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루카 복음서

22장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마태 26,1-5; 마르 14,1-2; 요한 11,45-53)

1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1) 다가왔다.

2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백성이 두려워,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다.2)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마태 26,14-16; 마르 14,10-11)

3

그런데 사탄이3)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이스카리옷이라고4)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4

그리하여 그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5)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길6)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

5

그들은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6

유다는 그것에 동의하고,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마태 26,17-19; 마르 14,12-16)

7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8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7) 보내시며 이르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

9

그들이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8) 만날 터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거라.

11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2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놓은 큰 이 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3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성찬례를 제정하시다9)(마태 26,26-30; 마르 14,22-26; 1코린 11,23-25)

14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10)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11)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12)

17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13)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14)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5)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16)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마태 26,21-25; 마르 14,18-21; 요한 13,21-30)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17)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18)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23

그러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19)(마태 20,24-28; 마르 10,41-45)

24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20)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21)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22)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시다(마태 19,28)

28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23)

30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24)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25)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마태 26,31-35; 마르 14,27-31; 요한 13,36-38)

31

“시몬아, 시몬아!26)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27)

32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28)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29)

33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3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나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30)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다.’는 말씀이다.31)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된 일이 이루어지려고 한다.32)

38

그들이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하자, 그분께서 그들에게 “그것이면 넉넉하다.” 하고 말씀하셨다.33)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34)(마태 26,36-46; 마르 14,32-42)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산으로 가시니,35)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36)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37)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38)

4339)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40)

4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잡히시다(마태 26,47-56; 마르 14,43-50; 요한 18,1-11)

47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라고 하는 자가 앞장서서 왔다. 그가 예수님께 입 맞추려고41) 다가오자,

48

예수님께서 그에게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9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이42) 사태를 알아차리고, “주님, 저희가 칼로 쳐 버릴까요?” 하고 말하였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5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43) 그 사람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52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단 말이냐?44)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는 너희가 나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45)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마태 26,69-75; 마르 14,66-72; 요한 18,15-18.25-27)

54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55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56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57

그러자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하고 부인하였다.

58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하였다.

59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46)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하고 주장하였다.

60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하였다.47)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61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48)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62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예수님을 조롱하다(마태 26,67-68; 마르 14,65)

63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64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65

그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49) 말을 많이 퍼부었다.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마태 26,59-66; 마르 14,55-64; 요한 18,19-24)

66

날이 밝자 백성의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50) 모여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51) 끌고 가서,

67

“당신이 메시아라면52)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68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53)

69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54) 것이다.”

70

그러자 모두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55) 말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56) 하시자,

71

그들이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

주석
1

이 두 축일에 관해서는 마르 14,1 각주 참조.

2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루카가 이미 말한 대로(19,48 각주 참조), 예수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 두려워 드러내 놓고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3

사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려고 하실 때에 그분을 유혹하고 나서 떠나가 있었다(4,13). 그런데 이제 요한 13,2.27(루카 22,53 참조)에서처럼 최후의 공격을 하려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4

이스카리옷에 관해서는 마태 10,4 각주 참조.

5

“성전 경비대”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루카만 이 “(성전 경비대)장”이라는 말을 쓴다(여기와 52절에서는 복수, 사도 4,1; 5,24.26에서는 단수). 이 성전 경비 책임자들은 레위인들이었을 것이다.

6

‘넘기다’에 관해서는 마태 26,2 각주 참조.

7

루카만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이 ‘두 제자’를 언급한다(8,51 각주 참조).

8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에 관해서는 마르 14,13 각주 참조.

9

루카는 예수님의 바람(15절), 하느님의 나라에서 완성될 옛 파스카에 관한 언급(16-18절) 등, 자기에게만 고유한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한다. 그의 성찬 제정문은 바오로의 것에 가깝다(1코린 11,23-25).

10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다’라는 동사를 당신의 ‘수난’을 가리키는 데에만 사용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이 낱말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지만(17,25; 마태 16,21과 병행구; 마태 17,12와 마르 9,12), 루카의 두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명확한 의미까지 내포한다(루카 24,26.46; 사도 1,3; 3,18; 17,3). 여기에서도 이 의미를 지닌다. 히브리서에서는(2,18 참조) 줄곧, 베드로 1서에서는(2,21 참조) 가끔 이 뜻으로 쓰인다.

11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그분의 현존 안에서 누리는 행복과 평화의 장소로 묘사하기 위하여 유다교와 복음서들에서 사용하는 고전적 표현이다.

