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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이 책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 버미드바르(광야에)인데, 그리스 말 역자들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인구 조사를 다루기 때문에 ‘수(數)들’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을 우리는 ‘민수기’(民數記)로 옮긴다. 복잡한 문학 구조를 띠고 있는 이 책은 후대에 와서 매우 상이한 자료들을 배열하고 이야기체 전승들과 입법에 관한 본문들을 서로 묶어 주는 과정을 거쳐 최종 편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 민수기의 문학 구조
민수기 본문이 제공하는 큰 주제들과 지형에 관한 정보들을 고려하면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나이를 배경으로 하는 첫 번째 부분(1,1─10,10)에서는 주로,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서술된 제도들을 재론하여 그 설정을 완료한다. 곧, 인구 조사와(1─4장) 성소 봉헌과(7장) 레위인들의 봉헌(8장)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을 떠나 광야를 횡단하는데, 그들은 지은 죄로 말미암아(13─14장) 그곳에서 사십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은 모압 땅 경계에 있는 요르단강 동쪽에 다다르게 된다(22,1). 세 번째 부분은 약속의 땅 경계를 이루는 모압 벌판에서 전개된다. 바로 여기에서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이 일어나고(22─24장), 이스라엘이 프오르의 신 바알을 섬겨 배교를 하게 된다(25장). 이어서 새로운 인구 조사로(26장)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첫 세대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끝으로 이미 정복한 땅과(32장) 앞으로 정복하게 될 땅의(27; 34─36장) 분할을 위해 모세가 제시하는 지침이 나온다. 또한 이 부분에서는 미디안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원정과(31장),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출발하여 요르단강 가에 이르는 여정을 요약하는 내용도 볼 수 있다(33장).
민수기에서 과연 작품의 일관성을 보장해 주는 어떤 원칙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오로지 문학적인 자료들을 수록하는 데 만족하고 있으며, 그것도 대부분 후대의 것들이다. 그럼에도 지형적인 자료들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책의 구조는 신학적인 구도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룬다. 시나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분부를 충실히 따르던 모세와 아론에게서 행진 명령을 받는다. 이 최초의 명령은 광야에서 행진하는 동안 줄곧 백성과 지휘관들과 레위인들의 불복종으로 말미암아 문제시되며, 이 불복종이 결국 이집트를 탈출한 첫 세대를 단죄로 이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모압평야에 다다른다. 이 세대는 인구 조사를 받고 새로운 지휘관 여호수아와 새로운 대사제 엘아자르를 모시게 되며, 마침내 정복을 목적으로 재편성된다. 한편 이 세대는,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들이 의도적인 잘못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기억에 담아 전해 주어야 했다. 물론 이 사건의 주동자들은 제거된다(26,63-65; 32,6-15 참조). 이렇게 이스라엘의 범죄, 주님의 계획에 대한 반항이라는 주제는 민수기의 사제계 편집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를 이루는데, 이 편집은 민수기의 여러 저자들이 계승한 다양한 문학적 자료들, 이를테면 오래된 이야기들과 사제계 이야기들과 입법에 관한 본문들을 특수한 구상에 따라 체계화하는 단계를 거쳤던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여러 이야기와 입법에 관한 수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부분에 모아 놓은 법규들은 광야를 향해 다시 행진하기에 앞서서 이스라엘 백성이 종교적, 군사적으로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야기와 법규들이 번갈아 제시된다. 각각의 주제 제시는 때로 기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들은 의도적인 잘못에 대한 경계심 촉구라는 단 하나의 신학적 구상을 기초로 전개된다. 주님의 계획에 맞서는 자들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 13─14장과 16─17장과 20,1-13의 이야기들은 이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15장과 18─19장의 입법 본문에도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법규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펼쳐 나갈 삶과 근본적으로 직결되어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2. 민수기의 배경 ─ 광야
민수기에서 광야는 이스라엘 자손 공동체가 끝내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올라가기를 거부하고 모세의 권위를 문제 삼아 일련의 잘못들을 저지르는 장소로 나타난다(14장 참조). 모세 오경을 공시적(共時的)으로 읽어 나갈 때 14장의 이야기가 전하는 잘못은 탈출 14장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당신 백성을 위한 주님의 구원 계획은 부정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보내신 지도자 또한 배척을 받는다. 이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징벌들은 이후 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세대는 이제 광야의 사건들을 기억에 담아 두어 또 다른 불복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호세 2,16-25 또는 예레 31,2에서는 주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친교 장소였던 광야가 민수기에서는 고통스러운 체험의 배경이 되는데, 이 체험을 통하여 주님은 친히 당신 백성에게, 이스라엘을 위해 세우신 구원 계획 밖에서는 또 이 공동체에게 내리신 법규 밖에서는 어디서도 생명이 불가능함을 가르치신다. 구약 성경의 다른 책들도 ‘광야 시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하는 경우가 있다. 에제키엘서가 좋은 예에 속하는데, 특히 20장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불충을 역설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명 9장 역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과오를 강조한다.
