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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1. 다섯 권의 책

성경의 첫 다섯 권은 하나의 모음집을 이루는데, 그리스도교는 이를 전통적으로 ‘오경’(五經: Pentateuchos)이라 부른다. 이 용어는 그리스 말이기는 하지만, 다섯 개로 된 첫 성경 두루마리들을 넣어 두는 ‘다섯 상자’를 가리키는 히브리 말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유다교의 전승에서 이 다섯 권의 책은 토라를 구성한다. 토라는 흔히 ‘율법’(律法)으로 번역되지만, 오로지 법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는 ‘가르침’이다.

사실 토라(오경)는 이야기 부분과 법전들이 뒤섞여 있는 하나의 모음집을 이룬다. 각각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특이한 기원을 갖고 있는 상이한 법문집들이, 세상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문턱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이루신 행업을 상기시키는 커다란 사화집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원에 따르면, 성경의 첫 다섯 권의 기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율법보다는 가르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오경의 다섯 권의 책 이름 역시 그리스 말 번역에서 유래한다. 이 이름들은 각 권의 내용을 애써 요약한다. 창세기는 세상과 히브리 백성의 기원을 서술하고, 탈출기는 이집트 탈출을 보도하며, 레위기는 레위 지파 소속으로 알려진 사제들의 법규들을 담고 있고, 네 번째 책인 민수기는 사막 체류 동안 단행된 이중 인구 조사를 전하며, 끝으로 (그리스 말로 ‘두 번째 율법’을 뜻하는) 신명기는 앞서의 법률 본문들을 반복하는 것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유다교는 각 권 첫 문장의 낱말들 가운데 하나나 둘을 선택하여 책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직역하면 창세기는 ‘한처음에’, 탈출기는 ‘이름은 이러하다’, 레위기는 ‘(그분께서) 부르셨다’, 민수기는 ‘광야에’, 신명기는 ‘이것은 - 말이다’라는 이름을 갖는다.

오경은 세상과 인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열린 다음,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요셉의 역사로 이어진다. 탈출기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겪는 억압과, 모세의 중개를 통한 해방을 이야기한다. 모세는 여기서 율법과 규정들을 전해 주기 위하여 백성을 하느님의 산으로 인도하는 인물로 소개되며, 이 율법과 규정들이 탈출기 일부와 레위기 전체, 그리고 민수기의 첫 열 개의 장들을 채우고 있다. 탈출기의 나머지 장들은, 광야에서 죽어야 하는 이집트 탈출 세대에 대한 단죄로 귀착되는 이스라엘의 광야 체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경의 마지막 권인 신명기는 계약과 하느님의 법을 회상시키는 모세의 유언을 내용으로 한다. 신명기와 함께 오경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생을 마감하는 모세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다섯 권으로 나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경은 통합된 하나의 모음집으로 제시된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야곱 집안이 이집트로 내려간다는 보도는 탈출기가 전하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체류 이야기를 준비하며, 탈출기는 또한 창세 46장의 족보를 요약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레위기는 탈출 20장에서 시작하여 민수기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될 시나이 율법 계시를 이어 주고 있으며, 민수 11─25장의 광야 체류 이야기들은 율법 선포로(탈출 19─민수 10) 중단된 탈출 16─18장의 이야기 흐름을 되풀이한다. 신명기는 민수기 마지막 장에서 백성이 도착한 모압평야를 배경으로 전개 된다.

오경은 중세에 와서야 지금의 장(章)으로 나누어졌는데, 규칙적인 이러한 구분은 오경을 읽고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다교 전례는 오경을 읽을 때 다양한 범위 설정과 함께 단락 구분을 달리하는 독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구분 역시 유다교 회당의 경신례를 위해 성경 본문을 독서 단락으로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문을 논리적으로 구분한다면 그 분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요셉 이야기는 동일한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데 그 내용은 (창세 37장에서 50장까지 이르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반면에 한 개의 장도 채우지 못하는 십계명 본문(탈출 20,1-17과 신명 5,1-21) 역시 독립된 온전한 하나의 단락을 형성한다.