12

파스카 식사 의식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의 해방을 기념한다(탈출 12). 이것이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최종적 구원을 누리며 참여하는 메시아의 잔치에 대한 예형으로 제시되는 것이다(이러한 식사, 또는 잔치에 관해서는 13,28 각주 참조).

13

여기에서는 “나라”가 16절처럼 장소가 아니라, 세상 종말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통치와 관련된다.

14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성찬 제정의 말씀이 끝난 뒤에 배치한다(마태 26,29; 마르 14,25. 그리고 1코린 11,26 참조).

15

1코린 11,24-25에도 나오는 이 말씀이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 성찬을 그분의 희생을 ‘기념’하는 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기념’은 이스라엘의 파스카 식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탈출 12,14; 13,9; 신명 16,3 참조).

16

루카와 바오로만(1코린 11,25) 예레 31,31-34의 유명한 예언을 상기시키는 “새”라는 수식어를 덧붙인다. 피를 흘리시는(탈출 24,8. 그리고 마태 26,28; 마르 14,24 참조) 예수님의 희생으로 “새 계약”의 때 곧 구원의 때가 시작되는 것이다.

17

직역: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이 식탁 위에 있다.” 루카는 이렇게 배신의 예고를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성찬례 제정 이후에 배치한다. 이로써 그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그분의 본질적인 행동 뒤로 한데 모으려고 하였을 것이다. 루카는 또 유다가 다른 열한 제자처럼 “새 계약”의 식사에 참석하였음을 드러낸다.

18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의 병행구에는 “정해진 대로” 대신에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로 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의 표현은 유다식인데, 루카가 이를 구약 성경을 잘 모르는 그리스계 독자들을 위하여 바꾼 것이다.

19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루카는 요한처럼, 최후의 만찬에 이어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말씀을 전한다. 어떤 것들은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고, 대개는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의 다른 문맥에도 나온다.

20

기원전 수백 년 전부터 그리스 세계에서는 “은인”이라는 칭호를 신이나 영웅이나 임금에게 부여하였다.

21

옛날 팔레스티나 땅도 엄격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였다.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사도 5,6; 1베드 5,5 등 참조).

22

그리스 말에서는 ‘시중들며 섬기다’와 앞 절의 ‘섬기다’가 똑같은 말이다. 그리스 말에서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섬기는 것이나 다 한 낱말로 표현한다.

23

예수님의 왕권에 참여하는 것에 관해서는 탈출 19,6과 1베드 2,9; 묵시 5,10; 22,5 참조.

24

예수님께서는 16절에서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메시아 잔치’라는 표상으로 서술하신다(13,28 각주 참조). 이 나라는 1,33; 19,12-15; 23,42에서처럼 예수님의 나라이기도 하다.

25

앞 절과 연관하여 생각할 때, 루카는 이 말씀을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예수님의 통치에 열두 제자도 참여하리라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구약 성경에서는 ‘심판/재판하다’ 가끔 ‘다스리다’도 뜻한다). 그러나 병행구인 마태 19,28은 사도들이 종말의 심판에 참여하리라고 예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1코린 6,2; 묵시 20,4 참조).

26

시몬이라는 이름에 관해서는 6,14 각주 참조.

27

“나섰다”의 직역: “요청하였다.” 하느님께 허락을 청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체질’이라는 표상은 (아모 9,9에서처럼) 괴로운 시련을 뜻한다. 다음 절은 이 시련이 제자들의 믿음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

28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기 전부터(34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미 그러한 과오 너머의 것을 말씀하신다.

29

“네가 돌아오거든”은 여러 가지로 이해된다. 곧 ‘네가 하느님께(또는, 나에게) 돌아오거든’(그래서, ‘네가 회개하거든’), ‘제자들이 흩어진 다음에 네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거든’, ‘네가 회복되거든’, ‘네가 너의 형제들을 데려오거든’ 등이다. 아무튼 루카 24,34와 바오로에(1코린 15,5)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처음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다. 베드로의 믿음은 마태 16,15-19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초기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30

이제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권고 말씀이 가리키는 것처럼 시련과 투쟁의 시기이다.

31

이사 53,12를 인용한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 가운데에서 루카만이 ‘주님의 종의 노래’를 예수님의 수난에 직접 적용한다. 루카는 사도 8,32-33에서도 그렇게 하고, 사도 3,13.26; 4,27.30에서는(사도 3,13 각주와 8,32 각주 참조) 예수님을 ‘종’이라는 칭호로 부르기까지 한다.

