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루카 복음서
12장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태 16,5-12; 마르 8,14-21)
그러는 동안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1)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2)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3)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마태 10,26-33)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4)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5)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6)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7)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8)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9)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10)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11)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12)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13)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14)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15)”
탐욕을 조심하여라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18)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19)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20)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21)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22)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23)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24)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25)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마태 6,25-3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26) 마라.
목숨은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소중하다.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골방도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27) 늘릴 수 있느냐?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
그리고 나리꽃들이28)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30)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31)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32)”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마태 6,19-21)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33)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34)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깨어 있어라(마태 24,42-44)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36)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37)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38)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39)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마태 24,45-5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40)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41)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42)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43) 불충실한 자들과44)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46)”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48)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49)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50)”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마태 10,34-36)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52)”
시대를 알아보아라(마태 16,2-3)
예수님께서 군중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54)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55)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56)”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57)(마태 5,25-26)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58)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59)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먼저”를 다음 문장의 예수님 말씀 첫머리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곧 “(무엇보다) 먼저 바리사이들의 …… 조심하여라.”
루카는 여기 1-12절에서 주로 마태오 복음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이 말씀들은 제자들이 ‘스승님’을 어떻게 증언해야 하는지를 규정지으려는 의도를 지닌다.
“바리사이들의 누룩”에 관해서는 마태 16,6 각주, “위선”에 관해서는 루카 6,42 각주 참조.
마태 10,27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만 몰래 하신 말씀과 장차 제자들이 수행할 공공연한 설교가 대비된다. 그러나 루카는 제자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곧 과거에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제자들의 말과 미래에 그들이 수행할 복음 선포를 대립시킨다. 이렇게 하여 성령 강림 이전의 이른바 유보(留保) 기간과 그 이후의 설교 활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근동 지방의 편편한 지붕은 사람들이 대화를 하거나 소식을 퍼뜨리는 일반적인 장소였다.
하느님만이 이러한 “권한”과 권능을 쥐고 계신다. 바로 이러한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루카는 강조한다(1,50; 18,2.4; 23,40; 사도 10,2.22.35).
“닢”에 관해서는 마태 10,29 각주 참조. 마태 10,29에서는 참새 두 마리를 한 닢 값으로 말한다. 루카는 이렇게 참새의 값을 내려, 5,36과 11,12에서처럼 표상을 더 강하게 만든다.
직역: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하나도 하느님 앞에서 잊히지 않는다.”
‘증언하다’에 관해서는 마태 10,32 각주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의 천사들 앞에서 최종 심판을 하실 때를 가리킨다(9,26). 여기에서는 이것이 팔레스티나의 관습에 따라 간접적으로 표현되지만(“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15,10도 참조), 마태 10,32에서는(“내 아버지 앞에서”) 더 명백히 드러난다. 마태 25,31-46과 달리 여기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판관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위한 증인으로 나오신다.
이 문장은 “…… 하는 자는,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모른다고 말해질 것이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이 말씀에 관해서는 마태 12,32 각주 참조. 루카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용서 가능한 모욕과 “성령”에 대한 용서 불가능한 모독을 구분하여,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명을 수행하시는 시기와(이때는 예수님을 죽인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23,34; 사도 3,17; 13,27),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교의 시기를 대조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사도 2,38; 3,19; 13,46; 18,6; 28,25-28 참조). 마태 12,32와 마르 3,22-29에서는 이 말씀이 다른 맥락에 배치되기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스 말에서는 “관청”과 “관아” 사이에 별다른 뜻 차이가 없다. 이것들을 사람으로, 곧 ‘통치자’, ‘지배자’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아무튼 루카는 이 두 낱말로 이교인 또는 이교 국가 기관을 생각한 것 같다.
일부 수사본들에는 “무엇으로 답변할까”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마태 10,20과 마르 13,11에서는 “성령”께서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루카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이 증인들에게 가르쳐 주시리라고 말함으로써, 이들에게 더욱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한다(로마 8,15와 유다인들의 전형적인 표현인 갈라 4,6 참조). 루카는 또 같은 약속을 다른 형태로 21,15에 다시 소개하고, 이 약속의 실현을 사도 4,8; 5,32; 7,55에서 보여 준다.
