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마태오 복음서
27장
빌라도 앞으로 끌려가시다(마르 15,1; 루카 23,1; 요한 18,28)
아침이 되자 모든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한 끝에,1)
그를 결박하여2) 끌고 가서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다.
유다가 자살하다(사도 1,18-19)
그때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3)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4) 나는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하였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5)
수석 사제들은 그 은돈을 거두면서, “이것은 피 값이니6) 성전 금고에7) 넣어서는 안 되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 밭을 사서 이방인들의 묘지로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린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
값어치가 매겨진 이의 몸값,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어치를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8)
주님께서 나에게 분부하신 대로
옹기장이 밭 값으로 내놓았다.”9)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다(마르 15,2-5; 루카 23,2-5; 요한 18,28-38)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총독이 묻자,10) 예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11)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12)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하고 물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마르 15,6-15; 루카 23,13-25; 요한 18,38ㄴ─19,16ㄱ)
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13)
마침 그때에 예수 바라빠라는14)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15) 하는 예수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총독이 그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대답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16)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17)
그러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18)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19)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마르 15,16-20; 요한 19,2-3)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20)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21)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22)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23)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24)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마르 15,21-32; 루카 23,26-43; 요한 19,16ㄴ-27)
그들은 나가다가25) 시몬이라는 키레네26)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라는 곳에 이르렀다.27)
그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28)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29)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그들은 또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30)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에 강도31)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32)
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33)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34)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35)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숨을 거두시다(마르 15,33-41; 루카 23,44-49; 요한 19,28-30)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36)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37)라는 뜻이다.
그곳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38)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39)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그분께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40)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41) 되살아났다.42)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43)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44)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45)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묻히시다(마르 15,42-47; 루카 23,50-56; 요한 19,38-42)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다46)
이튿날 곧 준비일47) 다음 날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리,48)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49)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50)
그러니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하십시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내고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기만이 처음 것보다51) 더 해로울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당신들에게 경비병들이 있지 않소.52) 가서 재주껏53) 지키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들을 세워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54)
로마 제국의 일반적인 정책에 따라 유다 땅의 역대 총독들은 최고 의회의(5,22 각주 참조) 폭넓은 권력 행사를 허용하였다. 최고 의회는 곧 식민 통치자들이 설정한 한도 안에서 유다인들의 종교와 정치 생활을 이끌어 갔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최고 의회가 사형을 언도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역사가들의 의견이 아직도 일치하지 않는다. 복음서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최고 의회가 근본적으로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총독의 승인이 필요하였던 것 같다.
요한 18,12에도 예수님을 결박한다는 말이 나온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부터 결박되시는데, 공관 복음서들에 따르면 이렇게 최고 의회에서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한 때부터 결박되신다.
‘사형 선고를 받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유죄 판결을 받다’를 뜻하는데, 이 문맥에서는 단순한 유죄 판결이 아니라 사형 선고까지 받은 것을 의미한다.
직역: “죄 없는 피를 팔아넘겼으니”(또는, 죄 없는 피를 넘겼으니/배신하였으니). “죄 없는 피”는 히브리 말에서 관용어로 죄 없는 이의 피 곧 타살됨을 뜻한다. 죄 없는 이를 배신함으로써 그의 무죄한 죽음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다의 자살 이야기는 사도 1,18-19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두 본문을 조화시키려고 여러 가지로 시도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아직도 근거가 약하다.
여기에서 “피”는 폭력에 의한 죽음 또는 살인을 뜻한다. 그래서 “피 값”은 ‘목숨 값’을 뜻한다.
“성전 금고”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히브리 말 코르반, 아람 말 코르바나를 음역한 것으로, 본디 하느님께 봉헌한 예물을 가리키는데(마르 7,11 각주 참조), 여기에서는 특히 그러한 것들을 보관하는 성전 금고를 뜻한다.
“받아” 대신에 “가지고”로 옮기기도 한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6절에서 ‘거두다’로 옮긴 것과 같은 동사이다.
즈카 11,12-13을 자유로이 인용하면서 예레 18,2-3; 19,1-2; 32,6-15에 나오는 여러 요소를 덧붙인 것이다. 복음서 저자의 교회 신자들은 “옹기장이 밭”과 “피밭”이라는 명칭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태오는 이러한 명칭으로써 구약 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일과 또 배신한 값으로 받은 돈의 처리에 관한 예언자들의 예고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던진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카 23,1-2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최고 의회는 예수님께서 자칭 임금이라고 주장한다고 빌라도에게 고발한다.
