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사무엘기
입문
1. 책의 이름
사무엘기를 두 권으로 나눈 것은 최근의 일이다. 1사무 28,24에 대한 마소라 본문의 각주는 이 대목이 “책의 중간”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스 말 번역자들은 이 책을 두 두루마리에 옮기면서 ‘첫째 왕국기’, ‘둘째 왕국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대중 라틴 말 성경도 이 구분을 받아들여 이 책을 ‘제1열왕기’와 ‘제2열왕기’라 불렀으며(오늘날 우리가 열왕기 상권과 하권으로 부르는 책들은, 각각 ‘제3열왕기’와 ‘제4열왕기’로 불렸다.), 15-16세기부터 히브리 말 성경도 두 권으로 분류되었다.
히브리 말 본문과 그리스 말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중대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칠십인역의 역자들이 마음대로 그리스 말 번역본에 첨가나 삭제를 했을 가능성은 없다. 쿰란에서 발견된 히브리 말 본문 가운데 이미 출판된 희귀본들은 때때로, 칠십인역이 번역 대본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본문에 더 가깝다. 그러나 수사본들이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원문”에 더 가깝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칠십인역이나 그 히브리 말 번역 대본은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문장들을 삭제하려는 경향을 지녔으며, 마소라 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본문보다 덜 까다로운 수정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미 초세기 이전부터 두 개의 본문이 공존하였던 것 같다.
사무엘기라는 이름은 사무엘 예언자를 이 책의 저자로 여긴 옛 라삐 전승에서 비롯된다(바바 바트라 14b). 후대의 라삐들은 1역대 29,29-30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의 작품이 나탄과 가드를 통하여 이어졌다고 추정하였다(바바 바트라 15a).
비록 사무엘기라는 정의 자체가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는 다분히 인위적인 면이 있다. 특히 사무엘기 하권의 21─24장은 같은 문체와 의도를 지닌, 다윗 왕조 내부의 사건들에서 시작하여 솔로몬의 즉위에까지 이르는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이 이야기를 이어 가는 열왕기 상권의 처음 두 장이 2사무 21─24장으로 말미암아 중단되는 것이다. 이 삽입 대목은 판관 17─21장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이 경우에도 구원자 판관들의 이야기가 판관 17─21장으로 중단되었다가 1사무 1장에서 다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2. 책의 내용
일종의 “부록”인 2사무 21─24장을 떼어 놓고 보면 현재의 사무엘기는 연대순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첫째 부분은(1사무 1─7) 사무엘이 태어나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이스라의 구원자, 대판관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배경은 실로에 있는 계약 궤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이다.
사무엘이 늙자, 외부의 위협으로 불안해진 백성은 그를 찾아와 임금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한다. 신정 제도를 옹호하는 사무엘 예언자는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선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이스라엘 원로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사울을 임금으로 세운다. 그런 다음에 사무엘은 물러난다. 왕정에 대한 논란과 사울에 관한 이야기들이 1사무 8─12장, 곧 둘째 부분을 이룬다.
셋째 부분은(1사무 13─15) 사울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아말렉족과 벌인 전쟁들을 다룬다. 사울이 전쟁들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두 가지 죄를 범하고, 이 때문에 사무엘은 그에게 암시적인 말로 왕좌에서 쫓겨나고 다윗이 그 뒤를 이으리라고 알려 준다.
넷째 부분으로, 다윗이 사울 앞에 소개된 때부터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성별될 때까지의 이야기는 1사무 16장에서 2사무 5장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다윗의 왕위 등극사”에서 그려진다. 다윗은 어릴 때 사무엘에게 성별되어 사울을 섬기다가 필리스티아의 거인을 이기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는 전쟁에서 뛰어난 전공을 쌓아 모든 사람, 특히 사울의 아들인 요나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사울은 병적인 시기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울은 여러 차례에 걸쳐 경쟁자 다윗을 제거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자 결국 도망을 쳐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필리스티아인들을 섬기게 되지만 군대를 이끌고 동족을 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마침내 사울과 요나탄이 길보아에서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다윗은 사울의 후계자들과 싸움을 벌여 잇단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사울의 집안은 갈수록 약해진다.
