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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구약 성경에는 문학 유형상 역사서로 취급할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이를 크게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와 후기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역사를 보고 평가하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 관심이 집중된다.

1. 신명기계 역사서 입문

1) 예언적 특성을 지닌 역사서

여호수아기는 일반적으로 ‘역사서’라 불리는 성경의 새로운 장을 연다. 유다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전기 예언서’라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유다교의 전통에서는 ‘역사서’의 대부분을 예언자들이 쓴 것으로 여긴다(탈무드, 바바 바트라 15a 참조). 사무엘이 판관기와 사무엘기 일부를 썼고, 가드 예언자가 사무엘기를 완성하였으며, 예레미야 예언자는 열왕기의 저자라고 여겨진다. 여호수아기는 여호수아가 직접 쓴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집회 46,1에서 예언자로 소개된다. 또한 많은 예언자들이 이 역사서들 안에 등장한다. 드보라, 사무엘, 가드, 나탄, 엘리야, 엘리사, 이믈라의 아들 미카야, 이사야, 훌다, 그리고 이 밖에도 다수의 예언자들이 등장한다. 열왕기의 절반 가까이는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47장 가운데에서 22장이 할애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서 안에서 예언자들이 등장하는 시점이다. 왕정이 시작할 때, 두 왕국이 분열될 때, 아람인들의 위협을 받을 때, 아합 임금 치하에서 이스라엘 종교가 혼합주의의 위협을 받을 때, 아시리아인들의 침공을 받을 때, 요시야 임금 치하에서 법전이 발견되었을 때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늘 예언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들은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예언자들과 관련이 있었으며, 이들이 사건의 향방을 좌우하였다. 어쩌면 예언자들이 사건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이 역사서들이 예언자들의 설교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전기 예언서’라고 부른다 해도 과히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2) 신명기계 역사서의 기원

그러나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은 여호수아 시대부터 바빌론 유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속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 유형상 ‘역사서’로 분류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특히 이 역사서들은 예언자들뿐 아니라 신명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문체나 신학 사상도 신명기를 이어받고 있다. 이 역사서들은 신명기 사상을 토대로 하여, 바빌론 유배로 끝나는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역사에 예언적 해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명기계 역사서’라 불린다. 바빌론 유배가 끝나갈 무렵인 기원전 6세기 중반 이후 신명기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활동을 이어받은 이른바 신명기계 학파가 모세 시대부터 자신들이 살던 시대, 곧 기원전 550년경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한데 묶어 정리한 것이다. 신명기계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배를 당하게 된 이유와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들에 따르면 유배는 무의미한 사건이 아니었다. 유배는 이스라엘이 섬기던 주님께서 힘이 없는 신이시라거나,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의 뜻을 존중하지 않은 백성과 임금들에게 주님께서 내리신 벌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신명기계의 주장이다. 곧 이스라엘에게 닥친 모든 재앙은 백성과 임금들의 죄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명기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기본 메시지이기도 한데, 신명기계 역사서의 편집자들은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머물던 동안 내내 이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어떤 면에서 신명기계는 역사서를 통하여, 왜 나라가 멸망하였고, 왜 유배라는 벌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신명기계가 더 관심을 두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며 모세와 맺으시고 당신께서 파견하신 예언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상기시키셨던 계약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신명기계는 계약을 토대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이념적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간혹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닥친 재앙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애쓴 성전과 궁중 서기관들의 집단이 편집한 작품이다. 이들이 옛 전승들을 수집하여 유배에 비추어서 재해석한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시리아인들의 손에, 유다를 바빌론인들의 손에 넘기신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 신명기가 강조하는 두 가지 기본 요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예루살렘으로의 예배의 중앙 집중화와(신명 12) 주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요시야 임금의 종교 개혁이 신명기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볼 때(2열왕 22─23 참조), 신명기계 학파가 요시야 임금 시대에 생겨났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요시야 임금이 죽은 뒤,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옛 이야기들과 문서들을 한데 모아 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다루었던 사료들은 다양하다. 예컨대 분열되었던 남북 왕국의 궁중 실록들은 문서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판관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전설 형태로 구두로만 전해져 왔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다양한 사료들을 모아 여호수아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연결되는 역사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수집한 사료의 이야기가 훼손되었거나 불충분할 경우에는 다른 이야기나 설명으로 빈 부분을 채워 넣기도 하였다. 때로는 독자들이 특정한 역사의 단계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이야기의 틀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 작업은 주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의 긴 말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신명기가 하느님의 약속과 요구를 상기시키는 모세의 긴 설교 형식으로 짜였듯이(신명 1─30), 신명기계 역사서도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강조하는 여호수아의 고별사(여호 23─24), 판관 시대를 주님에 대한 백성의 배반의 시기로 소개하는 긴 설명(판관 2,10─3,6), 사무엘의 설교(1사무 12), 다윗의 기도(2사무 7),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이 드린 기도(1열왕 8) 등을 들려준다. 또한 2열왕 17장과 25장에서는 편집자 자신들의 주석을 첨가하기도 한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이 나란히 배열되었는데, 어떤 것들은 신빙성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 과장된 듯한 인상도 준다. 이야기들은 ‘하느님의 은총 - 이스라엘의 죄 -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 이스라엘의 죄’라는 도식으로 신명기계의 신학을 끌어간다.