26,25.64에도 같은 대답이 나오는데, 그곳에서는 동사만 과거로 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도 나오는 이 대답을, 직설적인 답변을 회피하면서 유보적으로 긍정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정녕 유다인들의 임금이시지만, 유다인들이 고대하거나 빌라도가 생각하는 임금은 아니신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에 관해서는 26,63 각주 참조.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를 석방하는 관습은 모든 복음서가 전하듯 실제로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다른 문헌들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일부 수사본들에는 바라빠 앞에 예수라는 이름이 들어 있지 않아, 이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복음서 본문에는 본디 이 이름이 있었는데, 이를 생략하는 전통이 오리게네스 교부 때부터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예수가 당시에는 흔한 이름으로서 이 악명 높은 죄수도 그렇게 불렸지만,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예수를 빼고 바라빠로만 부른 것이다.
메시아 대신에 그리스도로 옮기기도 한다. 22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의 직역: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오!” 다음 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십자가형에 관해서는 마르 15,13 각주 참조.
성경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신명 21,6-8; 시편 26,6; 73,13 참조) 빌라도의 행동과 말이 명백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 곧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폭력적인 죽음에 관한 모든 책임을 유다인들이 지게 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한 이 대답도 그 표현 방식의 뿌리가 구약 성경에 있다(2사무 1,13-16; 3,29; 예레 51,35. 그리고 루카 23,28 참조). 예수님과 관련하여 유다인들이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였든, 그들은 종교적으로 양자택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로 인정하거나,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서 그분의 사형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절의 내용을 근거로 하는 어떠한 형태의 반유다주의도 오류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로마 “채찍”에는 동물의 뼈나 납덩어리가 달려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사형수를 쇠약하게 만들어 십자가의 고통을 줄이려고 채찍질을 하였다. 이러한 체형은 로마에서 유래하였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유다인들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다른 그리스 말이 쓰이는 10,17과 23,34. 그리고 사도 5,40과 22,19 참조).
“총독 관저”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라틴 말 praetorium을 음역한 것이다. 이 용어는 본디 로마 장수의 막사나 거처 또는 그것들이 선 자리를 뜻하다가, 나중에는 로마 황제의 본영(本營)이나 궁궐, 또는 황제의 근위대를 가리키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여기에서처럼 총독과 같은 고관의 관저도 뜻하게 된다.
“부대”에 관해서는 마르 15,16 각주 참조.
“진홍색 외투”는 로마 군사의 망토로 여겨진다. 마르코 복음서에는(15,17) “자주색 옷”으로 되어 있는데, 이로써 마르코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 같다. “자주색”은 임금의 색인 것이다.
여기에서 “갈대”는 임금의 권한과 권위를 상징하는 왕홀을 대신한다.
로마인들이 “황제, 만세!” 하면서 황제에게 인사하듯이 하는 말이다. “만세”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26,49에서 “안녕하십니까?”로 옮긴 말과 같다.
“나가다가”는 총독 관저보다는 예루살렘성을 나감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키레네는 북아프리카 해안 지방의 그리스 식민지였는데, 많은 유다인이 그곳에 정착해 있었다(사도 2,10; 11,20 참조).
골고타는 ‘해골’을 뜻하는 아람 말 굴갈타를 그리스 말로 음역한 것이다. 생김새가 해골을 닮았다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는 ‘쓸개처럼 쓴 양념을 친 포도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마르코 복음서에는(15,23) “몰약을 탄 포도주”가 나온다. 이러한 술의 용도에 관해서는 그곳의 각주 참조. 마태오는 병사들이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특히 시편 69,22를 가리키는 암시와 함께) 마실 수 없는 음료를 권하여 예수님을 다시 한번 놀리려는 악의에서 포도주를 건넨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행동에 관해서는 마르 15,24와 각주 참조.
이러한 죄명 패는 형벌의 일부에 속하였다. 풍자적인 이 문구는 아마도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쓰였을 것이다(이 일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요한 19,19-22 참조).
“강도”에 관해서는 26,55 각주 참조.
머리를 흔드는 것에 관해서는 시편 22,8과 109,25 참조. 이는 상대방을 경멸하거나 모욕하는 몸짓이다. ‘(하느님을) 모독하다’에 관해서는 마르 3,28 각주 참조.
이 말에 관해서는 26,61과 각주 참조.
“너 자신이나 …… 아들이라면”을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로 옮기기도 한다.
이 비아냥거림에 관해서는 시편 22,9; 지혜 2,13.18-20 참조.