다섯째 부분은(2사무 6─8) 사무엘기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다루는 2부작의 연결 부분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실로의 궤를 안치하는데, 이는 자신이 점령한 성읍을 왕국의 수도로 성별하는 행위이다. 또한 나탄의 예언은 다윗의 편을 들어 다윗 왕조가 왕국의 중심이 되도록 뒷받침해 준다. 8장의 기록은 예루살렘 왕국의 창시자가 실제 왕국의 정복자였음을 상기시킨다.
2부작의 후반부는 2사무 9─20장의 내용인데, 여기에 1열왕 1─2장도 덧붙여야 한다. 여기에는 여러 사건들이 얽혀 있는데, 결국에는 솔로몬의 등극으로 끝을 맺는다. 솔로몬의 탄생과 이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 그리고 솔로몬의 등극에 장애가 되었던 다윗의 아들들, 곧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 등이 어떻게 제거되었는지를 들려준다.
“다윗의 왕위 계승”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삽입된 2사무 21─24장은 두 편의 시가와 여러 인물들에 관한 기록, 그리고 두 가지 자연재해와 그 액땜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이 이야기들은 역사적, 종교적 면에서 중요한데도 앞 장들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 사무엘기와 이스라엘의 역사
사무엘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오랜 기간을 다루는데, 적어도 그 마지막 시기는 정확하게 밝힐 수 있다. 우리는 다윗의 노년기, 곧 기원전 970년에 솔로몬이 즉위하기 몇 해 전까지의 기록을 보게 된다. 판관들의 역사에서처럼 초기의 일화들은 그 연대를 분명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이 시기와 관련된 사무엘기의 전승들에 들어 있는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필리스티아의 지배에 관한 정보, 특히 필리스티아인들이 독점했던 철기류 제조에 관한 기록(1사무 13,19-21),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장소들을 많이 언급하는 전쟁 이야기들(1사무 13; 17; 31), 도망 다니던 다윗에 관한 일화 등이 이에 속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다윗과 사울 집안 사이에 얽힌 이야기와 압살롬의 반역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갈등은 한층 역사적 근거가 분명한 전승이다. 2사무 8장이 들려주는 다윗의 전투들도, 비록 외적인 증거들은 없지만 결코 거짓이라 할 수 없다. 기원전 10세기 초에 다윗 왕국이 건설된 시기는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방어적 처지에 놓여 있을 때였고,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통치 아래 번영을 구가하며 그 세력이 지중해와 홍해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다윗의 신하들에 관한 언급과(2사무 8,15-18; 20,23-26) 2사무 24장이 들려주는 인구 조사는 영토를 조직적으로 정비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가진 것이라곤 군대밖에 없던 사울 시대 이후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반면에 사무엘기에서 왕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힘들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위협이 원로들에게 사무엘을 찾아가 임금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 어디에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사울을 암몬인들의 정복자이자 야베스 길앗의 구원자로 소개하는 1사무 11장의 전승을 잘 살펴보면 왕정 시작에 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승이 사울의 즉위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과 역사적으로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사울이 어디에서 왕위에 올랐는가? 라마에서인가, 미츠파에서인가, 길갈에서인가, 아니면 여러 장소에서 거듭 즉위하였는가? 사울의 통치에 관한 기록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1사무 13,1은 그의 통치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음을 암시해 준다.
4. 편집 요소들
사무엘기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기록한 연대기가 아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여러 자료들을 한데 모은 문학 작품이다. 이 자료들 가운데에는 대단히 오래된 것들도 있다. 이 작품은 사울과 다윗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두 전승들을 모아 놓고 있지만, 이 전승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본디 그 원초적 사료가 어떠했는지를 밝혀낼 수는 없다. 이 기록들은 아마도 솔로몬 치하에서 편집되고,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에 보충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사무엘기가 “신명기계”(여호수아기-판관기-사무엘기-열왕기)라고 하는 역사학파의 작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신명기계 작품은 어법과 문체로 쉽게 구별된다.