의미상 단락이나 단위의 다양성은, 오경에서 오늘날의 법전이나 신학적 논제와 관련된 엄격한 구조를 찾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러 준다. 끝으로 오경이 비록 연대순을 원칙으로 정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역사 안내서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2. 율법과 역사

오경은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법률 본문들을 담고 있다. 법률 본문들이 오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탈출기의 두 번째 부분과(탈출 19─40) 레위기 전체와 민수기의 시작 부분이 기본적으로 법률 규정과 예식 규정들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율법을 돋보이게 하거나 주해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금송아지 일화는(탈출 32─34) 탈출 20, 23에 담긴 계명(“너희는 내 곁에 아무것도 만들어 두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자신들을 위하여 은으로 신들을 만들어서도, 금으로 신들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을 어긴 이야기로 이해된다. 계명을 어긴 이야기를 한 뒤에 이 근본 계명은 탈출 34,17에서 다시 확인된다. 또 다른 이야기들은 제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의 반역은(민수 16─17) 사제 임무를 수행하도록 뽑은 아론 집안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또한 어떤 율법은 이야기 속에 통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다른 법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할례에 관한 규정이(창세 17,9-14) 그렇다. 이와는 달리 또 다른 율법들은 서사체 전승들을 돌이켜 보게 하면서 설명을 끌어내기도 하는데, 신명 24,8-9의 나병에 대한 규정이 민수 12장에 보도된 미르얌에게 내린 하느님의 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유다교 전승은 토라의 법적인 면에 민감한 반면, 그리스도교 전승은 신약 성경에서 절정을 이루는 ‘구원사’의 시작을 살피려는 의도에서 이야기체 요소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분명 문학적인 분석으로 상이한 ‘유형들’을 식별해 내고, 고대 근동 문헌들의 도움으로 이 유형들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게 되었다(기원 설화, 형법, 족보 등). 그렇지만 언제나 오경 전체의 관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경에 그토록 상이한 여러 유형의 본문들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오경에는 단순히 율법과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하나의 ‘가르침’이 있을 뿐이다. 역사는 율법을 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율법은 역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3. 오경의 통일성

오경의 통일성은 여러 분야의 다양성 속에서 드러난다. 법전의 다양성, 문학 유형의 다양성, 지리적 공간의 다양성은 물론 신학적 견해의 다양성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요셉 이야기는 이집트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반면, 이집트 탈출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겪은 종살이를 강조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오경 전체의 일관성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 일관성은 우선, 토라의 각 권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스라엘과 그의 하느님 야훼의1)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선사(先史)를, 탈출기는 이스라엘의 선택과 계약을, 레위기는 경신례 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응답을, 민수기는 백성과 그 하느님 사이의 어려운 관계를, 그리고 신명기는 계약의 재확인을 전한다. 오경의 통일성을 보강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하느님의 약속들이다. 이 약속들이 창세기에서는 성조들에게 건네지며, 이어서 오경의 다른 모든 책에서 다시 등장한다. 결국 오경은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에게 땅의 약속을 되풀이 하면서 끝난다(신명 34). 이렇게 오경은 완료된 역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책이다.

오경의 통일성은 또한 모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창세기를 예외로 한 오경의 나머지 부분들은 이 위대한 인물이 지배하고 있다. 실상 모세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인물로, 정치적 해방자이면서 동시에 예언자, 판관, 입법자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관점에서 보나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탁월한 중개자이다. 시나이산 기슭에 모인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직접 전해주신 십계명만 빼고 나면, 모든 율법들은 하느님의 계시 차원에서 모세의 입을 통해 선포된다. 이처럼 모세의 가르침이 유다교에 그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한다.

4. 오경의 구성

모세를 통한 율법 선포를 근거로 유다교 전승은 모세를 오경 전체의 저자로 보았으며, 그리스도교 전승도 이를 따랐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오경의 본문들을 인용하실 경우 모세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다. 그러나 유다교 라삐들은 모세가 참으로 자기 자신의 죽음까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는지 자문해 왔다. 이와 같은 의구심이 있었지만, 계몽주의 시대 이전까지 모세를 오경의 저자로 보는 데는 별 이의 제기가 없었다.

