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여호수아기
6장2)
예리코를 점령하다1)
예리코는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굳게 닫힌 채, 나오는 자도 없고 들어가는 자도 없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예리코와 그 임금과 힘센 용사들을3) 네 손에 넘겨주었다.
너희 군사들은 모두 저 성읍 둘레를 하루에4) 한 번 돌아라. 그렇게 엿새 동안 하는데,
사제 일곱 명이 저마다 숫양 뿔 나팔을 하나씩5) 들고 궤 앞에 서라. 이렛날에는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는 가운데 저 성읍을 일곱 번 돌아라.
숫양 뿔 소리가 길게 울려6) 그 나팔 소리를 듣게 되거든, 온 백성은 큰 함성을 질러라.7)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때에 백성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올라가거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사제들을 불러 말하였다. “계약 궤를 메어라. 그리고 사제 일곱 명은 저마다 숫양 뿔 나팔을 하나씩 들고 주님의 궤 앞에 서라.”
그는8) 이어서 백성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나아가서 성읍을 돌아라. 무장을 갖춘 이들은 주님의 궤 앞에 서서 나아가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한 대로, 사제 일곱 명이 저마다 숫양 뿔 나팔을 하나씩 들고 주님 앞에 서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었다. 주님의 계약 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무장을 갖춘 이들이 뿔 나팔을 부는 사제들 앞에 서서 걸어가고 후위대가 궤 뒤를 따라가는데, 뿔 나팔 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함성을 지르지 마라. 너희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여라.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마라. 내가 함성을 지르라고 하거든 그때에 함성을 질러라.”
이렇게 그는 주님의 궤가 성읍 둘레를 한 번 돌게 하였다. 백성은 그렇게 한 다음 진영으로 돌아가 그 밤을 진영에서 지냈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9)사제들도 주님의 궤를 메었다.
숫양 뿔 나팔을 하나씩 든 사제 일곱 명이 주님의 궤 앞에 서서 가며 줄곧 나팔을 불었다. 그리고 무장을 갖춘 이들이 그들 앞에 서서 걸어가고 후위대가 주님의 궤 뒤를 따라가는데, 뿔 나팔 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그들은 이튿날에도 성읍을 한 번 돌고 나서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엿새 동안 그렇게 하였다.
이렛날이 되었다. 동이 틀 무렵에 그들은 일찍 일어나 같은 방식으로 성읍을 일곱 번 돌았다. 이날만 성읍을 일곱 번 돈 것이다.
일곱 번째가 되어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불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함성을 질러라. 주님께서 저 성읍을 너희에게 넘겨주셨다.
성읍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한 완전 봉헌물이다.11) 다만 창녀 라합과 그 여자와 함께 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려 주어라. 그 여자는 우리가 보낸 심부름꾼들을 숨겨 주었다.
너희는 완전 봉헌물에 손을 대지 않도록 단단히 조심하여라. 탐을 내어12) 완전 봉헌물을 차지해서 이스라엘 진영까지 완전 봉헌물로 만들어13) 불행에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은과 금, 청동 기물과 철 기물은 모두 주님께 성별된 것이므로, 주님의 창고로 들어가야 한다.14)”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니 백성이 함성을 질렀다. 백성은 뿔 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큰 함성을 질렀다. 그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은 저마다 성읍을 향하여 곧장 앞으로 올라가서 그 성읍을 함락하였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소와 양과 나귀 할 것 없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칼로 쳐서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 창녀의 집으로 가서, 너희가 맹세한 대로 그 여자와 그에게 딸린 모든 이를 그곳에서 이끌고 나오너라.”
그래서 정탐하러 갔던 젊은이들이 가서 라합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 그리고 그에게 딸린 모든 이를 데리고 나왔다. 라합의 온 씨족을 이끌고 나와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데려다 놓았다.15)
그런 다음에 백성은 성읍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모조리 불에 태웠다. 그러나 은과 금, 청동 기물과 철 기물은 주님의 집 창고에 들여놓았다.
여호수아는 창녀 라합과 그의 아버지 집안과 그 여자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 주었다.16) 그래서 그 여자는17)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예리코를 정탐하라고 여호수아가 보낸 심부름꾼들을 그 여자가 숨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여호수아가 선언하였다. “이 예리코 성읍을 다시 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기초를 놓다가 맏아들을 잃고 성문을 달다가 막내아들을 잃으리라.”18)
주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의 명성이 온 땅에 두루 퍼졌다.