13-34절에는 현세의 제물을 어떠한 자세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이 모아져 있다. 곧 예수님께서 특수한 문제를 계기로 내리시는 일반적 경고(13-15절),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6-21절), 양식과 의복 걱정에 대해 제자들에게 내리시는 권고(22-32절), 그리고 자선에 관한 권면이다(33-34절).
유다인들은 라삐들에게 이러한 중재를 곧잘 요청하였다.
“사람아”에 관해서는 5,20 각주 참조.
“중재인” 대신에 “분배자”로 옮길 수도 있다. 현세적 직무를 맡아 주십사는 청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거절하신다. 이로써 자신을 “지도자와 판관”으로 내세운 모세와(탈출 2,14. 그리고 사도 7,27-35 참조) 당신을 구분하시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왜 돈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절하셨는지 설명된다. 돈은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다.
본보기가 되는 이 비유는(10,30 각주 참조) 결론에서(21절) 무엇이 참부(富)인지 부각시킨다. 곧 12,33과 18,22에서도 볼 수 있는 대로(16,9 참조),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권고이다.
루카 복음서의 비유에서는 주인공들이 가끔 독백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드러낸다(15,17-19; 16,3; 18,4; 20,13). 이를 마태 21,38과 24,48(= 루카 12,45)에서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 19절은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해야지. ‘영혼아, 네가 …….’”로 옮기기도 한다. 그런데 “영혼”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프시케는 구약 성경에서 자주 그러하듯 생명체 전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때로는 ‘생명, 목숨’(6,9; 9,24; 12,20.22.23; 14,26; 17,33; 21,19)으로, 때로는 여기 첫 문장에서처럼 재귀 대명사(“자신”)로, 때로는 둘째 문장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자”)로 옮겨야 한다.
‘되찾아 가다’가 그리스 말에서는 복수 3인칭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비인칭 용법으로 하느님을 가리킨다(6,38 각주 참조). 주님께서는 이 부자를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시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대신에 “하느님을 향해서는”, “하느님과 관련된 것에서는”, “하느님을 위해서는”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다’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가리킨다(16절 각주 참조).
‘걱정하다’에 관해서는 마태 6,25 각주 참조.
“수명”과 “조금”에 관해서는 마태 6,27 각주 참조.
“나리꽃”에 관해서는 마태 6,28 각주 참조.
길쌈을 한다는 것은 옷을 만듦을 뜻한다.
일부 수사본들에는 “하느님의”로 되어 있다.
“양 떼”는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고전적 표상이다(창세 48,15; 예레 31,10; 50,19; 호세 4,16; 13,4-6; 미카 2,12-13; 4,6-7; 7,14; 스바 3,19; 특히 시편 23,1; 95,7; 이사 40,11; 49,9-10; 에제 34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를 이스라엘(마태 9,36; 마르 6,34), 죄인인 유다인들(마태 10,6; 15,24; 루카 15,4-6; 19,10), 또 여기에서처럼 제자들의 공동체에 적용하신다(마태 26,31; 마르 14,27. 그리고 요한 10,1-16.27; 21,15-17; 사도 20,28-29; 1베드 5,2-3 참조).
32절의 이 결론은 루카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 6,19-21에도 조금 다른 표현으로 나오는 가르침으로, 이 첫머리에 루카는 이렇게 자선에 관한 권고를 배치한다(16절 각주 참조). 루카가 “자선”을 강조하는 것에 관해서는 11,41 각주 참조.
‘축나지 않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무진장하다’라는 뜻도 있다.
루카는 35-48절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라고 권면하는 일련의 비유를 모아 놓았다.
37절과 17,8에서처럼, 발목까지 늘어지는 겉옷 자락을 올려 띠로 묶은 것은, 즉시 일할 수 있게 준비를 갖춘 모습이다. 이는 또한 이스라엘인들이 파스카 축제를 지낼 때에 취하는 여행자의 자세이다(탈출 12,11). 그래서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몸가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혼인 잔치”는 그것의 상징성보다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는 늦은 시각을 드러내는 기능만 수행하는 것 같다. 친척과 친지들과 어울려 마시고 놀다 보면 언제 귀가할지 모르는 것이다.