오경의 대다수 본문들이 모세의 죽음 이후 글로 옮겨졌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은 18세기에 접어들어 철학자 스피노자와 주석가 리샤르 시몽을 통해 확인되었다. 스피노자는 또한 오경이 문학적 논리에서도 단절을 보인다는 사실과 사용된 문체가 다양하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저자를 단한 사람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가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상당한 법조문들이 서로 다른 문맥 안에서 반복된다. 예컨대 십계명은 두 번(탈출 20; 신명 5), 축제 절기는 다섯 번 나온다(탈출 23; 34; 레위 23; 민수 28─29; 신명 16).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여서, 예컨대 창조(창세 1,1─2,3; 2,4-23), 사라와 하가르 사이의 갈등(창세 16; 21), 아브라함과 계약 체결(창세 15; 17), 그리고 모세의 소명에(탈출 3─4와 6,2 이하) 관한 이야기가 각각 이중으로 전해진다. 또한 성조들이 자기 아내를 누이로 내세우는 이야기가 세 번 발견된다(창세 12; 20; 26). 그러나 단순한 반복은 아니다. 각각의 병행 본문들이 독자적인 표지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 안에서는 여러 차례 긴장과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컨대 창세 7,15에 따르면 노아는 방주에 짐승을 종류에 따라 한 쌍씩 들여보내지만, 창세 7,2에서는 일곱 쌍씩이라고 한다. 또한 창세 7,17은 홍수 기간이 사십 일 동안이었다고 명시하지만 7,24에서는 백오십 일 동안이라고 말한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 앞에서 파라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몇몇 본문에 따르면(탈출 7,3과 각주) 하느님께서 몸소 이집트 임금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시지만, 다른 본문들은 파라오가 완전한 자유 의지로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있음을 강조한다(탈출 8,11). 갈대 바다의 기적 역시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진다. 탈출 14,21ㄴ에 따르면 바다가 거센 샛바람으로 말미암아 뒤로 밀려나지만, 14,21ㄷ-22에서는 바닷물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진다.

오경의 문학적 다양성은 문체와 어휘의 특수성 차원에서도 드러난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산이 어느 때는 시나이로, 또 어느 때는 호렙으로 지칭되며, 모세의 장인 역시 어느 때는 이트로로, 또 어느 때는 호밥이나 르우엘로 불린다. 신명기의 열정적이며 반복적인 독특한 문체는 레위기 첫 부분의 제의(祭儀) 규정이 보여 주는 전문적인 표현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어떤 이야기들은 (사건 당시 등장인물의 나이와 같은) 연대적인 질서에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어떤 이야기들은 틀에 박힌 문체가 아니라 더욱 생동감 있는 문체로 쓰여 있다. 또 어떤 이야기들은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반면(창세 12,10-20의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어떤 이야기들은 회화적이면서도 반복적이다(창세 24장의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

독자들의 눈에 쉽게 띄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가리키기 위해 서로 다른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본문은 고유 명사인 야훼(주님)를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본문들은 보통 명사인 엘로힘(하느님)을 쓴다. 예를 들어 하가르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야훼를, 두 번째 이야기는 엘로힘을 언급한다. 또한 요셉에 관한 이야기에는 창세 39장의 몇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쓰이며 이스라엘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느님이 서로 다르게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오경의 구성에 관한 첫 번째 이론이 나온다. 프랑스에서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장 아스트뤽은 1753년에, 오경은 두 가지 기록이(하나는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록, 다른 하나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을 쓰는 기록) 합쳐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별이 이른바 ‘문헌 가설’의 단초가 되었으며, 이 이론은 19세기 말에 독일의 주석가 율리우스 벨하우젠을 통하여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 문헌 가설

