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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5)편
(35)1) [지휘자에게. 주님의 종 다윗]
악인은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죄악을 즐긴다.2)
그의 눈에는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빛이 없다.3)
그는 오히려 죗거리를 찾아내고 미움을 일삼으려
자기 눈앞을 잘 닦아 놓았다.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와 간계.
그는 슬기롭고 착하게 행동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는 잠자리에서 죄를 꾸미고
좋지 않은 길에 서서
악을 물리치지 않는다.
주님, 당신의 자애는 하늘에 있으며
당신의 성실은 구름까지 닿습니다.
주님, 당신의 정의는 드높은 산줄기5) 같고
당신의 공정은 깊은 바닷속 같아
당신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도와주십니다.
하느님,6) 당신의 자애가 얼마나 존귀합니까!
신들과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합니다.
그들은 당신 집의 기름기로 흠뻑 취하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당신 기쁨의 강물을 마시게 하십니다.7)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8)
당신을 아는 이들에게 당신의 자애를,
마음 바른 이들에게 당신의 의로움을 늘 베푸소서.
거만한 발길이 제게 닿지 않게,
악인들의 손이 저를 내쫓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9) 나쁜 짓 하는 자들은 넘어지고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리이다.
36편에는 문학 유형상 여러 요소들이 들어 있어, 조건부로(12절 참조) ‘개인 탄원 시편’에 소속시킬 수 있다. ‘입문’ 4, 2)의 가) 참조.
직역: “악인에 대한 죄악의 신탁이 / 내 마음 깊숙이 있다.” 또는 “악인의 죄악에 대한 신탁이 / …….” 그러나 이 말의 뜻이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고대 번역본들은 “신탁”이라는 명사 대신 동사로 옮기고 있다. 칠십인역은 “악인이 제 마음속으로 죄악을 저지르리라고 말한다.”로 옮긴다. 위의 번역은 “신탁”을 ‘즐기다’로, “내 마음”을 오리게네스와 시리아 말 역본에 따라(칠십인역도 참조) “그 마음”으로 고친 것이다.
직역: “그의 눈앞에는 하느님을 무서워함이 없다.”
확실하지 않은 번역이다. 그 뜻은 악인이 계략과 음모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 죄와 미움만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드높은 산줄기”의 직역: “하느님(히브리 말로는, 엘)의 산들.” 이는 최상급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다. 우리말에서 ‘왕고래’, ‘왕바위’처럼 ‘왕’자를 붙여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68,16; 80,11; 이사 14,13 참조.
히브리 말에서는 본디 7절 마지막에 있는 “주님”을 시편 운율에 맞추어 8절 처음으로 옮기기도 한다. 칠십인역은 8절에서 “하느님”으로 옮긴다. 우리는 히브리 말 본문의 운율을 고려하고 일부 학자들의 의견을 참조하여 “하느님”을 넣는다.
“기름기”는 짐승의 살코기 가운데 제일 좋은 부분으로서 하느님께만 속한 것으로 여겨졌다(레위 7,25; 이사 43,24). “기름”은 또한 ‘풍부, 풍만’의 상징이다(65,12; 예레 31,14). “기쁨”은 창세 2,8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동음이의어이다.
“샘”과 “빛”은 생명에 대한 두 은유이다. 생수가 나오는 샘이(예레 2,13; 17,13) 예루살렘 또는 성전의 수원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샘물에 대해서는 요엘 4,18; 에제 47; 즈카 14,8 참조. 하느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가져다주는 빛에 대해서는 4,7; 27,1; 43,3; 44,4; 80,4.8.20 참조. 이 두 주제는 신약 성경에 다시 나온다(요한 4,14; 8,12; 9,5; 12,46; 1요한 1,5; 묵시 22,1).
“거기에서”(14,5 참조)로 옮길 수도 있다. 이 경우 악인들이(2-5절) 파멸당하는 성전을(9-10절) 생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