스가 대답하였다. “나흘 전 바로 이맘때 곧 오후 세 시에29) 저는 집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눈부신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제 앞에 서서

31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코르넬리우스야, 하느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너의 자선을 기억하고 계시다.

32

그러니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그는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다.’

33

그래서 제가 곧 선생님께 사람들을 보낸 것인데 참 잘 와 주셨습니다. 지금 저희는 주님께서 선생님께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 함께 하느님 앞에30) 모였습니다.”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설교하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31)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32)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33)

3634)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35)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36) 부어 주신 일도37) 알고 있습니다.38)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39)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40) 그들이41)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42)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43)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44)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45)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46)

다른 민족 사람들이 성령을 받다

44

베드로가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47)

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48)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49)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50)

48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다.51)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다.52)

주석
1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이야기가 10,1에서 11,18까지 펼쳐지는데, 그 중심부와(10,44-48) 절정에(11,18) 비유다인들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다른 민족들이 “생명”(11,18)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먼저 베드로가 받아들이고(10,48; 11,15-17), 이어서 예루살렘 교회도 그것을 인정한다(11,1-18). 이 일이 장소적으로 당장 널리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중대할 뿐만 아니라 좋은 선례로서 장차 풍부한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15,7 각주; 15,14 각주 참조). 그리고 이 일은 명백히 하느님 자신의 주도에 따른 것으로 제시된다. 이렇게 중요한 하느님의 개입은 각각 두 번에 걸쳐 서로 짝을 이루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곧 코르넬리우스의 환시와(10,3-8 = 10,30-33. 그리고 11,13 참조) 베드로의 환시가(10,9-16 = 11,5-10. 그리고 10,28 참조) 각각 두 번씩 이야기되고, 성령의 활동도 한 번은 작은 개입으로(10,19-20. 그리고 11,12 참조), 한 번은 큰 개입으로 이야기된다(10,44-46. 그리고 11,15 참조).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은 관련된 사람들에게 점진적으로밖에 드러나지 않는다(10,5.17.20.33.45; 11,3). 또 이들은 카이사리아(10,1-8), 야포(10,9-23), 다시 카이사리아(10,24-28),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에서(11,1-18) 이루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거치며 하느님의 계획을 밝혀냄으로써 그것을 실현시키게 된다.

2

10,1─11,18 단락의 첫 일화가 일어나는 곳이 카이사리아이다(이곳에 관해서는 8,40 각주도 참조). 이 단락에서 천사와 성령께서 번갈아 나오시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8,26 각주; 23,8 각주 참조).

3

이탈리아에서 모집된 군사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린다.

4

‘신심’ 또는 ‘신심이 깊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3,12; 10,7. 그리고 17,23 참조)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뒤늦게야 받아들인 낱말이며 개념이다(티모테오 1서와 2서; 티토서; 베드로 2서).

5

“집안”은 여기와 11,14; 16,15.31; 18,8(1코린 1,16 참조)에서 가족과 하인들만이 아니라, 때로는 직업상 가깝거나 인간적으로 친한 사람들까지도 가리킨다(7절과 24절 참조). 보통 “집안” 전체가 개종하여 세례를 받는다(16,15.31.34; 18,8; 1코린 1,16).

6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그 기원이나 의미가 다 유다교와 직결된다. 이 경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고, 또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계약의 모든 계명에 대한 충실성과 다른 이들에 대한 성실성까지 내포한다. 그리고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래도 세상은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지혜로 이끌어 준다(잠언 1,7; 집회 1,11-20 참조). 그렇기 때문에 사도 9,31에서 이 용어를 가지고 교회의 모든 믿음과 삶을 표현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처럼(2,11 각주 참조) 할례를 받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유다교를 받아들인 비유다인들도 가리킨다(13,16.26. 그리고 18,7 참조).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이 바로 이러한 이들로서(22절과 35절 참조), 이들과 함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넘어온다(13,43 각주 참조).