이 이론은, 문체가 서로 다르고, 또 동일한 이야기나 율법이 서로 다른 본문에 나온다는 사실이 서로 다른 여러 원전들이 합쳐진 결과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오경의 배후에는 본디 독립되어 있던 네 가지 문헌들이 있었을 것이다. 편집자들은 오경 구성을 목적으로 이 문헌들의 상당 부분들을 모았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문헌들이 성경의 첫 다섯 권을 넘어 신명기를 뒤따르는 여호수아기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성경의 첫 부분은 이렇게 ‘육경’을 이루는 여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여호수아기가 말하는 땅의 정복과 점유를, 창세기에서부터 이루어진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토라의 논리는 이 약속의 성취를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규범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야기들과 법들을 규합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원칙이 오경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이 문헌들 가운데 세 가지가 오경 전체의 서사체 줄거리들을 채우고, 네 번째 문헌은 신명기의 초기 본문에 국한되어 나타났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야훼계’(로마자 ‘J’로 표기)라 불리는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지칭하기 위해 기원 설화로부터 시작해서 오로지 야훼라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훼계 문헌은 인간의 창조부터(창세 2,4ㄴ-25) 모세의 죽음(신명 34), 나아가 땅의 정복에(여호 19)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문헌은 왕정 시대 초기, 좀 더 정확하게는 솔로몬 시대(기원전 94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창세 12,1-3에 전해지는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가 흔히 이 문헌의 핵심 본문으로 여겨진다. 야훼계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본문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다윗과 그의 후계자가 주도한 왕정 제도의 설정과 함께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학자들은, 야훼계 저자가 유다 지파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를 유다 출신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저자는 현대적 의미의 저자가 아니라, 왕정 제도가 설정되기 이전부터 이러저러한 성소에서 또는 여러 지파에서 이야기되던 수많은 전승들을 모아 엮은 전승 수집가로 여겨진다.

‘엘로힘계’ 문헌(첫 글자를 따 ‘E’로 표기)은 이 문헌이 하느님을 가리키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엘로힘이라는 용어에서 그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문헌은 ‘예호비스트’(JE)라 불리는 편집자를 통하여 야훼계 문헌과 일찌감치 결합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특히 창세 20─22장의 아브라함 이야기의 경우 엘로힘계 문헌은 단편으로만 남게 되었다. 탈출기부터는 엘로힘계 문헌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야훼계 문헌으로부터 엘로힘계 문헌을 떼어 내는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문헌 가설에 따르면 엘로힘계 문헌들은 자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과, 이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자세를 강조한다. 또한 엘로힘계 문헌은 북 왕국 예언자들과 가깝다는 사실에서 이 문헌을 (북) 이스라엘에서 나온 문헌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헌은 기원전 722년 북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 패망한 직후 유다로 유입되고 결국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신명기계’라 불리는 문헌(D)은, 기원전 622년 요시야 임금의 개혁을,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합법적인 유일한 성소로 격상시킨 중앙 집권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신명기의 최초 본문을 가리킨다. 이 문헌은 율법의 여러 규정들을 하느님 사랑이라는 중심 계명에 묶어 주고 계약과 선택을 주제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문헌들 가운데 최후의 문헌은 사제 세계의 관심사들로 채워져 있어, 사제라는 낱말의 첫 글자를 따 ‘P’로 줄여 쓴다. 이 문헌은 창세 1장의 천지 창조의 첫 번째 이야기로 시작해서 모세의 죽음 또는 약속의 땅 진입으로 마감된다. 이 문헌의 의도는 사제 제도와, 할례나(창세 17) 파스카 축제와(탈출 12) 같은 제의 제도의 정당화에 있다. 사제계 문헌은 바빌론 유배 시대나 그 이후 주님의 백성이 각종 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정치적 자립이 결여되어 있던 시기에 기초된 것이다. 오경이 마지막으로 형성될 때 이 문헌은 기초 문헌으로 쓰였으며, 다른 문헌들은 보충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설의 틀 안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서사체로 되어 있는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들을 일반적으로 ‘오래된’ 문헌으로 평가한 반면에, 신명기계와 사제계 문헌들은 흔히 순수 율법주의적인 문헌으로 여겨 왔다.