신명기는 마치 머리말처럼 신명기계 역사서의 앞에 놓여, 이 역사서의 주 관심사를 분명히 드러낸다. 신명기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누구든지 이스라엘 신앙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알아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으로, 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충을 벌하셨는지를 이야기하고, 다른 하나는 “땅의 약속”으로, 왜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을 잃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신명기는 수백 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명기는 모세의 권위로 계약의 법들을 설명해 주고, 예언자의 정신으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신명기계 역사서의 단계

신명기계 역사서의 편집자들은 신명기의 사상을 토대로 그들의 작품을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첫 단계는 여호수아의 영도로 이루어진 가나안 땅의 정복 시기이다. 여호수아기가 이 단계를 다루고 있다. 둘째 단계는 강력한 지도력이 결핍되었던 판관 시대이다. 이 단계는 판관기와 사무엘기 상권이 다룬다. 셋째 단계는 다윗 임금 시대로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최고조에 이른 단계이다. 사무엘기 하권 대부분이 이 단계를 다루고 있다. 넷째 단계는 솔로몬에서 시작하여 왕국의 분열을 거쳐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이고, 마지막 다섯째 단계는 유배이다. 열왕기 상·하권이 이 넷째와 다섯째 단계를 다룬다. 신명기계 편집자들은 이 다섯 단계로 이스라엘의 번영과 쇠퇴를 동시에 알려 주고자 한다.

첫째 단계: 이 단계는 이스라엘에게 영광과 자랑을 안겨 준 위대한 시기였다.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압도한다.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내리신 복으로 해석되었으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오로지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께 충실할 때에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이 거듭 강조된다. 이 사실이 여호 1장에서 분명히 밝혀지며, 신명기계 역사가들이 첨가한 22─24장에서 재차 강조된다. 여호수아기는 승리한 전쟁 기사뿐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을 상징하는 계약 궤의 역할(3장과 6장), 길갈 같은 성소의 중요성(4─5장), 전리품을 훔친 아칸을 처벌하는 경고성의 일화(7장) 등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신명기계 신학을 설명한다. 22─24장에 들어 있는 여호수아의 고별사는 신명기계 메시지의 백미다. 주님께서 지으라고 명령하신 곳 외에서는 어떠한 제단도 허용되지 않으며(여호 22 = 신명 12) 백성은 마음을 다하여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여호 23─24 = 신명 4─11).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남긴 이 마지막 연설은 신명기에서 모세가 남긴 유언에 필적한다.

둘째 단계: 여호수아기의 대부분이 축복과 순종의 시기를 반영한다면, 둘째 단계는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가 보여 주는 반역과 불순종의 정신을 고발한다. 판관기는 가나안 땅의 점령에 대하여 여호수아기와는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기가 적을 이기는 데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강조하는 반면, 판관기는 오랫동안의 정착 과정, 지역적으로 일어나는 반란, 많은 곤경을 거쳐 이스라엘이 점차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정착 과정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관점을 갖고 묘사하는 데에서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독자들은 여호수아기와 판관기를 비교함으로써 서로 다른 세대들이 계약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알 수 있다. 판관기가 들려주는 영웅들의 놀라운 모험담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주 죄를 지었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구원해 주셨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죄 - 벌 - 하소연 - 판관의 등장 - 승리와 평화’라는 도식이 되풀이되면서, 신명기의 경고 내용이 분명히 그려진다. 사무엘은 둘째 단계에 등장한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판관으로서 임금을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된다. 그렇지만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사무엘을 통하여 마지막 경고를 던진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주님의 손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임금을 치실 것이오”(1사무 12,15).

