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루카 복음서

11장

주님의 기도1)(마태 6,9-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2)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3)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4)
‘아버지5)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6)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7)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8)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9)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10)’”

끊임없이 간청하여라11)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12)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13)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14)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마태 7,7-11)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15)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16)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17)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18)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예수님과 베엘제불(마태 12,22-30; 마르 3,20-27)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19)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20)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21)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22)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23)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24)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25)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26)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27)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8)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29)

되돌아오는 악령30)(마태 12,43-45)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31)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32)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33)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참행복

27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34)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35)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36)

요나의 표징37)(마태 12,38-42; 마르 8,11-12)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8)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39)

3140)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41)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42)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43)

눈은 몸의 등불44)(마태 5,15; 6,22-23)

3345)

“아무도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함지 속에46)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34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47) 네 눈이 맑을48)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35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49)

36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50)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시다51)(마태 23,1-36; 마르 12,38-40; 루카 20,45-47)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5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53)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54)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55)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56) 그러면 모든 것이57) 깨끗해질 것이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58)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59)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60)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61)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62)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63)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64)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65)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66)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67)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68)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69)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70)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석
1

루카는 마태 6,5-15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내리신 가르침을 1-13절에 모아 놓는다. 곧 기도의 본보기인 ‘주님의 기도’(2-4절), 항구히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비유(5-8절), 그리고 온전한 신뢰심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라는 권면이다(9-13절).

2

예수님의 기도에 관해서는 3,21 각주 참조.

3

요한의 제자들의 기도에 관해서는 5,33 참조.

4

루카 복음서의 기도문은 마태오 복음서의 기도문보다 짧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다르다(다음의 각주들 참조).

5

첫머리에서 하느님을 부르는 것이 마태오 복음서보다 간단하다. 22,42; 23,34.46(10,21 참조)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같은 식으로 하느님을 부른다.

6

이 청원에 관해서는 마태 6,9 참조.

7

이 청원에 관해서는 마태 6,10 각주 참조.

8

이 청원에 관해서는 마태 6,11 각주 참조.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양식”을 “오늘” 주십사고 청하는 반면, 루카 복음서에서는 “날마다” 주십사고 청한다. 루카는 9,23에서처럼(그곳 각주 참조)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것이 이어지는 전체의 맥락에서 고려하기 때문이다.

9

이 청원에 관해서는 마태 6,12 각주 참조. 마태오 복음서에는 “저희도 용서하였듯이”로 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저희도 용서하오니”로 되어 있다. 마태오는 형제에 대한 용서가 기도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반면에 루카는 다른 이들을 용서해 주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지속되는 한 늘 되풀이되는 것으로 이해한다(3절 각주 참조).

10

이 청원에 관해서는 마태 6,13 각주 참조. 루카 복음서에는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이 청원의 후반부 “저희를 악(또는, ‘악한 자’)에서 구하소서.”가 들어 있지 않다. 아무튼 루카도 “유혹”이 ‘악한 자’ 곧 사탄의 짓이라고 말한다(4,2.13; 8,12-13. 그리고 22,31 참조).

11

이 비유의 문맥, 그리고 루카가 이를 9-13절에 적용시킨다는 사실은, 이 비유의 의미가 바로 기도를 그렇게 하라는 권고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비유는 루카가 비슷한 뜻을 부여하는(18,1) 18,2-5의 비유와 여러 공통된 특징을 드러낸다. 이 두 비유는 5,36-38; 13,18-21; 14,28-32; 15,4-10(13,1-5 참조)에서처럼 본디 한 쌍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12

직역: “벗이여!”

13

“그가 줄곧 졸라 대면”의 직역: “그의 끈기 때문에.”

14

우정 때문이 아니라, 18,4-5의 불의한 판관처럼, 자기가 다시 편해지려고 벗의 청을 들어준다. 사람이 이럴진대 하느님은 더욱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15

이 도입 문장은(16,9 참조) 앞의 비유와 그것을 적용하는 다음의 말씀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한다.

