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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 성경을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성문서로 나눈다. 예언서는 다시 크게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갈라진다. 전기 예언서에서 여호수아기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판관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에서 가장 덜 알려진 시대에 지파들이 펼쳤던 생활의 일부를 엿보게 해 준다. 그 시대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때부터 왕정이 출현할 때까지이다.
1. 판관기의 구조
이 책의 구조는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첫째 서문은(1장) 이스라엘 지파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파들은 공동으로 보조를 맞추어 서로 협조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보다는, 저마다 따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파마다 영토를 나누어 받았지만, 그 안에는 계속 가나안인들이 성읍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지파들은 이러한 가나안인 성읍들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2,1-5에서는, 가나안 땅을 쉽고 빠르게 차지하게 해 주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 반대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일차 설명이 주어진다.
가나안 정복 시대를 설명하는 이러한 예비 서술에 이어서, 판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2,6─16,31). 이 판관 시대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역사 가운데에서 특별히 이 시기가 지니는 종교적 뜻을 밝히는 둘째 서문으로 도입된다(2,6─3,6). 모세에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주님께 충성을 다한 시대였다. 그러나 판관 시대는 한마디로 불충의 시대로 묘사된다. 이러한 내용의 서문에 이어, 판관들의 행적을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판관들은 모두 열둘인데(바락과 아비멜렉은 판관이 아니다.), 그들에 관한 서술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그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판관 오트니엘은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으로부터(3,8 각주 참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3,7-11), 왼손잡이 에훗은 모압 임금 에글론을 죽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며(3,12-30), 여예언자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 야빈에 대한 저항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다(4,1─5,31). 이 뒤에 힘센 장사 기드온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6,1─8,35), 판관 입타의 인도 아래 동쪽 암몬족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10,6─12,7), 그리고 삼손이 서쪽 필리스티아족에 대항하여 싸운 업적이(13,1─16,31) 소개된다. 대판관들로 불리는 이들 6인들은 소판관들인 삼가르(3,31), 톨라(10,1-2), 야이르(10,3-5), 입찬(12,8-10), 엘론(12,11-12), 압돈(12,13-15) 6인을 사이에 두고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판관기는 왕정이 수립되기 전에 이스라엘에 팽배해 있던 무질서와 혼란을 보여 주는 두 개의 부록과 함께 끝을 맺는다. 첫째 부록은 단 지파의 이주와 단 성소의 기원을 이야기한다(17─18장). 그리고 둘째 부록은 기브아 주민이 저지른 악행을 서술하고, 이어서 범죄자들의 처벌을 거부하는 벤야민 지파와 그러한 벤야민인들을 징벌하려는 다른 지파들 사이의 전쟁을 이야기한다(19─21장).
2. 판관과 “구원자”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전체적으로 “판관”이라고 불리는데, 이 명칭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칭호의 복수는 2,16-18에만 나오는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용례는 성경 본문 자체에서 흔하지 않다. 반면에, 왕정 이전의 시기를 ‘판관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의 전통에서 잘 알려져 있다(2사무 7,11; 2열왕 23,22; 룻 1,1). 사실상 판관들의 이야기 자체에서는 ‘판관’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이 명사와 같은 어근에서 나오는 동사 샤팟, 곧 우리말로 ‘재판하다’, 그리고 판관기에서는 특별히 ‘판관이 되다, 판관으로 일하다’로 옮길 수 있는 동사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활동을 서술하는 데에 상당히 자주 쓰임을 볼 수 있다(3,10; 4,4; 10,1-5; 12,7.8-15; 15,20; 16,31). 또 이 동사가 해당 판관 이야기의 틀을 이루는 부분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쓰임이 편집자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임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 이 동사는 단순히 ‘재판하다’, 그래서 ‘정의를 펼치다’라는 뜻만이 아니라, ‘지휘하다, 지배하다’라는 뜻까지 담고 있다. 이 동사를 일반적으로 ‘재판하다’로 옮기고, 판관기에서는 ‘판관이 되다’, ‘판관으로 일하다’로 번역해 오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넓게 이해해야 한다. 사실 히브리 말에서는 이 동사가 권위와 권한을 행사하는 실질적 직책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관으로 일한다’는 것은 재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지도와 통치까지도 내포한다. 이러한 쓰임은 이웃 민족들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특정한 인물들이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재직하였다고 할 때, 이 판관기에서 무공을 전해 주는 이들이 모두 실제적으로 이 직책을 가졌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판관’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업적을 서술하는 또 다른 용어, 곧 ‘구원하다’라는 동사가 있기 때문이다(3,31; 6,15; 10,1). 오트니엘과 에훗이 바로 “구원자”로 불린다(3,9.15).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느님 자신이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구원을 실현시키신다(3,9; 6,36-37; 7,7; 10,13). 이로써 ‘구원자 인간’과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표현의 이원성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판관기를 봉독할 때에 드러나는 인간적 전망과 신적 전망의 이중성을 가리키는 표지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우선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서로 직접적인 관련 없이 형성되어 내려오던 여러 전통 또는 이야기 모음들이다. 이른바 ‘소(小)판관들’에 관한 기술은(10,1-5; 12,8-15) 간략한 내용만 전하는 옛 명단에서 유래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소판관들’의 명단 가운데에 자리한 입타의 이야기는(10,6─12,7), 어떻게 ‘판관’에서 ‘구원자’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확인하게 해 준다. 입타는 ‘판관’이면서 동시에 ‘구원자’였다. 다른 판관들의 이야기는 옛 전통들에 근거하여 확장되고 보충되고 합쳐진 것이다.
