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입문
1. 로마서의 중요성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가 쓴 여러 서간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다. 가장 길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로마서는 서간 형태를 띤 논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가끔 제기될 정도로, 내용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짜임새도 두드러지게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일찍이 16세기 종교 개혁가 칼뱅도, “이 서간 전체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로마서만큼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끼쳐 온 서간도 없다.
사실 로마서 본문은 성경 주석의 역사에서 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오리게네스를 비롯하여 요한 크리소스토모, 테오도레투스, 펠라기우스, 아우구스티노, 아벨라르, 토마스 아퀴나스 등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로마서를 해설하였다(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암브로시오의 작품으로 간주되다가 암브로시아스테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바오로 서간 주석서도 포함된다). 로마서의 해석은 교회 역사상 특히 두 시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5세기와 16세기인데, 5세기에는 펠라기우스가 등장하여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라는 구원의 무상성(無償性)을 둘러싸고 일대 위기를 맞아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는 1516년에 로마서 주석서를 펴낸다. 많은 역사가는 이 책이 바로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칼뱅이 개신교 최고의 신학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그리스도교 요강(要綱)’의 제2판(1539년)을 준비하고 또 그의 교리 명제들을 명확히 하는 데에, (1540년에 가서야 출판되기는 하지만) 그의 첫 성경 주석서인 ‘로마서’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종교 개혁가들은 이렇게 이 서간을 특별히 높이 평가한다. “사실 로마서는 모든 책의 심장이며 정수(精髓)다.”라고 루터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칼뱅도 “로마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이에게는 성경의 가장 비밀스러운 보고(寶庫)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독일 종교 개혁가로서 루터를 보조하고 대리하기까지 한 멜란히톤에게도, 로마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요약”이다. 그의 대표작 ‘신학요론’(Loci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은 사실 로마서를 설명해 놓은 책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여 로마서에 관한 신학적 고찰이 개신교 최초의 조직 신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에도 개신교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이 서간을 주석하였다. 여기에서 특히 현대 신학적 사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의 주석서(1919년)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로마서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개신교 신학자들은 일종의 ‘편향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 개신교 주석가(F. J. Leenhardt)는 주저 없이 이러한 상태의 “불균형”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반면에, 가톨릭 신학자들은 코린토 1서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것도 사실이다.
2. 바오로의 생애와 로마서
바오로는 로마서를 직접 쓰지 않고 테르티우스라는 이에게 받아쓰게 한다(16,22). 이러한 방식으로 로마서를 쓸 때,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온 교회의 집주인인” 가이오스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을 것이다(16,23. 그리고 1코린 1,14-15 참조). 그때는 15,25-33에서 볼 수 있듯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서 모금한 헌금을 가지고(15,25-26)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직전이다(어떤 학자들은 이미 출발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제3차 선교 여행을 끝내면서 석 달 동안 코린토에서 지낸다(사도 20,3). 그 몇 달 전에는 바로 코린토와 갈라티아에 서간을 써 보냈고, 어쩌면 필리피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로마서를 쓸 당시, 바오로는 매우 활발히 서간도 쓰고 자기의 신학도 전개시키는 한 시기의 끝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동방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을 마쳤다고 판단한다(15,19-20). 그래서 이제는 복음을 서방에 전파할 계획을 세운다. 그의 마음은 이미 로마와 에스파냐를 향한다(15,24). 그러면서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이 어떻게 끝날지 염려한다. 그곳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예감한 것이다(15,30-31). 이러한 두려움은 사도행전에서도 확인된다.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사도 20,22-23).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연대표에 따르면, 로마서는 57년이나 58년에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는 기후가 나빠 항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 항해가 속개되는 시기인 초봄이었을 것이 확실하다.
바오로가 이 서간을 직접 받아쓰게 하였다는 것, 곧 로마서의 친저성(親著性)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의혹이 제기된 적이 없다. 다만 마지막 두 장인 15장과 16장이 문학 비평상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수사본들의 전통이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15장 첫째 각주 참조).