예리코 함락의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반복과 중복 때문에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 구조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곧 여호수아에게 내린 하느님의 명령(2-5절), 사제들에게(6절), 이어서 백성에게 명령을 전달함(7-10절), 명령의 실행이다(11-16.20절). 이 설화는 전례의 모습과 전쟁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다. 군사들의 집합체로 조직된 백성, 전쟁 의식의 하나로 공격의 순간에 내지르는 함성(1사무 17,20.52), 공포를 조장하여 적을 무서움에 떨게 하는 뿔 나팔(판관 7,8-20) 등은 이 이야기의 전쟁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이나 전례 행렬과 관련되는 계약 궤가 이 이야기에서 서로 뗄 수 없는 두 모습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한다. 행렬, ‘일곱’이라는 수의 중요성, 계약 궤 앞에 서서 가거나 그것을 멘 사제들의 언급 등은 6장 전체의 전례적 성격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현재의 히브리 말 상태에서 예리코 함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6장이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 말 본문에 비해 상당히 짧게 되어 있다. 두 본문 사이의 상이점은 너무 많아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히브리 말 본문에는 “…… 임금 힘센 용사들(을)”로만 되어 있다. 이 “힘센 용사들”은 후대의 첨가문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말을 생략하여 번역하기도 하고, “…… 예리코(주민)와 그 임금을, (그들이) 힘센 용사들(이라 할지라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1,14에도 나오는 “힘센 용사들”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인들에게만 적용된다.
“하루에”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직역: “사제 일곱이 숫양 뿔 나팔 일곱을.” 다음에서도 계속 마찬가지다. 금속으로 된 나팔이 아니라 숫양의 뿔로 만든 아주 단순한 형태의 나팔이다. 마우스피스를 달지도 않고 동물의 뿔을 그냥 불기 때문에, 어떤 가락이 아니라 똑같은 음조의 소리만 크게 나는데, 그러한 소리가 다소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전례 안에서도 이 악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은(레위 25,9; 2역대 15,14) 이 소제목의 각주에서 말한 바를 확인해 준다.
이 말은 일종의 전례 문서인 탈출 19,13에 매우 가까운 표현이다.
“함성” 역시 전쟁과 전례의 모습을 결합시킨다(레위 23,24; 민수 29,1; 2사무 6,15; 에즈 3,11 참조).
커팁에는 “그들은”으로 되어 있지만, 커레, 많은 히브리 말 수사본, 몇몇 고대 번역본처럼 위와 같이 읽는다.
이미 3,1에도 한 번 나온 ‘아침 일찍 일어나다’라는 표현은 여호수아기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는 날의 시작을 가리킨다(7,16; 8,10 참조).
이야기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17-19절은 라합 이야기의 종결과(22-25절) 7장의 일화를 준비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18절과 7,21.25 비교).
지휘만이 아니라 승리로 끝나는 결말까지도 하느님께 속하는 성전(聖戰)의 맥락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차지할 수 없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모든 것을 진정한 정복자(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이러한 의식은 이스라엘 외에 다른 민족들도 실행하였는데, 모압 임금 메사의 비문에 따르면(기원전 9세기), 특별히 모압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이를 분명히 명령하기는 하지만(13,16-19; 20,16-18), 이 완전 봉헌이 철저하게 실행된 예는 드물다. 여호 8,2.27; 11,14에 따르면, 이스라엘인들은 정복한 성읍의 가축이나 전리품을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가나안족 성읍들의 주민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신명기계 규정들은(여호 6,21; 10,28-39 참조), 우상 숭배에 오염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도 드물게만 실행된 이론적 규정이었던 것이다.
히브리 말 본문에는 “완전 봉헌물로 바쳐”로 되어 있지만, 7,21과 칠십인역처럼 히브리 말에서 꼴이 비슷한 “탐을 내어”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완전 봉헌물로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을 진영으로 가져갈 경우, 그 완전 봉헌물과 접촉함으로써 진영까지 완전 봉헌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봉헌된 전리품의 일부로서 성소에 갖다 놓는 것을 가리킨다. 24절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진영은 신명 23,15에 따르면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인 라합 씨족이 들어갈 경우에 진영은 부정하게 된다.
완전 봉헌 규정과 관련해서 라합과 그의 씨족은 예외가 된다. 편집자는 이러한 사실을 이 여자의 믿음과(2,9-11 참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베푼 도움을 상기시키면서 정당화한다. 편집자들의 관점으로는 기브온인들의 경우가(9장) 두 번째 예외가 된다(11,19 참조).
이 말은 라합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도 가리킨다.
여호수아가 한 이 저주는 1열왕 16,34에 실현된 것으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