7

“유다”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8

코르넬리우스는 카이사리아에 사는 유다인 공동체에 자선을 많이 베푼 것이다(루카 7,5에 나오는 백인대장도 참조). 무엇보다도 그의 이러한 관대함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게 된다(4절과 31절). “자선”에 관해서는 9,36 각주도 참조.

9

“오후 세 시”의 직역: “제9시.”

10

사도행전에서는 “환시”가 자주 나온다(7,55-56; 9,10.12; 10,17.19; 11,5; 12,9; 16,9.10; 18,9 각주). 그러나 이 용어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시는 데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11

“하느님의 천사”(10,3.7.22; 11,13)가 30절에서는 “사람”(또는, 남자)으로 표현된다(루카 24,4.23 참조). “천사”에 관해서는 23,8 각주도 참조.

12

“천사님”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키리오스는 본디 ‘주인’을 뜻하는 말로서, 하느님이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주님”으로 번역된다. 이 말은 상대방을 공손히 부를 때에도 사용된다(9,5 각주; 요한 4,11 각주 참조). 그래서 여기에서는 “천사님”이라고 옮긴다. 그러나 “주님”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13

직역: “너의 기도들과 너의 자선들이 기억으로 하느님 앞에 올라갔다.” 여기에서 “기억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기념일이나 기념비처럼(탈출 12,14; 여호 4,7) 기억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또는 특별히 하느님의 “기억”이나 생각을 일으키도록 제정된 제물이나(레위 2,2) 기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토빗 12,12). 아무튼 이 말의 뜻은 하느님께서 코르넬리우스의 기도와 자선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좋게 생각하신다는 것이다(31절 참조).

14

“이제”는 세례로 종결되는(48절) 결정적인 단계의 시작을 알린다. 성경 본문은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몇몇 수사본들에서만 6절 끝에, “네가 해야 할 일을 그가 너에게 말해 줄 것이다.”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9,6 참조). 자세한 사항은 천천히 드러난다(22절 각주). 그리고 모든 것은 손님 접대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펼쳐진다(6.18.23.32절).

15

고대 근동과 성경에서 사자(使者)나 심부름꾼은 (증인처럼) 두 사람씩 갔다. 여기에서는 군사까지 동행하여 세 사람이 간다(10,19; 11,11 참조).

16

“정오”의 직역: “제6시.” 이는 공적으로 정해진 기도 시간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이들은 정오에도 하였을 것이다.

17

“무아경”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엑스타시스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쓰인다. 무아경에 빠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면서 환시를 보게 되는데(18,9 각주), 여기에서처럼 이 환시 중에 하느님이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11,5; 22,17).

18

“큰 아마포 같은” 이하의 그리스 말 본문과 그 해석이 특히 분명하지 않다. 베드로는 일종의 거대한 천막을 보는 것 같다. 꼭대기는 하늘에 그냥 있으면서 그 네 귀퉁이만 땅에 닿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주요 수사본들에 따르면, 거대한 아마포가 위에서 공중에 떠 있어 마치 사람들이 그 네 귀퉁이를 잡고 내리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식탁보처럼 생각해야 하는 당위성은 없다. 아무튼 이 환시의 몇 가지는 에제 1장의 환시를 상기시킨다. 곧 하늘이 열리는 것, (네 방위 기점으로) 넷이라는 수, 짐승들(다음 각주 참조), 그리고 (하느님의) 목소리 등이다.

19

이러한 동물의 열거는 거의 비슷한 내용의 11,6처럼 창세 1,21.24(6,7; 7,14 참조)의 명단을 생각하게 한다. 사도행전의 이 명단은 누락된 것이 없지는 않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을 가리킨다(13절 각주 참조).

20

이 “소리”는 곧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으로, “잡아먹어라”라는 명령은 깨끗한(또는, 정결한) 짐승과 더러운(또는, 부정한) 짐승 사이의 구분이 이제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15,20 각주 참조). 그러나 20절에서도 시사되는 이러한 계시의 궁극적 의미는 28절과 34절에 가서야 분명해진다.