문헌 가설은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오늘날에도 성경 연구를 위한 저서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75년 이후 문제시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의 기록 연대가 문제로 제기된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이미 서사체 줄거리가 전해 내려왔다는 사실을 주장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사실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으로 여기는 상당수 본문들이 신명기의 문체와 신학과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인다. 예컨대 탈출 19,5의 본문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는 신명기에서(신명 7,6과 28,9) 그 병행 문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이 뒤섞여 있는) 탈출 3장의 모세의 소명 이야기는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의 소명이야기와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어 이 본문을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쓰였다고 보기가 힘들다. 이와 같은 견해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야훼계 저자를 신명기계 저자와 가까운 인물로,2) 나아가 야훼계 저자를 신명기계의 한 구성원으로 다루고자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문헌 가설을 무조건 포기하기를 권장한다. 이들은 오경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서사체 전승들과 법률 전승들의 자립성을 역설한다. 이 전승들은 먼저 독립적인 방법으로, 오경 전승 전체와 아무런 관련 없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몇몇 문학 단위들은, 앞뒤 연결 없이,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기원 설화집에서(창세 2─8) 사제계 문헌이 아닌 오래된 형태의 이야기들이나, 이집트 탈출에 관한 역사의 경우가(탈출 1─15) 그렇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전들 역시 서사체 전승들과 무관하게 생겨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경의 규모가 큰 서로 다른 단위들 사이의 문학적 연관성은 후기의 편집 결과일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오경 연구에 관한 어떠한 새로운 가설도 절대적인 이론으로 강요될 수 없다. 그러기에 상당수의 저자들은 문헌 가설을 계속해서 인용하지만, 이 이론이 제기하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은 어느 정도의 신중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 한편 오경 연구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점에서 부분적인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토라에는 사제계 문헌들이 있다는 점과, 유배 시대와 페르시아 제국 시대 초기(기원전 6-5세기)가 오경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오경 구성에 대한 분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2) 바빌론 유배 이후 오경의 탄생

예루살렘의 파괴와 유다 주민 일부의 바빌론 유배(기원전 597/587)는 백성의 정체성에 관한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기둥들이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다. 임금은 유배 상태에 있었고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지던 땅은 외국의 지배 아래에 놓여졌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은 어떤 방법으로 당신 백성을 위해 개입하시는지를 말할 수 있는 다른 길들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하여 (이야기와 법으로 이루어진) 기초 전승들을 글로 기록함으로써 이러한 위기에 대처해 나갔다.

이렇게 오경을 만들어 이스라엘은 들고 다니는 일종의 ‘휴대 조국’(携帶祖國)을 창조해 낸다. 이 조국은 백성들이 물리적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유배 또는 해외 생활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확립할 수 있도록 이끄는 요인이 된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는 토라의 편집을 위한 좋은 기회였다. 페르시아 정권은 자기의 제국에 편입된 백성들에게 상당한 종교적 자치권을 부여했으며, 나아가 법적이며 종교적인 전승들을 법전으로 엮는 데 적대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성경 전승은 이러한 호의적인 상황을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에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제이며 율법 학자였던 에즈라는 페르시아 임금의 사자로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백성에게 율법을 제시하는데, 이 율법은 페르시아 임금도 존중을 다짐한 법이다. 에즈 7장과 느헤 8장은 페르시아 시대에 이루어진 오경의 초본 출판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오경의 서로 다른 본문들은 제2 예루살렘 성전 시절 경신례의 체계화를 주제로 한 토론을 반영하기도 한다.

토라가 유다 백성의 다양한 감수성들을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요 지식 계층에서 유래한 본문들을 삽입시키고 공존시킬 필요가 있었다. 매우 영향력이 있던 사제 계층 이외에 신명기의 신학적 견해와 가까웠던 평신도 계층이 있었다. 이러한 공존을 잘 설명하는 좋은 예는 십계명이 이중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탈출 20장에서 안식일 법은 천지 창조 때 하느님께서 이렛날 쉬셨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으며, 이는 오경의 첫 번째 사제계 문헌 말미에서 언급된다(창세 2,1-3). 이와는 달리 신명 5장에서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종살이에서 그 동기를 찾으며, 이는 전형적인 신명기계 문헌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처럼 사제계 세계에도 신명기계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본문들도 있다. 이 이야기는 열려 있는 보편적 유다교를 지지하는 본문으로서 지혜 세계의 이상과 매우 가깝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여러 권의 책들이 합쳐져 한 권의 책, 곧 토라 또는 오경에 이르렀으며, 이 책은 미래에 성취될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오경은 이렇게 닫혀 있으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책 안에 하느님과 함께한 체험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3) 사제계 본문(P)