3. 민수기의 전승과 편집
민수기는 탈출기를 계속해서 이어 가는 일련의 이야기들로 그 틀이 짜여 있다. 그래서 탈출기에서처럼 민수기에서도 사제계 전승(P)과 유배 시대 이전의 오래된 전승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이 서로 다른 전승들은 후대에 와서 사제계 저자들의 작업으로 민수기 안에 규합되었으며, 그 결과 민수기는 혼합적인 작품이 된 것이다.
어휘로 구별되는 오래된 전승과 사제계 전승은 또한 그 신학적 의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오래된 전승들은 역사를 서술하면서 각 시대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는 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있으나, 사제계 전승들은 신학적인 어휘를 사용하면서 이야기체 전승들을 해설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전승 유형은 광야를 건너가는 여정을 전해 주는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스라엘인들의 저항과 반란으로 말미암은 위기의 상황들이 바로 그렇다(11장과 탈출 16. 그리고 20,1-13; 13─14장의 이중 전승과 탈출 17,1-7).
그런데 민수기의 사제계 편집이 유배 시대 이후의 사건들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자주 바빌론에 정착한 유배자들과, 페르시아 시대에 유다로 귀환한 지도자들의 망설임을 상기시킨다. 13─14장과 20,1-13의 이야기들은 이와 같은 유보적 태도를 반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를 철저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민수기에 폭넓게 펼쳐져 있는 사제계 저자들의 신학적 반성은, 이 반성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철저한 비난과 함께 이 책 안에서조차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컨대 14,13-20의 모세의 간청과 주님의 응답은, 15,30 이하의 법규와 같이 14,26 이하의 이야기가 전하는 고의적인 잘못에 대한 철저한 징벌을 넘어서서 자비와 용서의 신학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민수기는 유배 이후 시대를 전제로 사제계 저자들과, 탈출 32,11-14와 신명 9,7─10,11과의 유사성으로 말미암아 ‘후기 신명기계’ 본문으로 규정할 수 있는 14,13-20의 저자들 사이에 벌어진 신학적 논쟁을 반영한다.
4. 모세
광야에서의 행진은 모세라는 지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전승들이 일치를 보인다. 그러나 그 방식만큼은 저마다 독자적이다. 오래된 전승은, 신명기계 저자들이 재독 과정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모세라는 인물을 매우 생생하고 풍요롭게 그려 준다. 이 전승이 소개하는 모세는 약점을 보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는(11,11-15) 그야말로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전승이 묘사하는 그의 주된 특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힘들고 보답 없는 사명에 대한 철저한 성실성이다.
사제계 본문들이 그리는 그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모세는 단순히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비인격적인 대변인일 따름이다. 어떤 규정에 대해서 말할 때, 특히 그것이 후대의 것일 경우, 모세의 이름은 결국 그 규정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인장 같은 구실만을 한다. 사제계 본문들은 더 나아가서 모세 옆에 그의 형이면서 대사제인 아론을 세운다. 아론의 직무는 종종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을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릴 때에 그 옆에 서 있는 것으로 그치기도 한다. 사제계 본문들이 때때로 문법적인 수정도 거치지 않고(9,7과 20,10) 모세 이름에 아론의 이름을 그냥 덧붙이려 한다는 사실은, 이 본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곧 모세가 죽은 다음에 일어난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론의 아들로서 대사제인 엘아자르가 하느님의 계시를 독점적으로 받으며, 백성에 대해서 지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사실이다(27,21).
