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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성경은 무엇인가? 목차만 훑어보아도 성경은 하나의 ‘문고’, 매우 다양한 책들의 총서임을 알 수 있다. 이 책들의 ‘입문’을 참조해 보면 이와 같은 첫인상은 더욱 확실해진다. 약 십 세기에 걸쳐 작성되었기에 그 출처가 서로 다르며, 어떤 책들은 히브리 말로(몇몇 구절들은 아람 말로), 또 어떤 책들은 그리스 말로 저술되었다. 이 책들은 또한 이야기, 법전, 훈계, 기도, 시, 서간, 소식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을 보여 준다.

이 총서의 이름으로 불리던 ‘책들’(그리스 말로 ta biblia)은 단수로 ‘책’(그리스 말로 hè biblos 또는 tò biblion), 곧 ‘성경’이 되었다. 이처럼 성경은 단 한 권으로 되어 있는 가장 탁월한 책으로 여겨진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1. 성경은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성경 저자들과 편집자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백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타나심과 부르심을 증언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하게 되는 반응들을(예를 들어 질문, 탄원, 찬미, 감사 등)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교 성경의 첫 부분인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역사는, 이집트 탈출로부터 유배 이후 유다교 탄생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하나의 독특한 백성으로 만들어 준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구약 성경 입문’ II 참조). 이스라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신 한 분 하느님, 곧 야훼(주님)를 고백한다. 상당수의 성경 본문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밝힐 때에 법률 개념인 ‘계약’을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이제 이 계약과, 계약에서 흘러나오는 율법에 자신의 모든 삶을 내맡기도록 부름을 받는다. 성경 가운데 히브리 말로 된 모든 부분들은 이와 같은 계약 신학을 하나의 특징으로 내세운다.

기원후 70년과 135년에 종교적 중심지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부터 급속하게 흩어져 나갔던 유다 백성은 유다 공동체 안에서 그 맥을 이어 가는데, 이 공동체의 파란 많은, 때로는 비극적인 역사는 대부분 유배의 땅에서 펼쳐진다. 이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은 다양한 경향들은 모두 성경, 특히 하느님에게서 직접 나온 것으로 받들어지던 율법을 기초로 한다. 유다인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을 근거로 전승들의 범위 내에서 그들의 관습을 일구어 나간다. 이 전승들은 옛 이스라엘의 삶 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기원후 2세기 국가가 멸망하고 난 다음 편집되기 시작하여 결국 라삐 문학에 자리하게 된 것들이다.

기원후 1세기 후반에 이르러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탄생하며 이 공동체는 유다교로부터 서서히 갈라져 나간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백성의 역사와 예언자들의 예고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오심으로 그 완성을 본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으로 다스릴 백성을 이루시고자 모든 민족을 불러 모으신다.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계약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단계였으나, 예레 31,31-34의 신탁에 따라 새 계약으로 대체되어야 했던 계약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전승들을 옛 계약이라 불렀고, 나중에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 특히 2코린 3,14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스라엘로부터 물려받은 성경 전체를 구약 성경이라 일컬었으며, 예수라는 인물과 그의 메시지에 대하여 말하는 책들은 신약 성경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신약 성경을 기초했던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라는 인물 안에서, 이스라엘의 희망을 성취시키고 그 백성 한가운데에서 드러난 보편적 기다림에 응답하시는 분을 보았다. 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거룩한 책들이 즐겨 사용한 언어는 물론 오랜 세기 동안 축적되어 온 종교적 체험과 역사의 가치를 받아들였으며, 이들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교는 구약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보았다. 이렇게 해서 유다인들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성경이 되었으며, 이들은 기원후 3세기경에 가서 이 성경을 신약 성경으로 보완하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 성경은 이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새로운 책이 되었다.

이처럼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지만 같은 시각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성경은,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모든 신앙인들에게 성경을 읽는 공동체로 들어와 과거를 통해서 그리고 현재 안에서 성경이 갖는 의미와 의의를 찾도록 끊임없이 초대하는 작품이다.