16

직역: “주어질.”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러한 수동태는 하느님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분의 행위를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방식이다.

17

마태오 복음서의 ‘빵과 돌’이 루카 복음서에서는 ‘달걀과 전갈’로 대체된다. 루카의 본문은 10,19에 나오는 뱀과 전갈의 언급에서 착상을 얻었을 수 있다. 아무튼 루카 복음서의 대조가 마태오 복음서의 것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18

마태 7,11에는 “성령” 대신에 “좋은 것”으로 되어 있다. 루카에게는 그의 작품인 사도행전에 자주 언급되듯이, 성령이 “좋은 것”, 하느님의 은혜 그 자체이시다. 그래서 여기에 “성령”을 집어넣은 것이다.

19

직역: “그리고 (그분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그것은 벙어리였다.” 그런데 “그것은 -였다.”라는 말이 일부 수사본들에는 들어 있지 않아, 이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루카는 이렇게 마귀를 이를테면 일종의 병원체(病原體)로 간주한다. 13,11.16에서도 마찬가지다(4,39 각주 참조). 반면에 마태 12,22(와 9,32)에서는 마귀가 들린 결과로 병이 생긴다.

20

그리스 말에서는 “벙어리”와 “말을 못하는 이”가 똑같다.

21

베엘제불에 관해서는 마태 12,24 각주 참조.

22

“하늘”은 당시의 유다인들이 직접 언급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고 그분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하나였다(1마카 3,18; 다니 4,23 등 참조). 이러한 관습을 15,7.18.21; 20,4에서도 볼 수 있다.

23

루카 복음서에서 이 절은 29-36절을 준비하는 구실을 한다(29절 앞 소제목 각주 참조).

24

“집”을 “집안”이나 “가정”으로 옮길 수도 있다. “집들도 무너진다”의 직역: “집이 집 위로 무너진다.”

25

우리는 마태 12,27에서는 “너희의 아들들”을 “너희의 제자들”로 번역하였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일반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 문맥에서는 “아들들”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 히브리 말에서 “아들”은 어떠한 집단에 소속됨을 뜻하기도 한다. 곧 여기에서는 그냥 ‘너희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너희의 구마자(驅魔者)들’을 가리킨다. 루카는 사도 19,13에서도 에페소에 있는 유다인 구마자들을 언급한다.

26

이 말씀에 관해서는 마태 12,27 각주 참조.

27

이 문맥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은 루카의 고유한 것으로서, 탈출 8,15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라오의 요술사들은 처음에는 모세의 기적들을 부정하다가, 마침내는 “하느님의 손가락”이 이룬 작품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능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새로운 모세’이신 것이다(마태 12,28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

28

예수님의 이 말씀에 관해서는 마태 12,28 각주 참조.

29

‘모아들이다’에 관해서는 마태 12,30 각주 참조. 마태 12,30에도 똑같이 나오는 이 문장은, 마르 9,40의 병행구인 루카 9,50의 문장보다 준엄하다. 이러한 준엄성은 마태오와 루카가 같은 생각을 논쟁의 맥락 속에 배치시킨 데에 기인한다.

30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유다교에서 빌려 온 마귀와 관련된 표상들을 가지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가 다시 그 손아귀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시기 때문에, 불행한 일이 벌어지리라고 보지 않으신다(10,18; 11,20 참조). 그러면서도 회개한 이들에게 그들을 노리는 위험을 경고하신다. 마태 12,43-45에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악한 세대”에 적용된다(마태 12,45 각주 참조).

31

“물 없는 곳”과 관련해서는 “광야”에 관한 8,29 각주 참조.

32

“그때에”라는 말이 일부 수사본들에는 들어 있지 않아, 이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33

‘일곱 악령’에 관해서는 8,2 각주 참조.

34

“선생님”의 직역: “당신.”

35

“모태”와 “가슴”은 어머니를 뜻한다. 이는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키는 전형적인 히브리 말식 표현이다(10,23과 마태 13,16 또는 루카 23,29 참조).