5.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제계 전망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사제계 본문들의 특징이다. 이 본문들의 의도는 하느님 백성의 제도들을 서술하는 것이며, 이는 그 신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규정, 인구 조사(1; 4; 26장), 행진(10,11-28) 또는 야영 명령(2장), 이야기, 이 모든 요소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 주는 역할을 한다. 사제계 본문들이 시나이 출발 이전에 마무리된 여러 제도들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은, 사제계 전승에서는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는 이 제도적인 틀 안에서만 이스라엘이 존재하며, 그 밖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제도들을 정당화하는 신학은 매우 풍부하여, 여기에서 그 몇 가지 요소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사제계 전승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무장한 백성이 아니라 주님의 경신례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일 뿐이다.
첫째, 이러한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다.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통치되는 백성이다.
둘째, 이스라엘은 적어도 가나안 땅에 입주할 때까지는 여정 중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사제계의 어떠한 본문도, 본디 유목민 생활을 위해 생겨난 성소가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리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거룩한 곳도, 움직이지 않는 어떤 성전도 주님의 현존을 독점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현존하기로 약속하신 유일한 장소는, 당신 백성의 한가운데, 곧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이거나 여정 중에 있는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천막 안 거처이다.
셋째, 하느님의 이 항구한 현존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그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 한가운데에 머물러 계시는데, 죄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매 순간 징벌의 위험에서 어떻게 무사할 수 있겠는가?(17,28) 사제와 레위인들의 제도가 바로 그 위험을 막아 준다. 특별히 선택된 이 사람들이 백성과 하느님의 현존 사이에서 보호막 구실을 한다(1,53; 17,11). 이들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분노가 공동체를 짓누르게 만드는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를 얻어 낼 수 있다(8,19; 17,12). 이 두 가지가 사제와 레위인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기능들로서, 이것들 없이는 공동체가 살아남지 못한다(18,8-19).
6. 다른 전승들에 나타난 하느님의 백성
다른 오래된 전승에 속하는 본문들 안에서의 종합적인 신학을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는, 역사에 관한 ‘인간적인’ 면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요소들이 발견되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범세계적인 차원으로 이해하거나(22장과 24장 참조), 다윗 왕정제의 도입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표석을 놓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24,7.17.19). 이 왕정 제도는 이스라엘의 기원사를 마무리하는 제도이다. 끝으로 오경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11장과 12장의 예언자에 관한 언급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 민수기의 의의
이렇게 민수기는 거룩한 백성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이 민족이 역사의 무대에 오른 그 첫 단계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로 민수기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이상적으로 그린 장면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항상 하나의 본보기를 보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낸 그 제도들을 맹목적으로 모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들의 배경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하느님의 백성은 바로 이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는, 교회가 여정 중에 있는 백성임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통치되고 주님에 대한 경신례에 헌신하는 백성임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민수기를 계속 필요로 한다.
형성 과정 중에 있는 백성이 일으킨 반항과 반역의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 백성은 자기들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를 듣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적지 않은 예언서들과 시편도 광야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상기시킨다(시편 78,17-40; 81,12-17; 95,8; 106,14-33; 에제 16;20; 23; 미카 6,3-5 등). 그리고 같은 뜻에서 바오로 사도도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탈출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하여 말한다.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1코린 10,11).
물론 오늘날의 교회가 민수기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고유의 역사를 읽어 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위기는 일정한 법규들과 관련하여 빚어진 결과로서, 이 법규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모여든 신앙인들의 모든 공동체에도 분명히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들에 대한 민수기의 반성은 교회가 이제 나름대로 겪어야 하는 위기들에 더욱 잘 대응해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제계 본문들이 말하는 제도들의 체제는 백성의 죄에 대한 예리한 의식에 그 바탕을 둔다. 백성의 반항은 이러한 죄의 상태를 드러내 보여 주는데, 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실이며 만성적인 악이다. 민수기가 전하는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죄인들로 이루어진 이 백성을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복을 온 인류에게 전하고 당신께서 직접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기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신 백성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구성원들의 죄 많은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자기의 성화(聖化)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늘 새롭게 상기해야 하는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