3. 집필 동기와 목적
로마서가 이러한 상황에서 쓰였다는 것은 상세히 알려져 있지만, 이 서간의 성격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곧 ‘로마서는 서간 형태로 쓰인 논문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서간으로서, 어떤 외적 정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쓰인 문서인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오로 사도는 이 서신을 받아쓰게 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로마 교회에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로마 교회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거기에 응답하면서 우선 몇 가지 실질적인 결론을 제시하려고 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1) 교리적 문헌
19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로마서를 ‘서간-논문’으로 여겼다. 공개 서간의 형태로 쓰인 교리적 문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한다. 로마로 곧 가겠다는 말은 바오로에게 구실에 불과하다. 그는 로마의 교회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데다, 이 교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바오로 자신도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15,20). 그렇기 때문에 이 공동체가 안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룰 필요도 없고, 논쟁에 뛰어들거나 자기 변론을 펼칠 이유도 없다. 그는 다만 로마 교회에 인사 서신을 보내는 기회를 이용할 따름이다. 이를 계기로 로마의 신자, 또 그들 외에 다른 모든 신자에게까지, 당시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신앙의 주요 문제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미 갈라티아서에서 펼친 바 있는 내용을 차분히, 더욱 체계적으로 다시 밝힌다는 것이다.
사실 갈라티아서와 로마서가 비슷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두 서간에서 똑같이 바오로 신학의 주요 주제들이 다루어진다. 의화(義化)와 구원,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교 신앙,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의 예언적 의미 등이다. 그러나 이 두 서간 사이에 대립되는 사항들도 매우 뚜렷이 드러난다. 갈라티아서는 바오로가 감정에 이끌려 썼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로마서는 차분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어조, 철저한 고찰, 탁월한 관점이 인상적이다. 전하는 메시지는 같지만, 로마서에서는 그것이 더욱 폭넓게, 찬찬히, 그리고 아무런 논쟁의 여지 없이 설명되고 전개된다.
물론 바오로는 로마서 전체에 걸쳐,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어떤 특정 상대에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를 견지한다. 그리스 말 본문은 말할 것도 없고 번역 성경이라도 한 번 읽어 보면, 이 사도가 수사적(修辭的) 질문이라든가 감탄사나 감탄문, 그리고 삽입절 같은 것을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그 어떤 서간에서보다도 이 로마서에서 이른바 연설 기법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예컨대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모릅니까?”, “아, 인간이여! ……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사적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은, 바오로가 로마의 신자 가운데에서도 특정한 사람에게만 이 서간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곧 바오로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그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형태로 서간 내용을 전개시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대중 철학에서 이용하던 방식이다.
바오로의 서간 가운데에서, 로마서는 당시의 상황이나 시대와 가장 관련이 적고 가장 교리적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과거에는 이 서간을 일종의 ‘신학 개요(槪要)’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서를 ‘그리스도교 교리 요약’이라든가 바오로 신학의 종합으로 간주하기에는 빈틈이 너무나 많다. 우선 같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판단되는 코린토 서간들과 로마서 사이에, 문체만이 아니라 주제와 관련해서도 나타나는 현저한 차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은 서로 밀접한 두 가지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곧 여기에서 바오로는 자기의 사도적 권위를 옹호하면서 코린토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하여 애를 쓴다. 반면에 로마서에서는 마지막 몇 개의 장에서 실천적인 권고를 할 때 외에는, 적어도 명백한 어조로는 한 번도 교회가 문제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성찬례에 관한 코린토 서간의 중대한 가르침에(1코린 11,17-34) 비길 만한 내용을 로마서에서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코린토 서간들에서는 성령이 여러 공동 은사와 교계 제도 직무의 근원으로 말해지지만, 로마서 8장에서는 자유와 개인 기도의 원천으로 부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서에서도 코린토 서간들의 내용이 반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교회-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상(1코린 12,12-27; 로마 12,4-6), 그리고 ‘그리스도-제2의 아담’이라는 주제가 양쪽에서 다 다루어진다(1코린 15; 로마 5).