3. 신학적 전망
판관기는 단순히 이러한 전통들과 모음들만이 아니라, 그 너머로 우리의 주의를 끄는 신학적 틀을 제공한다. 그냥 사건들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관한 종교적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학적 전망은 특별히 서문(2,6─3,6), 6장의 앞부분(7-10절), 그리고 입타 이야기의 입문에서(10,6-16) 발견할 수 있다.
이 신학적 전망은 일련의 도식적 표현 정식에 따라서 특징지어진다. 첫 번째 정식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이다(2,11; 3,7.12; 4,1; 6,1; 10,6; 13,1). 이 말의 내용을,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는(2,13; 3,7; 10,6) 또 다른 표현 정식이 구체적으로 밝혀 준다. 그리고 이러한 불충의 결과는, ‘주님께서 그들을 적들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는 말로 서술된다(2,14; 3,8; 4,2; 6,1; 10,7). 이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 정식이 나온다(3,9.15; 4,3; 6,6; 10,10). 당신 백성의 이러한 탄원에 주님께서는 판관(2,16) 또는 구원자를 세우심으로써 응답하신다(3,9.15).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종결 부분에 또 다른 표현 정식들이 나온다. 곧 ‘원수는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하였다.’(3,30; 8,28. 그리고 4,23-24 참조), 또는 ‘이 땅은 몇 해 동안 평온하였다.’는 정식이다(3,11.30; 5,31; 8,28).
이러한 표현 정식들에서 네 단계로 된 종교적 논리가 나온다. 곧 죄-벌-회개-구원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하느님의 징벌을 불러오지만,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의 회심은 구원자의 파견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역사 신학을 보게 된다. 이는 후대에 와서 판관들의 이야기에 보태진 것으로, 전체 이스라엘에 적용되는 신학이다. 그러나 이 신학적 틀은 판관들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과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이 신학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우선은 옛 전통들과 이야기 모음들을 수집한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편집자들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편집자들을 신명기계 저자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미흡한 가설일 뿐이다.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신명기계 역사’를 구성하는 다른 책들에서는, 위에서 말한 네 단계로 된 신학적 명제가 바로 그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 밖에도 서문이 여럿이라는 사실, 가나안 땅 정복이 늦어진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설명들(2,6─3,6),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판관들의 수도 열둘로 끝맺으려는 편집자들의 의도 등은, 이 책의 편집 작업이 상당 기간,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드러낸다. 아무튼 판관기에 나타나는 신학적 전망은 틀림없이 신명기계 편집자들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전망을 강화하였다고는 하더라도, 직접 창출하였다고는 단정할 수가 없다.
판관기의 두 부록(17─21장) 역시 옛 전통들을 이어받은 것인데, 유배 중에 또는 유배 이후에 첨가되었다. 이 부록들이 사제계 문헌들에(‘오경 입문’ 참조) 나오는 어휘를 쓰고 있는 데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옛 사료들을 내포하면서 유다 지파를 옹호하는 경향으로 특징지어지는 1장의 서문이 어느 시대에 첨가되었는지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4. 판관기와 역사
이렇게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판관기의 편집 과정을 둘러싸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역사가에게 여호수아의 죽음에서 왕정의 탄생에까지 이르는 시대에 관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판관 시대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 보고, 이스라엘 몇몇 지파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느슨하게 연결해 주는 열두 지파 동맹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통일성을 확인할 수는 없다. 이 역사는 결국 특정 지파들 사이의 친근성 또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여러 집단의 이야기, 이미 차지한 영토를 보존하기 위한 전쟁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단편적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좁게는 판관들을, 넓게는 판관 시대를 연대순으로 쉽게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이렇게 간략히 제시되는 연대 순서가 문제를 안고 있다.
판관기는 어떠한 역사적 연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각 판관의 직무 수행 기간만 제시할 뿐이다. 각 판관이 활동하였다는 햇수를 합치면 410년이 되는데, 이 수치는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연대 사료와 들어맞지 않는다. 대부분이 편집자들에게서 유래하는 각 판관의 활동 햇수는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지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근거를 찾아내어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밖에도 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기간을 가리키는 40이라는 수가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은, 판관기에 나타나는 자료들의 대략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사실 판관 시대의 연대는 왕정 시대가 시작하는 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시기를 함께 고려하면서 계산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에 판관기에서 전해지는 전통들은 모두 기원전 1200년과 1020년 사이에 자리 잡게 된다.
5. 이스라엘 신앙의 책
역사가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난해한 문헌인 판관기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인들이 지녔던 신앙의 산물이다.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와(5장) 같이 이 책을 구성하는 가장 오래된 본문들에서부터 이미 이스라엘인들의 확신이 드러난다. 곧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어려운 때마다 당신의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신학적 틀은, 계속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들려는 이스라엘의 나약성과, 억압당하는 당신 백성의 지파들을 구원하시려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시는 하느님의 인내를 먼저 강조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
물론 판관기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성인도 아니고 군자도 아니다. 관습들이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이고, 도덕 개념들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시대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에훗의 계략(3,12-30), 야엘이 시스라를 살해하는 일(4,17-22), 자기 딸을 죽여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입타의 행동(11,34-40), 그리고 삼손의 애정 행각(14─16장) 등은 우리에게 놀라움뿐만 아니라 당혹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충격적 현실을 완화시키거나 부도덕한 현실을 미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신의 영을 받은 지도자들(3,10; 6,34; 11,29; 13,25; 14,6.19; 15,14), 인간적으로 볼 때에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보내시어 한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행동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의롭게 인도할 수 있도록 주님의 영을 받아야 하는 이스라엘의 임금을 예시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임금은 다시 다양한 은사를 지닌 주님의 영을 충만히 받는 메시아를 예고한다(이사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