36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말씀은 8,21과 직결된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당신 어머니와의 육친 관계와 대립시키시면서까지 신앙의 위대함을 선포하신다. 이 선포의 대상은 14-23절의 대적자들과 반대되는 모든 신앙인이다. 루카는 이 구절에서 마리아에 대하여 무슨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는(2,19) 전형적인 신앙인이다(1,45).

37

예수님의 청중은 그분께 자기들이 경탄할 만한 “표징”을 요구한다(16절).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에 일어난, 또는 엘리야가 일으킨 기적들을 표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이적을 일으키기를 거부하신다. 예수님의 존재가(30절), 복음을 선포하시는(32절) 그분 자신이 표징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동시대인들과, 솔로몬과 요나의 말을 받아들인 옛날의 이교인들을 대조시키신다.

38

표징이 되는 여러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7,22; 11,20), 이 세대가 한 가지 “표징”밖에(또는, 마르 8,12에서처럼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두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구원 행위를 가리키는 단 한 가지 표징인 것이다.

39

요나가 설교를 하여, 곧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여(요나 3,2-5)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었다고 32절은 설명한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과 관련해서도 같은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 말씀의 원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복음서를 저술한 루카는, 바로 이 부활을 예수님의 표징 그 자체로 보았음에 틀림없다(이러한 연유로 “그러할 것이다”라는 미래형이 쓰인다). 마태 12,40은 더 나아가서, 사람의 아들이 “땅속에” 머무르실 사흘을 예시하는 뜻으로,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냄에 따라 표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40

31절과 32절 내용의 순서가 마태오 복음서에는 거꾸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본디의 순서일 것이다. 루카는 이 단락을 설교에 이어지는 회개로 끝을 맺으려고 순서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

41

솔로몬 임금은 성경에서 “지혜”의 화신과 같은 존재이다(1열왕 3; 5,9-1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루카는 특히 예수님의 “지혜”를 강조하고(2,40.52; 21,15),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솔로몬의 즉위식을 상기시킨다(19,35-38).

42

“요나의 설교”에 관해서는 30절 각주 참조.

43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준비하는 역할 때문에, 요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7,26-27). 예수님께서는 더더욱 그러하시다.

44

루카가 예수님을 표징으로 소개하는 이 문맥에서, 33-36절은 이 표징을 가려내기 위해서 분명하게 보라고, 곧 믿으라고 촉구하는 기능을 한다.

45

이 절의 내용은 8,16에도 나온다. 이 33절은 “등불”이라는 말로 연결된 다음 절을 도입하는 구실을 한다.

46

“함지”에 관해서는 마태 5,15 각주 참조. “속에” 대신에 “밑에”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수사본들에는 “함지 속에”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아, 이 말을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47

“등불”이 사물을 보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눈”에 비유되는 것이다. 둘 다 밝을 수도 있고 어두울 수도 있다.

48

‘맑다’에 관해서는 마태 6,22 각주 참조.

49

여기에 ‘눈과 등불’의 표상이 지니는 교훈이 나온다. 눈은 어둡지 않아야 볼 수 있다. 29-32절에 이어지는 이 구절에서, 루카는 “이 세대”가 예수님에게서 구원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는 불신(不信)의 어둠을 생각하는 것 같다.

50

이 절 앞부분에서 온몸이 환하다는 것은 35절에 이어 내적으로 환한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위의 말씀은 이렇게 내적으로 빛에 차 있으면, 외적으로 주어지는 영적인 빛도 충만히 누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51

이 단락에 나오는 질책의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마태 23장에도 나온다. 루카는 “바리사이들”에 대한 비난과(39-44절) “율법 교사들”에 대한 비난을(46-52절) 나누어 소개한다.

52

예수님께 호의적인 바리사이에 관해서는 7,36 각주 참조.

53

식사 전에 손이나 몸을 씻는 것은 일종의 ‘목욕재계’(마태 15,2 각주 참조)로서, 당시의 율법 학자들은 이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마르 7,3-4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배척하시고(마태 15,20), 그분의 제자들은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마태 15,2; 마르 7,2-5).