이렇게 볼 때, 로마서를 이 사도의 신학적 사상을 종합한 저술로 간주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현대적 의미로 그리스도교 조직 신학서와 같은 문헌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바오로 자신이 이 서간에서 두 번에 걸쳐 ‘자기의 복음’이라고 일컫는 내용(2,16; 16,25), 그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기쁜 소식의 핵심으로 여기는 내용을 설명한 서간이라는 말로 그 성격을 규정지을 수는 있을 것이다.
2) 문헌의 외적 동기
로마서는 당시의 구체적 상황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일반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이 서간 역시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 당시의 교회에 제기된 가장 중차대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음도 사실이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교회’라는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바로 이 주제가 로마서에서 펼쳐지는 사상의 근본 노선들이 합류하는 곳이다. 바오로는 역사의 그 순간에 교회를 위협하는 요소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에 교회는 두 집단으로 갈라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한쪽에는 유다교 회당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종한 다른 민족 출신들이 있다. 이 이교 출신들은 과거 곧 유다교와 아무런 가시적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서, 바오로는 자신을 바로 이들의 사도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갈라티아 교회와 코린토 교회를 뒤흔든 위기를 보면서, 바오로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로마서를 쓸 때, 그는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신자에게 읽히게 될 이 서간에서, 바오로가 왜 구약 성경과 복음에서 이루어지는 계시가 하나라는 사실, 이스라엘에게 내린 약속의 확실성, 구원의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수행하는 역할 등을 강조하고 싶어 하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로마서에서는 이러한 교리적인 면과 실천적인 면이 하나의 대칭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 실천적인 면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곤궁을 풀어 주고 이교 출신 신자들과 팔레스티나 출신 신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드러내는 모금 운동을 조직하는 바오로의 노력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바와 같이, 서신을 직접 받는 사람에 따라 그 주제와 형식이 결정되는데, 로마서는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는 바오로의 작품 가운데에서 예외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서간은 바오로가 해당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에 따라 글을 써 보내는 이른바 ‘상황 문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서 역시 57-58년에 로마 교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설명할 수 없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학자가 이 방향으로 연구를 하였다. 그런데 바오로가 서간을 쓸 당시 로마 교회의 정확한 상황, 신자들의 구성, 그들의 성향 등이 우리에게까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학자들이 제시한 설명들은 연구 가설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로마서 자체에서는 명확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다. 바오로는 자기가 로마로 가는 까닭이 그곳 신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려는’ 자기의 강력한 원의라고만 밝힌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를 유다교로 환원시키려는 자들이 갈라티아와 코린토에서 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자기들의 생각을 퍼뜨릴 것이라고 바오로가 걱정하지 않았나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일으킬 수 있는 소동에 대해서 바오로가 로마의 신자들을 미리 대비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로마서 자체를 놓고 볼 때, 바오로가 바로 그러한 의도로 이 서간을 썼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이와 관련하여 16,17-26 참조. 그러나 이 단락의 엄한 어조는 나머지 부분들의 부드러운 어조와 대립된다).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가설 가운데에서 한 가지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19세기 초엽부터 많은 학자들이 로마서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근본적으로 화해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의 유다인 거류민들은 매우 중요하였다. 이들은 49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다인 추방 칙령을 내리는 사태를 자초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선포로 야기된 혼란의 결과로 그리되었을 것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조치로 로마를 떠나게 되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또는, 프리스카)가 바로 그 때문에 코린토로 이주하였던 것이다(사도 18,2). 그런데 이 칙령은 오래지 않아 폐기됨으로써, 많은 유다인이 다시 로마로 들어가게 된다. 