21

베드로는 천상의 목소리가 자기에게 내리는 명령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바로 앞의 각주 참조). 그는 선량한 유다인으로서, 짐승들을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나누어 더러운 짐승을 먹는 것을 금하는 레위 11장의 규정을 충실히 지킬 따름이다. 더러운 짐승은 사람을 제의적(祭儀的)으로 부정하게 만드는 원천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22

일부 수사본들에는 “그에게”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아, 이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23

여기에서 성령께서는 물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짐승들을 보고 하였듯이(14절) “주저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 이것이야말로 베드로가 금방 본 환시의 뜻에 관하여 품은 의문에 대한(17절과 19절) 한 가지 대답인 것이다. 베드로는 이 대답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유다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상종하면 안 되는데도(28절 각주 참조),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23절).

24

“선생님”의 직역: “당신.” 33절에서도 마찬가지다.

25

“말씀”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이 밖에 사건이나 “일”을 뜻하기도 하고(37절, 44절 등), 때로는 “말씀”과 “일” 둘 다를 뜻하기도 한다. 곧 사도행전에 자주 나오듯이, ‘말씀’으로 그 뜻이 밝혀지는 일(= 하느님께서 역사 안으로 개입하시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다.

26

5절에서는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말이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그 기대의 대상이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선포된다(24절과 33절 참조). 그리고 그 내용은 37-44절에 가서야 밝혀진다.

27

베드로와 함께 이 “형제들”이 성령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내리신 일의 증인이 된다(10,45; 11,12).

28

여기에서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시의 깊은 뜻을 밝힌다. 이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더럽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깨끗한 짐승과 더러운 짐승의 구분을 폐지시키심으로써, ‘더러운’ 동물을 먹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서 그 더러움 또는 부정이 전염될 수 있다고 하는(레위 11) 가능성까지도 없애 버리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 사람들을 찾아가거나(20절 각주 참조) 특히 그들과 함께 식사하지 못하게(11,3) 하는 주된 걸림돌이 없어진다. 하느님께는 사람들의 도덕적·종교적 가치만이 중요한 것이다(35절 각주 참조).

29

“오후 세 시”의 직역: “제6시.”

30

일부 수사본들에는 “하느님 앞에” 대신에 “주님 앞에”, 또 다른 수사본들에는 “당신 앞에”로 되어 있다.

31

‘입을 열다’라는 표현에 관해서는 8,35 각주 참조.

32

하느님께서는 혈통이나 사회적 신분 등에 따라(다음 각주 참조) 사람을 가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33

하느님께서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기준은 이제 더 이상 제물처럼(필리 4,18; 1베드 2,5) 제의적 정과 부정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경외”(2절 각주 참조), “의로움”(곧 한 사람의 종교적·도덕적 삶),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이야말로 유다인이든 다른 민족들이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정화해 주는 것이다(15,9). 이로써 베드로가 본 환시의 의미가 완전히 밝혀진다. 깨끗한 음식과 더러운 음식이 문제가 되는 로마 14,18과 앞뒤 문맥도 참조.

34

34-35절의 중요한 말씀에 이제 사도들이 하는 설교의 새로운 본보기가 이어진다(2,14 앞 소제목 각주 참조). 먼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밝히고(36절), 그분께서 수행하신 사명의 여러 단계를 공관 복음서의 구상에 따라 짧게 회상한 다음(37-39ㄱ절), 끝부분 곧 예수님의 죽음, 부활, 발현, 사도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일을 따로 이야기한다(39ㄴ-42절). 그리고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대로 예수님을 믿으라는 함축적인 초대로 끝을 맺는다(43절).

35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선포하시는 구원의 말씀이다(시편 107,20; 147,18; 이사 52,7 참조). 이 말씀이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그 대상으로 하였지만(13,46 각주), 이제는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 또는 만물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2,36 각주 참조).