2. 성경 읽기

성경은 자기네 백성 한가운데에 나타나시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을 증언하고자 하는 저자들 또는 편집자들의 작품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익명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구약 성경의 경우 그러하다. 그들 작품의 상당 부분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루어졌다. 작품 대부분은 최종 형태를 갖추기 전 여러 차례 수정되었으며, 가필과 주석, 나아가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개작과 같은 방식으로 원독자들의 반응을 남기고 있다. 비교적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해석하고 현실화하여 새로운 작품들이 탄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사무엘기와 열왕기를 역대기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문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책이다. 이 백성은 다른 백성들도 그러했듯이 자기들만의 고유한 방식대로 인간의 실존과 조건, 주변 세계를 이해하였다. 이 백성은 체계적인 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야기와 관습과 제도를 통해서, 개인과 백성 전체의 자발적인 반응을 통해서, 그리고 독창적인 언어로 세상에 대한 개념을 표현해 나갔다.

한편 이스라엘의 문명은 전체적으로 볼 때 고대 근동 다른 백성의 문화와 적지 않은 공통점을 보여 준다. 수많은 성경 본문들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널리 퍼져 있던 사고와 전통이 들어 있다. 그 예로 천지 창조 또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물론 지혜와 율법에 관한 본문들을 들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단순한 답습으로 볼 수는 없다. 고대 근동의 전통과 문헌들을, 이스라엘과 유다교의 고유한 역사적 종교적 체험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의 풍요로움을 모두 간파하려면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일찍 문명화한 다른 민족들의 영향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는 성경 안에 온전히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현대의 인간들에게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성경과 현대의 인간 사이에는 넘어서기 힘든 간격, 곧 시간적인 격차, 문화적인 차이, 특히 하나의 본문이 전하는 본래의 메시지와 독자의 이해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간격을 줄이려고 독자들은 주석, 다시 말해서 본문 해설을 본다. 3-4세기경부터 서양에서는 인문 과학과 고고학에서 사용하던 방법들을 응용하는 역사적인 주석 방법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방법은, 낱말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함은 물론 본문을 본래의 자리에 배치시키고 그 형성 과정을 살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밝혀내는 가운데 성경 본문을 더 잘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성경의 입문 부분들과 본문의 각주들은 이와 같은 폭넓은 작업의 결과와 가설들을 간추린 것이다.

3.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독자들은 성경이 단순히 고대 문학의 보고(寶庫) 내지 한 백성의 윤리적 종교적 개념들을 역사적으로 정리해 주는 문헌들의 서고(書庫)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경 본문들이 입증하고 있듯이 인간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책으로 제시된다.

“이 말씀은 빈말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신명 32,47ㄱ).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성경을 읽을 때는 언제나 성경 본문의 이러한 기능, 끊임없는 질문 제기,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지 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자들은 물론 성경 말씀을 적절히 실천에 옮길 수도 있고 문학에 대한 관심이나 고대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성경을 읽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을 증언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성경 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면 독자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성경의 신앙 고백들은, 이 고백들이 특수하고도 오랜 역사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역사를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들과 편집자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지는 말씀의 전달자로 머물고자 할 뿐이다. 세기를 통하여 모든 언어와 모든 문화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 메시지를 꾸준히 묵상하고 현실화해 온 성경에서 신앙의 양식을 찾았고 또 찾고 있다. 이 공동체는 전례와 성무일도를 거행하는 가운데 신약 성경의 복음서와 서간들과 함께 구약 성경의 본문들을 당당히 읽고 노래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하나이며, 성경의 이 두 부분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면서도 온 인류에게 당신 구원을 베푸시는 같은 하느님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언에 기초한 신앙은 거기에서 생명과 힘을 찾는다. (신앙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이 신앙이 오늘날 여전히 건재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행동 방식이 되고, 인류 역사의 누룩으로서 특별한 실존 방식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독자들을 언제나 산 신앙으로 이끌며, 이 산 신앙은 독자들을 언제나 신앙의 원천인 성경으로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