“밤중”의 직역은 “이경”이고, “새벽”의 직역은 “삼경”이다. 우리나라에서 밤 시간을 다섯 경(更)으로 나눈 것과 비슷하게, 옛날 로마인들은 네 경으로(마태 14,25; 마르 13,35), 그리고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세 경으로 나누었다. 여기에서는 유다식 계산법을 따르는 것 같다.
집을 뚫는 것에 관해서는 마태 6,19 각주 참조.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물음은 모든 제자에게 내리는 권고에서(35-40절), 관리자로서 형제들을 책임진 이들에게 내리는 권고로(42-48절) 넘어감을 나타낸다.
“집사”는 복음서 저자들 가운데에서 루카만 사용하는 용어로서(16,1.3.8 참조), 중요한 임무를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1코린 4,1-2).
속으로 생각하는 것에 관해서는 17절 각주 참조.
‘처단하다’에 관해서는 마태 24,51 각주 참조.
마태 24,51에는 “불충실한 자들” 대신에 “위선자들”이 나온다.
47-48절은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데, 특히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48절 후반부로써 41-48절의 단락이 마무리된다.
직역: “많이 주어진 모든 이에게는 많이 요구되고, 많이 맡겨진 이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된다.” 이러한 수동태는 하느님께서 주체이심을 가리키기 때문에 위와 같이 옮긴다.
루카는 49-53절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에 관하여 하신 여러 말씀을 모아 놓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의 절박성에 관한 다음 단락을(12,54─13,9) 준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불”이 예수님께는 본디, 구약 성경의 종말론적 장면에서 하느님의 심판 때에 나타나는 불일 것이다(유딧 16,17; 이사 66,15-16; 에제 38,22; 39,6; 말라 3,19). 그러나 루카는 성령에 의한 세례와 성령 강림 때에 나타난 불을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3,16 각주; 사도 2,3.19 참조).
마르 10,38에는 순교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세례”가 고통의 “잔”과 함께 나온다. 여기에서는 심판의 문맥 속에 “불”과 함께 언급된다. 17,26-29에서는(2베드 2,5-6; 3,6-7) 불과 물이 심판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내리는 심판 대신에, 당신 자신에게 미치는 심판을 가리키신다.
“…… 내가 얼마나 괴로울(번민할) 것인가?”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49절을 함께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수난 곧 구세주로서 수행하셔야 할 사명의 완수를 생각하시며 ‘마음을 졸이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으키러 왔다”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마태 10,34에서는 “분열”보다 더 구체적으로 “칼”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본디 쓰인 낱말일 것이다. 루카는 자주 “평화”를 메시아가 가져오는 선물 그 자체로 이야기한다(1,79 각주 참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이러한 사실을 역설적으로 부정하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가져오시는 평화가 거짓 예언자들이 꿈꾸던(예레 6,14; 8,11; 에제 13,10.16) 물질적이고 손쉬운 평화가 아님을 뜻한다.
이러한 가정의 분열은 예언 전통에서, 세상 종말에 일어나는 환난의 한 특징이다(미카 7,6; 하까 2,22; 말라 3,24). 21,16과 병행구에서 다시 이 주제가 언급된다.
12,54에서 13,9까지 루카는 회개의 절박성에 관한 일련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곧 현시대를 알아보라는 호소(54-56절), 심판 이전에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필요성에 관한 비유(57-59절),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시사 문제에 관한 해석(13,1-5), 그리고 열매를 맺으라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더 주는 것에 관한 비유이다(13,6-9).
팔레스티나 땅에서는 비구름이 지중해인 서쪽에서 온다. 그리고 사막이 있는 동쪽이나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더워진다.
“위선자”에 관해서는 6,42 각주 참조.
예수님의 “시대”나 때는 그 표징들이 분명하기 때문에(7,22; 11,20) 풀이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 비유가 형제적 애덕의 의무를 드러내는 데에 이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심판 전에 빨리 화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종말론적 의미가 이 비유의 원의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와 합의를 보도록”의 직역: “그(= 너를 고소한 자)에게서 풀려나도록.”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해서 서로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것이다.
“닢”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렙톤인데, 이는 당시 유통되던 화폐 가운데에서 가치가 가장 작은 쇠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