그리스 말에서 “낮 열두 시”는 “제6시”, “오후 세 시”는 “제9시”이다(다음 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현재의 아침 6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로마식 시간 계산법에 따른 것이다. 십자가에서부터 온 땅(또는, 나라) 위로 퍼진 “어둠”은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탈출 10,22; 아모 8,9-10 참조).
(아람 말, 또는 히브리-아람 말로 된) 시편 22,2를 인용하신 것이다. 이 외침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직접 하느님께 올리는 것이므로, 비통의 부르짖음이기는 하지만 절망의 절규는 아니다. 이 인용구는 우선 단말마의 고통과 소외를 절절히 드러내는 외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편 22편의 첫머리만 직접 인용되기는 하지만, 이 시편 전체가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십자가 죽음의 배경을 이룬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시편에서는 바로 이어서 하느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가 고백되고, 또 후반부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기도자의 정당성과 하느님의 구원이 노래된다. 그리하여 이 비통한 절규는 결국 신뢰의 외침, 현재의 지극한 고통에 상응하여 표현되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외침이 되는 것이다.
유다교의 민중 신앙에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 백성,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의로운 이들이 곤궁에 처했을 때에 곁에서 도와주는 이로 믿었다. 의로운 이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에 위로와 도움을 베풀고, 죽을 때에 옆에서 돌보아 준다는 것이다.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자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기도를 엘리야를 부르는 것으로 오해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히브리 말로 기도하셨으면(엘리 엘리), 이 기도의 앞부분을 그렇게 오해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람 말로 기도하셨으면(엘로이 엘로이) 그러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큰 소리로” 외치신 레마 사박타니를 달리 알아들었을 가능성도 전무하다. 그래서 곁에 있던 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악의로 왜곡하여 그분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계속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신 포도주”에 관해서는 마르 15,36 각주 참조.
이 “휘장”은 첫째로, 성전 본건물과 뜰을(다른 민족들은 바깥뜰에 있을 수 있었다.) 가르는 것일 수 있다. 이 휘장이 찢어졌다 함은 예수님의 속죄 죽음으로써(26,28 참조) 이제 이민족들도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둘째 가능성은 성소와, 이 세상의 하느님 거처로 생각하던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다(탈출 26,31-35). 이 휘장은 죄 많은 인간으로서는 원칙적으로 거룩하신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음을 상기시켜 왔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속죄 죽음으로 하느님께 가는 ‘길’이 영원히 열렸음을 의미한다. 이 휘장은 더 나아가서 옛 성전과 옛 사제직의 종말을 상징할 수도 있다.
“성도들”은 하느님의 백성,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심이 깊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로서 예수님 이전에 죽은 이들을 가리킨다. “몸”은 영혼과 구분되는 육신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되살아났다”의 직역: “일으켜졌다.” 51절의 ‘흔들리다’와 ‘갈라지다’, 52절의 ‘열리다’와 ‘되살아나다’는 그리스 말에서 모두 수동태로 되어 있다. 행위의 주체가 하느님임을 뜻하는 것이다.
51-53절에 서술된 현상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예고하는 전통적 예언의 일부를 이룬다(이사 26,19; 에제 37,12; 다니 12,2; 아모 8,3).
백인대장의 이 말에 관해서는 마르 15,39 각주 참조.
마리아 막달레나를 “막달라 여자 마리아”, 또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로 옮길 수도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오는 62-66절의 이야기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반영한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내고서는 그분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한다는 유다인들의 주장에 대답하는 것이다.
“준비일”은 유다인들이 일을 할 수 없는 안식일을 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금요일을 가리킨다.
직역: “주(인)님.” 이 말이 26,22 등에서는 예수님의 호칭으로 쓰인다. 진정한 주님이신 예수님과 빌라도를 대비시키려고 마태오가 이 호칭을 의도적으로 썼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기꾼”은 군중을 기만하여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복음서 저자들이 전하는 ‘수난과 부활 예고’를 가리킨다. 마태오 복음서가 편집될 때에는 이 예고가 유다인 세계에도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처음 것”은 예수님께서 고소당하신 죄명, 곧 당신께서 메시아라고 하신 것을 가리킬 것이다.
직역: “당신들은 경비병들을 가지고 있소.” 이 경비병들의 소속이 분명하지 않다. 이 말로써 빌라도가 로마 군사들을 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군대를 내주기를 거절하고, 성전 경비대가 있으니 그 부대를 이용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 아무튼 빌라도의 응답에는 비아냥거림이 뚜렷이 들어 있다.
직역: “당신들이 아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로 옮기기도 한다.
“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봉인”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니 6,18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이러한 “봉인”이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