주석가들은 “다윗 왕위 계승사”(2사무 9─20과 1열왕 1─2)가 비교적 일관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창조 이야기로(창세 2) 시작하는 옛 민족사를 전해 주는 오경의 “비사제계”(야훼계) 전승과 거의 같은 문학적 특성을 보여 준다는 데에 동의한다. 압살롬의 반란 이야기를 보면 구체적이고 생생한 세부 묘사로 가득한데, 이 사실로 미루어 이 이야기는 후대에 편집되었다기보다는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쓴 작품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계승사”의 핵심을 이루는데, 솔로몬의 탄생 이야기로(2사무 9─12) 시작하여 아도니야의 패배 이야기로(1열왕 1─2) 끝맺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솔로몬 등극사”라 부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들에서는 전체적으로 객관적 상황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저자의 개인적 성향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나탄의 예언과(2사무 7) 계약 궤 이야기에(2사무 6) 들어 있는 오래된 요소들을 포함하여, 다윗 왕위 계승사 앞에 나오는 기록의(1사무 16─2사무 5) 기원을 밟아 올라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등극사 또는 다윗의 왕위 등극사가 생각보다 더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볼 때, 중복 기사들은 매우 특이하다. 다윗이 사울을 섬기기 위하여 입궐하고, 다윗을 해치려는 사울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며, 요나탄이 다윗의 편을 들고,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피신하는 이야기, 또 지프 주민들이 다윗의 피신처를 밀고하고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 주는 일화 등은 모두 중복되어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은 다윗의 등극사가 오경을 구성하고 있는 “사료”들을 확장한 것으로 여겼다. 여기에는 이미 구두로 정착되거나 부분적으로 기록된 여러 전승들이 들어 있었는데, 이야기의 저자들이나 편집자들이 이 전승들을 보존하면서 고정된 표현 정식이나 틀을 유지시키고, 핵심 낱말을 사용하여 각 대목의 주요 주제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중복 기사가 있지만, 다윗 왕위 등극사와 다윗 왕위 계승사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아서 두 저자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볼 수 있겠다. 곧 예루살렘 궁궐 서기들이 다윗 임금을 찬양하는 구두 전승들을 뽑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다윗 임금의 이상화(理想化) 과정은 편집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어진다. 이 사실은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1사무 16장의 의도가 이 두 번째 임금을 첫 번째 임금과 같은 차원에 놓고자 하는 데 있으며, 분명히 후대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15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울이 벌인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들은 하나의 편집 작품이다. 여기에서 사울 시대에 필리스티아인들과 치른 전쟁들에 관한 옛 전승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전승들에서 진짜 영웅은 다윗의 친구인 요나탄이다. 그리고 이 전승들은 대체적으로 사울에게 적대적인 경향을 보인다(1사무 13─14). 아말렉과의 전쟁 이야기가(1사무 15) 옛 전승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탓에 사울 왕가가 멸망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도입된 것으로, 문학적 손질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사울의 파멸은 그를 이어 곧 임금이 될 다윗의 이야기에 꼭 필요한 서막이다.
왕정의 기원을 다루는 1사무 8─12장도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도 다양한 기원을 가진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은 비록 손질을 거치기는 했지만 분명히 옛 전승들이다. 벤야민 지파의 설화에서 나와 각색된 것임에 틀림없는 암나귀 이야기(9,1─10,16), 미츠파에서 제비로 임금을 뽑은 전승(10,17-27), 사울을 적국 암몬을 물리친 영도력 있는 판관으로 그리는 11장의 이야기가 그 좋은 예들이다. 8장은 왕정의 제정과 함께 야기된 신학적 문제점을 곧바로 보여 준다. 비록 주님께서 임금을 세워 달라고 하는 백성의 청을 끝내는 승낙하시지만, 이 장은 그러한 백성의 간청을 단죄한다.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무엘이 동족들에게 경고한 이른바 “임금들의 권한”을 이스라엘 임금들의 악습을 미리 단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원전 이천 년대 말기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행해졌던” 임금들의 관행을 상기시킨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8장의 근간은 오랫동안 학계에서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옛 전승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8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연설은 사무엘기의 다른 연설들과 마찬가지로 신명기계 역사가의 손질을 거쳤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연설은 이야기를 늘리는 데 가장 적합한 문학 유형이다. 12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별사 역시 전형적인 신명기계 역사가의 작품이다. 이 모든 작품에서 사울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라는 사실만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될 뿐이다. 저자의 관심은 누가 첫 번째 임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느냐가 아니라 왕정 제도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사무엘기의 첫 부분에서(1사무 1─7) 중심인물은 사무엘이다. 