바오로가 로마서를 쓸 무렵에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도 이미 로마에 돌아가 있었다(16,3). 유다계 신자들이 로마로 다시 갔을 때, 비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경멸하는 고자세를 취한 것으로 추측된다(11,17-25; 14,3.10; 15,25-27 참조). 그때부터 로마 교회가 한쪽은 이교에서 개종한 이들, 다른 쪽은 유다교에서 개종한 이들로 갈라져, 이렇게 두 파로 깊이 분열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오로는 이 두 분파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또 둘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일에 자원하여 나섰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맞을 경우에 15,7의 말씀이 이 서간의 정점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이 구절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모든 내용은 바로 이 실천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가지 사실이 이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어떤 학자는 바오로 사도가 줄곧 한쪽 시선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쪽 시선은 이교 출신 신자들을 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이 서간에서는 ‘유다인’과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 사람들을 가리키는 ‘그리스인’, 그리고 이 명칭들과 유사한 용어들이 자주 사용된다(1,14-16; 2,9.10.25-27; 3,9-29; 4,9-12; 9,23; 10,12; 11,13-25; 15,8-12 등). 그리고 바오로의 다른 모든 서간에서 수신인을 가리키는 고정 표현인 “하느님의 교회”가 이상하게도 로마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에 그렇게 불릴 만큼 일치된 공동체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끝으로 9장에서 11장까지 하느님의 백성, 그리고 이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아주 합당한 일로 인정된다.
이 가설은 최근에 다시 제기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논거로 뒷받침된다. 이 가설이 맞을 경우 (당시에는 물론 ‘교회 일치’라는 말이 없었지만) 로마서는 탁월한 ‘교회 일치’의 성격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설일 따름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 교회에 관하여 바오로 쪽에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나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을 확실한 것으로 단정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가설은 이 어렵고 신비로운 서간을 나름대로 강력하게 비추어 주고 또 이 서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 준다.
4. 로마서의 구성
바오로의 모든 서간 가운데에서 로마서처럼 틀이 잘 짜여 있고 세심한 구상이 드러나는 인상을 주는 본문도 없다. 로마서 역시 바오로가 쓴 대부분의 다른 서간들처럼 서로 선명히 구분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음을 모든 주석가가 인정한다. 곧 교리편과(1─11장) 권고 또는 훈계편이다(12─16장). 그러나 이 이상으로 서간의 구성을 확정 짓는 데에는 의견이 갖가지로 나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서간의 구조가 대화의 구조만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 로마서는 유다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가운데에서 나온 글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서간이 확고한 바탕 위에서 신중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그러면서도 문체상으로나 생각의 연계성 면에서 완전한 일관성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키케로와 같은 연설가도 저술가도 아니다. 그리고 바오로가 편지를 써 내려갈 때에 수사적(修辭的)으로 분출되는 여러 가지 내용이 일정한 단락들로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이 학자들에 따르면, 사도는 본디 죄(1장─3,20), 이어서 의화(3,21─4,25), 끝으로 성화(聖化)를 다루려고 하였다(5─8장). 그러나 이러한 가설에서는, 서간의 종결 부분이 교리편과 별로 관련이 없는 일련의 부록에 불과하게 된다.
새로운 연구들의 결과로 로마서의 다른 구조가 제시되는데, 이것이 사도의 핵심 구상에 더 가까운 것 같고 구약 성경 예언자들의 방식에도 더 부합하는 것 같다. 예언자들은 논리적 전개보다는 이른바 ‘집중적 반복’의 방식을 따른다. 최근에 제기된 로마서 구성 가운데 하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서간은 인류가 처한 곤궁과 함께, 복음이 이 곤궁을 쳐 이기는 승리를 연이은 네 단계로 서술한다는 것이다. 그 단계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하느님의 단죄 아래 이교인들과 유다인들이 겪는 곤궁과(1,18─3,20)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그분을 통하여 받는 의화이다(3,21─4,25). 둘째는, 첫 아담에 따른 인류 공통의 곤궁과(5,1-14)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연대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다(5,15─6,23. 5장에서는 곤궁과 구원, 이 두 주제가 밀접히 뒤섞여 있다). 셋째는, 율법의 종이 된 인류의 곤궁과(7,1-25) 성령에 의한 인류의 해방이다(8,1-39). 넷째는,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야기된 이스라엘의 곤궁과(9,1─10,21) 유다인들과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에게 궁극적으로 길이 열리는 구원이다(11,1-36).