36

“성령”과 “힘”에 관해서는 1,8 각주 참조.

37

“일”에 관해서는 22절 각주 참조.

38

“알고 있습니다”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청중은 베드로가 말하는 일들을 알 뿐만 아니라, 36절과 전체 설교에서 드러나는 이 일들의 의미까지 이미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이미 처음부터 신앙인이다. 이러한 연유로(11,17 참조) 이들이 성령을 받게 된다(44절. 그리고 11,15 참조).

39

38절의 말씀에 관해서는 (이사 61,1을 인용하는) 루카 4,18-21 참조. 루카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 내려오신 일을(루카 3,21-22),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으로 이야기한다. 같은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할례 받지 않은 신자들에게도 내려오신다(44절).

40

“증인”에 관해서는 1,8 각주; 1,22 각주 참조.

41

“그들”은 유다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 같지는 않다(2,23; 3,13-15; 13,28 참조).

42

더러 사도들의 설교에서도 언급되는 예수님 부활의 날이(1코린 15,4 참조) 사도행전에서는 여기에만 나온다(루카 9,22; 18,33; 24,7.46 참조).

43

“백성”은 유다인들을 가리킨다. 이제 유다 백성은 특권적 증인들과 구분되어 어떤 의미로는 한 가지 우선권만을 지닌다. 곧 복음의 첫 대상이라는 것이다(36절과 42절). 그러나 이 복음이 이제는 베드로에 의해서 다른 민족들에게도 선포된다(43절 각주 참조).

44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심판관”의 직책을 지니셨다는 사실을(7,25 각주 참조) 직접적으로는 여기와 17,31에서만 이야기한다(2티모 4,1; 1베드 4,5와 마태 25,31-46 참조). 유다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심판”은 본디 하느님만 지니시는 특권이다(로마 2,16; 3,6; 1베드 1,17 등). “산 이들과 죽은 이들”에 대한 심판은 물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1,11) 이루어질 것이다(예컨대 1테살 4,13-18에 나오는 “죽은 이들”과 “산 이들” 참조).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에게는 2테살 1,5; 1베드 4,17과 요한 복음서에서처럼, 이 심판이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기도 하다는 점이 배제되지 않는다.

45

예수님에게서 구약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다는 것은 사도들이 하는 설교의 근본 사항인데(3,18), 베드로의 이 설교에서는 바로 여기에서 분명히 언급된다. 저자는 (예컨대 로마 1,17; 9,33; 10,13 등에서 인용되는) 믿음과 죄의 용서에 관한 예언서 본문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46

이 말씀은 베드로가 설교 첫머리에서 한 말씀을 완결 지으면서(35절 각주), ‘코르넬리우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말씀도(11,18) 예고한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모든 사람의 주님이신 예수님에게서 이제는 유다인이든 다른 민족이든 믿는 이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11,17 참조). 믿음만이 진정으로 모든 이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이다(15,9).

47

베드로가 말을 끝내기 전에 또는 시작하였을 때에(11,15) 성령을 내리심으로써, 하느님(그리고 예수님: 2,33)께서는 사도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이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건에서도 손수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48

“할례 받은 신자들”은 곧 유다인들을 뜻한다.

49

이 문장은 오순절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2,4.11.17). 이제는 ‘다른 민족들의 오순절’인 것이다(11,15; 19,2 각주 참조).

50

직역: “…… 이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한 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는 성령의 내림이 세례 전에, 그리고 안수와(6,6 각주)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안수를 하든 하지 않든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성령을 내리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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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직접 세례를 주지는 않는다(8,12.36 참조). 이는 이미 바오로의 공동체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듯이(1코린 1,14-15.17), 원칙적으로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나 그곳의 교역자들이 세례를 베푸는 후대의 관습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야포에서 온 신자들이 이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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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례를 받은 이들이 생활 공동체, 그리고 손님 접대도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식사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카이사리아에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