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코헬렛
11장
불확실한 인생
네 빵을 물 위에다 놓아 보내라. 많은 날이 지난 뒤에도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1)
일곱 또는 여덟 몫으로 나누어라. 땅 위에서 무슨 불행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
구름이 가득 차면 땅 위로 비를 쏟는다.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3) 나무가 쓰러지면 그 나무는 쓰러진 자리에 남아 있다.4)
바람만 살피는 이는 씨를 뿌리지 못하고 구름만 바라보는 이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5)
바람의6) 길을 네가 알 수 없고 임산부의 배 속에 든 몸이7) 어떻게 되는지8) 알 수 없듯 그렇게 모든 것을 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너는 알 수 없다.
아침에 씨앗을 뿌리고 저녁에도9) 손을 놀리지 마라. 이것이 성공할지 저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둘이 하나같이 잘될지 네가 모르기 때문이다.
젊음을 즐겨라
정녕 빛은 달콤한 것, 태양을 봄은10) 눈에 즐겁다.
그렇다, 사람이 많은 햇수를 살게 되어도 그 모든 세월 동안 즐겨야 한다. 그러나 어둠의 날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1) 앞으로 오는 모든 것은 허무일 뿐.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12)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13)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14) 알아라.15)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16) 허무일 뿐이다.
이 절은 특히 1행의 상징적 언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다양하게 이해된다. 주요 가능성으로서 두 가지가 제시된다. 첫째는 빵을 물에다 놓아서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주워 먹게 하는 자선 행위이다. 이와 비슷한 아랍 금언이 있다. ‘좋은 일을 하여라, 네 빵을 물에 던져라. 너는 언젠가 보상을 받으리라.’ 두 번째 가능성은 “빵”을 ‘양식’, 그리고 더 폭넓은 의미로서 ‘재산’, ‘자금’으로 이해하여 1행을 위험한 해상 무역 활동으로 알아듣는 것이다. 위험해서 어리석은 것 같지만 결국 이득을 가져와 지혜로운 사업으로 판명될 수 있음을 가리킨다.
2행을 1행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대비로 이해하여, “그러나 땅 위에서 …… 너는 알지 못한다.”로 옮기기도 한다. 1절을 자선 행위로 이해할 경우, 2절은 계속 여러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나 이 경우 2행의 기능이 불분명해진다. 1절을 위험한 사업으로 이해할 경우, 2절은 장차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마치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기 전에 취한 조처와 같이: 창세 32,7-8)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라는 뜻이 되겠다.
나무가 쓰러지는 방향으로 이해하여 “남쪽으로든 북쪽으로든”으로 옮기기도 한다.
“나무는 쓰러져야 할 곳으로 넘어진다.”로 옮기기도 한다. 3절은 전체적으로 자연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고, 거기에는 불변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두 가지 예로서 말하고 있다.
격언으로 여겨지는 이 말은 본디 앞날의 불확실성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수행하라는 뜻을 지녔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코헬렛의 전체적 의미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숨결”(= 목숨) 또는 “영”으로 옮기기도 한다. 8,8과 각주 참조.
“몸이”가 본문에는 “뼈들처럼”으로 되어 있고 많은 히브리 말 수사본과 타르굼에는 “뼈들에”로 되어 있다. 어쨌든 모태에 든 아기를 가리킨다.
“바람의 …… 되는지”를 “임산부의 배 속에 든 사지(= 태아)에 숨결(또는, ‘영’)이 (들어가는) 길을”로 옮기기도 한다.
“저녁까지도”로 옮기기도 한다.
살아 있음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이다(6,5; 7,11; 시편 58,9). 그리고 빛과 태양은 삶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욥 18,5; 이사 30,26).
직역: “그러나 어둠의 날들을 기억해야 한다. - 그것들이 많음을.”
“네 젊은 시절을”로 옮길 수도 있지만, 2행과 같이 이해함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본디는 “보는.”
본디는 ‘오게 하다, 데려오다, 이끌다’ 등을 뜻하는 낱말이다.
5-6행을 편집자의 추가문으로 여기기도 한다. 어쨌든 이 구절은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방종과 비윤리로 흐르기 쉬운 일종의 에피큐리즘을(지혜 2,6-9; 이사 22,13; 1코린 15,32)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셈을 바쳐야 함을 잊지 않으면서(욥 14,3 참조) 젊음의 아름다운 시절을 즐기라고 젊은이들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심판’은 이 책의 “발문” 끝에(12,14) 다시 되풀이된다.
“청춘”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낱말로서, ‘(머리칼)의 검음’ 또는 ‘여명’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두 경우 다 청춘 시절을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