이렇게 본 로마서의 구성은 아직도 가설의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중의 특색을 지닌다. 먼저 이 구성은 네 차례에 걸친 곤궁과 구원의 서술이 서로 다른 성격과 기원을 지닌 용어들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곧 첫째 서술은 법적, 둘째 서술은 성사적, 셋째 서술은 영적, 넷째 서술은 역사적 용어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구성은 9─11장이 어떻게 1─8장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지도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구성은 두 가지 점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구성으로 9─11장이 서간의 전체 내용에 자연스럽게 합쳐지는데, 실제로 이 세 개의 장은 서간의 나머지 부분과 상대적으로 독립된 단락을 이루고 있다. 위의 구성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9─11장은 본디 이 부분만 따로 작성하여 나중에 로마서 현재의 자리에 삽입하였다는 것이 매우 그럴듯하게 여겨질 정도로 하나의 통일된 단락을 형성한다. 1─8장의 근본 주제는 1,16-17에서 예고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신 새로운 의로움인데, 9─11장은 사실 이러한 1─8장에 필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구성이 두 번째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은, 5장이 연결 고리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 학자가 5장에서부터 어떻게 특별히 새로운 관점이 드러나는지를 강조해 왔다. 곧 5장에서부터는 의화가 이미 과거에 속한 일로, 완수된 사항으로 나타난다. 의화를 가리키는 동사들이 모두 단순 과거(그리스 말 문법 용어로는, 아오리스트)로 쓰인다. 5,2에서 다시 언급되는 “믿음”도 이제는 “희망”에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5,11에서 8장까지의 근본 주제는 더 이상 의화가 아니라 삶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 가는 우리의 삶이 세례로 시작되는 것이다(6장). 그리고 성령의 은총과 생기를 부여하는 그분의 역동적 현존이, 우리가 영광을 누리시는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면서, 부활하신 이분의 천상 생명에 참여한다는 표징이다(8장).
1─8장의 내용은 이렇게 진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현재의 서간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사도가 어려운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가끔 서로 교차하는 생각과 논증들을 한꺼번에 여러 방향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네 개의 큰 단락으로 로마서의 교리 내용을 정리하여 제시하는 작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곧 바오로가 어떻게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민족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번갈아 이야기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는가, 또 그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서간을 마무리하는 대권고에서(12,1─16,27)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 살아가도록 그들을 권고하는가이다. 이 권고편의 주요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 대한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자기들 사이의 연대성과 다른 모든 사람과의 연대성을 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는 데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현세에서 역사의 완결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아주 불완전하게나마 그 완결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13,11-14). 이러한 관점에서 로마서의 이 다섯째 부분은 앞의 네 단락에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5. 로마서의 신학
이미 언급한 대로, 로마서에서 바오로 신학의 모든 주제가 고찰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기에서 거론되는 주제들은 깊이 있게, 그리고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는 명료성과 함께 설득력 있게 다루어진다. 바오로 사도는 은총의 힘, 죄로 말미암은 불행, 신앙을 통한 의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루는 삶과 죽음에 관하여 이 서간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이 자리에서, 여러 의미를 지니면서도 결코 부정확하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이 대서간의 신학 사상을 종합적으로 모두 제시할 수는 없겠다. 이 로마서에는 각주가 특별히 많이 달려 있는데, 바오로 신학의 큰 주제가 나타나는 본문의 각주에서 그 주제들을 간략히 설명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각주들은 사도의 사상의 전개와 연계되는 바오로 신학의 어휘 사전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