셋째 단계: 다윗 임금의 시대는 계약에 가장 충실했던 때이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땅에 더없이 큰 복을 내리신 시기이다.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이미 그 전에 쓰였던 다윗 임금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을 손에 넣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는 왕위를 두고 다윗이 사울과 벌인 싸움(1사무 13─31), 다윗의 아들들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인 투쟁(2사무 9─1열왕 2) 등도 포함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던 이 이야기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지켜 주셨으며, 사울과 다윗의 아들들의 도전으로부터 어떻게 그를 보호해 주셨는지를 보여 준다. 신명기계는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에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시는 내용을 담은 다윗과의 계약을 이 이야기들의 중심에 두고 있다(2사무 7). 동시에 이 계약은 모세와의 계약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임금들의 통치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보살피신다는 표시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다윗과 그를 잇는 임금들에 대한 큰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신명기계는 임금들이 악을 행하면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시리라 경고하고(2사무 7,14), 다윗이 죽은 뒤에 만일 임금들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설 경우,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취소하실 수도 있다고 선언한다(1열왕 9,6-7).

넷째 단계: 이 단계에서 신명기계는 임금들의 재위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문헌들을 손에 넣고 있었다. 그들은 임금들이 이룬 정치적 업적에 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임금들이 계약에 얼마나 충실하고 거짓된 예배를 피하였는지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북 왕국(이스라엘) 임금들은 모두 악하고, 남 왕국(유다) 임금들 가운데에서도 아사, 히즈키야, 그리고 요시야 임금만이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 세 임금은 모두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따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임금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역사는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멀리하도록 하느님께서 거듭 보내신 예언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바알 신 숭배에 맞서 승리한 엘리야이다. 따라서 신명기계가 묘사하는 이 넷째 단계의 특징은 ‘하느님 말씀의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경고든 약속든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예들은 대단히 많다. 예를 들어 1열왕 11,29-32와 1열왕 12,15; 1열왕 13,3과 2열왕 23,16-18; 1열왕 14,6-11과 1열왕 15,29; 1열왕 14,12-13과 1열왕 14,17-18; 2열왕 1,6.16과 2열왕 1,17; 2열왕 10,30과 2열왕 15,12; 2열왕 21,10-12와 2열왕 24,3; 2열왕 22,20과 2열왕 23,30 등이다.

다섯째 단계: 열왕기 하권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과정을 일어난 그대로 묘사한다. 나라의 멸망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백성들의 악행이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한다. 다윗 임금의 후계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하고 하느님께 충실했던 요시야 임금의 개혁도 백성들이 자초한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게 할 수는 없었다(2열왕 23,26-27).

2. 역대기계 역사서 입문

1) 역대기계 역사서의 특성

바빌론 유배 이후, 또 하나의 큰 역사서가 만들어진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주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대한 충성이라는 기본적인 신학관을 토대로 이스라엘 왕국의 형성과 번영과 쇠퇴를 서술하였다. 이에 비해 다른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독립된 왕국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역사 서술의 형식을 빌려 강조한다. 이 역사서를 문학 유형상 일반적으로 역대기계 역사서로 분류하는데, 이에 속하는 작품은 역대기 상·하권과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이다. 일부 학자들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네 권의 책은 본디 모두 한 사람의 저자 또는 편집자가 집필하거나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들 수 있다. 우선 이 작품들은 동일한 문체와 공통된 기본 사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2역대 36장 끝부분의 내용이(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 에즈 1장의 시작 부분에서 되풀이된다. 또한 족보와 통계, 성전과 예배 등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신명기계 역사서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사료들을 토대로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 작품인 데 비해서, 역대기계 역사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된 단일 작품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역대기계 역사서가 집필 또는 편집되던 시기는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에 돌아와 살고 있었고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였다. 역대기계 역사가의 생각에,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올바른 예배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부분에서 신명기계 역사가 서술하는 바와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을 들려주면서도 뚜렷한 차이점도 보여 주게 된다. 예컨대 그는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된 뒤의 북 왕국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한 사울에 관해서도 아주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다. 그에게는 다윗 집안만이 합법적인 왕조였던 것이다. 그는 다윗 임금에 관한 서술에서도, 신명기계 역사서에서처럼 전쟁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성전과 예배와 관련되는 부분만을 주로 언급한다. 또 다윗과 관련된 기사들 가운데에서 신명기계 역사서에 들어 있는 다윗 임금의 범죄 이야기 같은 것은 빼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사는 선별하여 짧은 내용도 길게 늘려 서술한다. 신명기계 역사가도 다윗이 음악을 사랑하고 직접 노래도 지었다는 전승과 다윗이 성전 건축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대기계 역사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이 낮에도 밤에도 성전을 생각하고 손수 노래를 지었으며, 성가대를 조직하고 예배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묘사한다. 역대기계 역사가가 보기에는 자신이 물려받은 과거의 역사 기록이 불충분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요 관심사였던 성전 예배 규정들을 다윗이 명령하는 것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계 역사가가 수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그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2) 역대기계 역사서의 저작 시기