54

루카 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들의 외적이고 형식적인 신앙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첫째 요구 사항으로 가르치시는 내적 신앙이 대비된다(16,15. 그리고 마태 15,1-20; 마르 7,1-23 참조). “속” 곧 “마음”에 관해서는 6,45; 10,27; 12,34; 21,34; 24,25 참조.

55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절은, 왜 하느님께서 외적 신앙과 이러한 신앙의 율법주의에 만족하실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56

“자선”은 루카가 매우 중히 여기는 주제이다. 이 문맥에서는 루카만 이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12,33; 16,9; 19,8; 사도 9,36; 10,2.4.31; 11,29; 24,17에서도 마찬가지다(그리고 6,30; 18,22; 21,1-4에서는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와 병행으로 이 주제를 언급한다). 아마도 루카 자신이 병행구인 마태 23,26을 이런 식으로 변형하였을 것이다.

57

“모든 것”은 바리사이들이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릇이나 기물들을 뜻한다(티토 1,15도 참조).

58

“운향”(芸香)은 야생풀이다. 라삐들은 신명 14,22-23의 십일조 규정을 모든 경작 식물에 적용시키는데, 야생 식물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많은 라삐가 운향은 십일조 규정에서 제외된다고 여겼지만, 루카만은 이를 여기에서 언급한다.

59

마태 23,23은 “자비”를, 루카는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60

팔레스티나 땅의 무덤은 우리나라처럼 봉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의 자연/인공 동굴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부정(不淨)하게 만드는 “무덤”에 관해서는 마태 23,27 각주 참조. 마태 23,27에서는 무덤 밖의 아름다움과 그 안의 부정(不淨)이 대조된다. 반면에 루카는 이 부정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바리사이들의 은폐 행위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까지 다 아신다(16,15).

61

“율법 교사”에 관해서는 7,30 각주 참조. 율법 교사들은 보통 때에는 자신들을 바리사이들과 구분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들과 연대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유다교 사상과 생활을 이끄는 지도자로 질타하시어, 그러한 구분을 드러내신다.

62

마태 23,4와 각주 참조.

63

최근의 고고학 발굴로 이러한 말씀의 현실성이 확인되었다. 대(大)헤로데 시대부터(이 임금에 관해서는 마태 2,1 각주 참조) 팔레스티나 땅에서 “예언자들의” 거창한 “무덤”들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64

예수님 당시의 유다교 지도자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예언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7,30; 13,33; 20,1-8 참조).

65

마태 23,34는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루카는 이렇게 “사도들”을 이야기한다. 루카는 틀림없이 자기가 자주 언급하는(6,13 각주 참조) 복음 선포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태 23,34에서는 예언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예수님이신 반면,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지혜” 곧 하느님 자신이시다(“하느님의 지혜”에 관해서는 7,35 각주 참조).

66

‘예언자 살해’에 관해서는 6,23 각주 참조.

67

직역: “…… 모든 예언자의 피가 (하느님에 의해서) 이 세대에 요구될 것이다.” 살인에 대한 판결을 드러내는 칠십인역 구약 성경의 이 표현을, 신약 성경에서는 루카만 이용한다(창세 9,5; 42,22; 2사무 4,11; 시편 9,13; 에제 33,6.8).

68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아벨과 즈카르야의 살해가 히브리 말 성경에서는 처음과 마지막 살인이다(창세 4,8-10; 2역대 24,20-22). 그래서 이 둘은 성경 역사에 나오는 범죄 전체를 대표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리스 말 구약 성경에서 전해지는, 곧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들 같은 그 이후의 살해자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문장이 팔레스티나적 관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69

책임도 세습된다는 성경의 연대성에 관한 생각에 따라, 이 “세대”가 조상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동조하고 나섰기 때문에(48-49절) 그것들에 대한 벌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70

마태 23,13에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질책을 받는다. 여기에서는 “지식의 열쇠”가 나오는데, 루카에게 “지식”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