32

이 성경 말씀의 성취는 한편으로는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실현’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 사명 수행의 ‘끝’을 의미한다.

33

예수님의 대답은 “칼”이라는 당신 말씀에 즉각 자기방어를 연상하는 제자들의 생각에 동의하시어 무기를 들라는 말씀이 아니다.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과 더 이상 그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고 싶지 않으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34

이 이야기가 루카 복음서에서는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루카는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가운데에서 세 사람만 따로 데려가시는 것, 세 번에 걸친 그분의 기도, 닥쳐온 “시간”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천사에 관한 환시와 예수님께서 피까지 흘리셨다는 것을 덧붙인다. 그리고 앞뒤로 유혹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배치하여(40절과 46절), 모든 신자가 이 일화에서 얻어야 하는 가르침을 강조한다.

35

예수님의 이 습관에 관해서는 21,37 참조.

36

“유혹”과 그것에 관한 기도에 대해서는 마태 6,13 각주(그리고 루카 11,4) 참조.

37

“잔”에 관해서는 마르 10,38 각주 참조.

38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의 셋째 청원을 상기시키지만(마태 6,10), 루카 11,2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뜻”은 병행구인 마태 26,39와 마르 14,36에 나오는 ‘원하다’의 명사형이다.

39

일부 수사본들에는 43-44절이 없거나 마태 26,39 다음에 나온다. 초대 교회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말하는 이 구절의 내용이 그분의 신성(神性)과 맞지 않다고 여겨 삭제한 것이라고 일부에서는 생각한다. 그러나 본디의 루카 복음서에는 없었는데 매우 이른 시점에, 입으로만 전해지고 있었거나 이미 기록된 출처에서 이 구절이 흘러 들어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이 구절은 뒷날 예수님의 생애나 수난과 관련된 외경의 전통을 이루기도 한다. 아무튼 이 구절의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여, 이를 대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40

이 모습은 낙심한 엘리야에게 천사가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화를 연상시킨다(1열왕 19,4-8). 위의 이야기를 마태 4,11, 그리고 요한 12,29와도 연관 지을 수 있다.

41

입 맞추는 것은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일반적인 인사로서, 애정보다는 존경을 드러내는 몸짓이다.

42

이 사람들은 제자들을 가리킨다.

43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체포되시는 것이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22절), 마태 26,54와 요한 18,11에서처럼,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제자들에게 타이르시는 것이다. 더러는 마태 26,52에서처럼 항거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44

이 말씀에 관해서는 마태 26,55 각주 참조.

45

일시적으로 사탄이 승리하는 때이고 어둠의 권세가 위력을 떨치는 때이다(사도 26,18; 콜로 1,13 참조).

46

마태 26,73에서는(그곳의 각주 참조) 베드로의 말투가 그 이유로 제시된다.

47

루카는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베드로가 맹세까지 하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죄의 무거움을 조금 약화시키는 것이다.

48

예수님의 이 ‘보심’은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데, 31-34절의 경고와 약속을 상기시킨다.

49

‘모독하다’에 관해서는 마르 3,28 각주 참조.

50

여기에서 언급되는 세 부류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명백하지 않다. 20,1과 마르 15,1에 따라 “원로단”을 최고 의회 의원들인 원로들로 판단하여 “백성의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로 옮기기도 한다.

51

“최고 의회”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모임과 함께 그 모임이 열리는 곳까지 가리킨다(사도 4,15 참조).

52

메시아 대신에 그리스도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다인들의 말로는 그리스도보다 메시아가 더 적절할 것이다.

53

일부 수사본들에는 “…… 너희는 대답하지도 풀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로 되어 있다. 아무튼 루카는 예수님께서 이 신문이 당신께 유리하게 끝나리라는 ‘환상’을 조금도 품지 않으심을 드러낸다.

54

“전능하신 하느님의”의 직역: “하느님의 권능의.”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시편 110,1의 표현을 빌려 당신의 메시아 나라가 곧 시작될 것임을 밝히신다.

55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마태 26,63과 마르 14,61에서는 사람의 아들과 동등하게 나오지만, 여기에서는 ‘그리스도-메시아’ 칭호에서(67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1,32.35와 요한 10,24.36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두 칭호 사이의 구분은, 예수님의 충만한 신비를 드러낸다(“하느님의 아들”에 관해서는 1,35 각주 참조).

56

예수님의 이 말씀에 질문의 내용을 부정하는 뜻이 담긴 것은 아니다(23,3 각주 참조). 루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분명히 밝힌다(1,35; 3,2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