역대기계 역사서의 역사적 배경과 그 내용을 볼 때, 그 집필 또는 편집 시기는 당연히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 이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자 또는 편집자는 사제계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역대기계 역사서의 내용이 이 사실들을 뒷받침해 준다. 첫째, 신명기계 역사서와 비교해 볼 때 레위인들의 역할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예를 들어 2열왕 11,4에 언급되는 카리 사람들의 역할을 2역대 23장에서는 레위인들이 대신한다. 2사무 6장과 1역대 15장 모두 계약궤를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사무엘기에서는 레위인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데 반해서 역대기에서는 레위인들이 그 임무를 담당한다. 둘째, 역대기의 서술은 키루스의 통치 시작 때까지이지만, 1역대 3장에서는 다윗의 족보를 즈루빠벨(기원전 520년경) 이후 11대까지 소개다. 셋째, 느헤 12,11.22에 소개되는 야뚜아는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대사제직을 맡고 있었다. 넷째, 1역대 29,7에 언급되는 다릭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임금 시대에 처음으로 제조된 동전으로서, 팔레스티나에서는 유배 이후에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다섯째, 에즈라기에 나오는 ‘페르시아 임금’이라는(에즈 1,1; 3,7; 4,3; 7,1) 표현은 더 이상 페르시아 제국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임을 암시한다. 이상 열거한 이유들 때문에 역대기계 역사서의 집필 또는 편집 시기는 기원전 300년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를 읽다 보면 두 사람이 동시대인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느헤미야가 에즈라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주장을 견지한다. 어떤 이들은 에즈라의 활동 시기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통치 말기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느헤미야의 활동 시기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통치 때로, 에즈라의 활동 시기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통치 때로 본다(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는 기원전 397년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에즈라가 주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에서 이미 성벽 재건이 이루어진 사실을 언급하는데(에즈 9,9),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 시대에 이루어졌다. 둘째, 느헤미야는 엘야십 대사제와 동시대인이었는데(느헤 3,1), 에즈라는 엘야십의 아들 여호하난과 동시대인이었다(에즈 10,6). 느헤 12,11.22에서는 여호하난이(요나탄 또는, 요하난) 엘야십의 손자로 소개된다. 셋째, 엘레판틴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 따르면 여호하난이 대사제직을 맡고 있던 때가 기원전 408년이다.

3. 후기 역사서 입문

우리말 성경에 배열되어 있는 순서에 따라 후기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은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이다. 여기에 판관기 다음에 배열되어 있는 룻기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룻기 ‘입문’ 2 참조). 비록 역사서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카베오기 상·하권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신명기계 역사서나 역대기계 역사서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서라고 부르기보다는 ‘교훈 사화’로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성경에 널리 알려져 있는 ‘비유들’과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비유와 마찬가지로 교훈 사화도 주의 깊게 읽어야만 그 메시지를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다. 마카베오기 상·하권도 교훈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들은 실제로 유다인들이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와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에서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보존하고자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벌였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에 비해서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는 각각 판관 시대, 아시리아 시대, 신바빌론 시대,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로 가르쳐 주고자 한다. 따라서 교훈 사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느님 백성을 상징한다. 룻기는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주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고백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이민족도 회개하여 주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빗기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주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명대로 정직하게 살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유딧기에 나오는 네부카드네자르는 역사적으로 아시리아의 임금이 아니라 신바빌론의 임금이었다. 유딧기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아시리아와 신바빌론을 결부시켜 하느님 백성의 원수를 부각시키려는 듯하다. 이로써 유딧기는 유다 백성에게 주 하느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아무리 강력한 원수라도 물리칠 수 있음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유딧(유다인 여자)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다 백성을 상징한다. 에스테르기 역시 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유다 백성은 결코 멸망할 수 없다는 확신을 동족들에게 심어 주고자 한다. 이 교훈 사화들이 집필된 시기는 모두 유다 백성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압제 아래서 민족의 생존과 신앙을 위협받고 있던 때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