이 인물은 이상적인 신앙인으로 소개되는데, 때로는 성소와 관련지어지며 예언직의 사명을 받는다. 동시에 저자는 그에게서 당대의 참된 구원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1,27-28 참조). 이것은 사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사무엘의 선택을 강조하는 이유는 두 임금을 성별한 그가 진정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심부름꾼임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1─7장의 다른 요소들은 사무엘기 전체의 주요 관심사들을 고려해야 그 의미가 잘 드러난다. 일례로서 계약 궤에 얽힌 사건들이 매우 상세하게 다루어진 이유는 이 사건들이, 다윗이 세운 도성의 보호자로 삼은 거룩한 궤를 영광스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2,27-36에 나오는 “믿음직한 사제”에 대한 예고는 솔로몬 시대에 제정된 차독 가문의 사제직에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2,7에서 간결하게 표현된 높임과 낮춤이라는 반명제는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게 맞서는 사무엘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울과 그의 집안에 맞서는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렇게 사무엘에 관한 일화는 이어서 나오는 일화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6장을 구성하는 옛 전승들의 편집자는 왕정 지지파로 볼 수 있다. 7장에서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관심과 문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역사가가 판관기의 역사를 완성하려는 의도로 7장을 재편집한 것이다.
5. 왕정에 관한 교훈
이야기 저자들의 정치적, 종교적 경향을 살펴보면 사무엘기의 구성에 관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사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들려주는 긴 이야기라기보다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왕정이다. 저자는 왕정 제도의 애매모호함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통치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문제는 왕정 제도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풀려 나갔다. 주님과 그분의 대리자인 사무엘이 결국 사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왕정을 먼저 요구하였던 백성이 즉각 단죄를 받은 것은 아마도 왕정이 인간적 원의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의 군주 제도는 민주적인 것도 전제적인 것도 아니라 오직 신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사울은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듯 백성이 ‘요구하였기’ 때문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무엘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놀라운 이야기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경건한 사람의 권위를 드높여 준다. 사무엘기는 사울의 파멸을 불러온 잘못들의 종교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임금이라 해도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무엘기는 예배의 대상과 관습과 인물에도 관심을 가진다. 만져서는 안 될 계약 궤와(2사무 6,7) 예루살렘의 제단에(2사무 24) 관한 일화는 그 좋은 예들이다.
사무엘기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임금은 다윗이다. 저자는 다윗이 용맹한 군인으로서 경력을 쌓았음을 드러내고 그가 거둔 전공들,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호감, 그의 관대함과 겸손 등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애초부터 이상적 인물로 부각시킨다. 이 이상적 임금이 주님께 보인 순종의 정신과 그의 탄원,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하느님의 뜻을 묻고자 한 사실 등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기에 다윗은 간음을 저지르고 난 뒤에 나탄 예언자의 질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탄은 이스라엘에서 임금이라 할지라도 율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윗에게 일깨워 주었다. 한편 사울과는 달리 다윗의 후손은 벌을 받지 않는다. 그는 자식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리를 물려받으리라는 보장을 받는다. 이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서서히 부상한다. 사무엘기는 결국 유다 왕조를 옹호하는 작품이다. 나탄의 예언에 따르면(2사무 7) 임금들이 개인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기는 해도 다윗 집안이 예루살렘의 왕좌를 끝까지 지키게 되어 있었다. 이 예언의 골자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편집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p><p>유다의 군주 제도가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믿었던 시기에 나왔을 이 종교적 이념은 다행스럽게도 사무엘기가 구원 역사 안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훗날 언젠가 이스라엘의 임금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 왕국 전체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침내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에 결정적 심판이 내려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에 주신 영원한 보증을 계속 믿으면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약속에 합당한 인물이 나오기를 고대하게 된다. 그분이 바로 이상적 임금이신 메시아로서, 인성으로 볼 때 그분은 분명히 기원전 천 년경에 주님께서 뽑으신 이의 후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