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욥기
18장
빌닷의 둘째 담론
수아 사람 빌닷이 말을 받았다.
욥에 대한 비난
자네들은 언제면 이런 식의 말에 끝을1) 내려나?2) 잘 생각해 보게나. 그러고 나서 우리 이야기하세.
어찌하여 우리가 짐승처럼 여겨지며 자네3) 눈에 멍청하게4) 보인단 말인가?
제 분에 못 이겨 자신을 짓찢는 자네 때문에 땅은 황폐하게 되고 바위는 제자리에서 밀려나야 한단 말인가?
악인의 운명
정녕 악인들의 빛은 꺼지고 그5) 불꽃은 타오르지 않네.
그 천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를 비추던 등불은 꺼져 버리지.
그의 힘찬 걸음걸이는 좁아지고 그는 자기 꾀에 넘어간다네.6)
그는 제 발로 그물에 걸려들고 함정 위를 걸어가며
올가미가 그의 뒤꿈치를 움켜쥐고 그 위로 덫이 조여 오네.
땅에는 그를 옭아맬 밧줄이, 길 위에는 올무가 숨겨져 있네.
공포가 사방에서 그를 덮치고 걸음마다 그를 뒤쫓는다네.
그의 기력이 메말라 가 그가 넘어지면 바로 멸망이라네.7)
그의 살갗은 질병으로 문드러지고8) 죽음의 맏자식이9) 그의 사지를 갉아먹지.
그는 자기가 믿던 천막에서 뽑혀 공포의 임금에게10) 끌려가네.11)
그의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천막 안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소유지에는 유황이 뿌려진다네.12)
밑에서는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의 줄기가 시들며
그에 대한 기억은 땅에서 사라지고 그의 이름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네.
그는 빛에서 어둠으로 내몰리고 세상에서 내쫓기어
그에게는 제 겨레 가운데 자손도 후손도 없고 그의 거처에는 살아남은 자 하나도 없네.
그의 날을13) 보고 서녘 사람들이 질겁하고 동녘 사람들이 몸서리치네.
정녕 불의한 자의 집안이 이러하고 하느님을 모르는 자의 처소가 그러하다네.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낱말로 그 뜻이 분명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이해된다.
2-3절에서 빌닷은 복수 2인칭에게 말을 한다(그러나 다음 각주 참조). 그런데 이 “자네들”이 누구인지 본문은 확실하지 않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둘 다 문제를 내포한다. 첫째 가능성은 바로 직전에 말을 한 욥이다. 그러나 왜 욥에게 복수로 이야기하는지 그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상대를 높이는 기능으로서의 복수일 수도 있겠다). 둘째 가능성은 욥의 다른 친구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 2행과 3절 1행의 “우리”와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히브리 말 본문에는 복수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칠십인역에 따라 단수로 옮긴다.
구약 성경에서 한 번만 나오는 이 낱말은 ‘더럽다’의 뜻을 지닌 형용사의 변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꽉 막히다, 어리석다, 멍청하다’를 뜻하는 형용사로 이해한다.
1행은 복수인데, 2행부터는 단수로 말한다. 악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로서, 문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직역: “그의 꾀는 그를 넘어뜨린다네.”
직역: “그의 넘어짐(또는, ‘옆, 옆구리’)에는 이미 멸망이 준비되어 있다네.”
‘문드러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본디 ‘먹다’를 뜻한다. 같은 동사가 2행에서도 되풀이된다. 위의 번역은 훼손된 것으로 여겨지는 본문을 조금 수정하여 얻은 것이다. 본문은 “(그것이) 그의 살갗의 부분들을 갉아먹고”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가장 치명적인 병을 뜻한다.
저승의 임금을 말한다. “공포의 임금”, 13절의 “죽음의 맏자식” 등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상상과 언어를 빌려 온 것이다.
직역: “…… 임금에게로 행진하게 하네.” 그러나 주어가 누구인지 본문은 분명히 하지 않는다.
옛날 정복자들은 정복한 민족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그 땅에 소금을 뿌렸다. 신명 29,22에는 소금과 함께 유황이 나온다. 유황은 파괴와 불모화의 도구이다. 창세 19,24; 시편 11,6; 에제 38,22 참조.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 곧 그가 멸망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