가장 쉽게 밝혀낼 수 있는 본문들은 사제 세계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사제계 본문들의 문체 가운데 가장 독특한 요소들은 표현의 간결성, 수적인 정확성에 대한 관심, 족보와 목록 제시, 그리고 경신례와 전례에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한 선호 등이다. 성소와(탈출 25─31; 35─40) 제물과(레위 1─7)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구성된 사제단에(레위 8─10) 대한 사제계 문헌의 관심은, 유다교의 공간적 분산을 전제로 하면서도 페르시아 시대에 사제단과 재건된 성전을 중심으로 유다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를 드러낸다. 사제계 문헌은, 시나이에서의 경신례 계시 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시되는 제의와 축일들을 자주 언급한다. 안식일은 천지 창조 때에 언급되고(창세 2,1-3) 음식 규정에 관한 원리는 노아의 홍수 이후 주어지며(창세 9,3-4), 할례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맺으신 계약의 표징이 되고(창세 17), 파스카 축제 거행은 이집트 탈출 이야기 속에 자리하고 있다(탈출 12─13). 이처럼 이 제의들은 어떤 일정한 땅에 매여 있는 것들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한편, 이 제의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다교의 설립 요소로 남아 있다.

사제계 본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온 인류의 하느님이시며 온 누리의 주인이심을 강조한다. 인간, 곧 남자와 여자는 그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며, 자신들이 다스려야 하는 창조물을 선물로 부여받는다. 하느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온 인류와 계약을 맺으시고(창세 9),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며 그와도 계약을 체결하신다(창세 17).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에서 레위인들, 그들 가운데서도 아론과 그의 집안을 뽑아 모든 백성의 이름으로 경신례를 올리게 하신다. 하느님의 영광이 머무르시는 성소에서 모세와 사제 아론의 중개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진다(탈출 40과 레위 9 참조).

사제계 본문들은 단숨에 쓰이지 않았다. 페르시아 시대의 사제계 저자들은 왕정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더 오래된 제의 규정들을 통합시키면서 문헌을 최후 편집했다. 사제계 문헌은 아마도 여러 세대에 걸쳐 기록되어 왔을 것이다. 예컨대, 민수 9장의 파스카 축제에 관한 규정들은 탈출 12─13장의 사제계 본문의 보충 부분에 해당하는데, 이를 탈출기에 삽입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민수 9장이 기초되던 시기에 이미 후대의 저자들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었던 사제계 초본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사제계 초본의 끝이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이 끝을 신명 34장이나 여호 19장에서 찾았다. 이 문제에 관한 학술 토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사제계 최초 문헌의 규모가 더 작았을 것이라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탈출 40장의 성막 건조나 레위 9장의 경신례 개시로 마감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에서는 언제나 사제계 본문들이 복합적이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4) 신명기계 본문(D)

전통적으로 신명기계 문헌은 신명기의 가장 오래된 부분에 국한되어 있다고 여겼으나, 그 문체만큼은 신명기를 앞서는 책들, 특히 탈출기와 민수기 일부에서도 발견된다. 본디 이어져 있던 두 구절 탈출 2,23ㄱ과 4,19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모세의 소명 이야기가 그렇다. 탈출 3장에서 모세는 신명 18,15가 말하는 예언자들 가운데 최초의 예언자로 소개된다. 이 이야기에서 신명기와 신명기계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에 속하는 어휘를 만날 수 있다. 예컨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정형화된 표현, “조상들의 하느님”이라는 표현,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의 목록 등이다. 이집트 재앙 이야기(탈출 7─11) 가운데 사제계 문헌에 속하지 않는 본문들 역시 신명기계 신학과 문체로(신명 28 참조) 채색되어 있으며, 시나이에서의 계약 체결 이야기나(탈출 19─24) 신명 9─10장에서 다시 발견되는 금송아지 일화(탈출 32─34) 역시 마찬가지다. 이 본문들과 신명기, 나아가 신명기계 역사서 사이의 관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아무튼 탈출기와 민수기의 상당 본문들과3) 신명기계 저자들의 세계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성립된다.

신명기계 신학은, 주님(야훼)과 이스라엘의 계약 형식으로 짜여 있으며 그 중심에 법전이(신명 12─26) 자리하고 있는 신명기에서 출발점을 찾는다(신명기 ‘입문’참조). 이 법전은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내용으로 제시된다. 법전에 담겨 있는 법조문들은, 신명기가 “오늘”을 위해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는(신명 1,10과 각주) 이집트 탈출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그 안에서 동기를 찾는다(신명 4,31; 16,3 등). 한편, 성소의 유일성에 관한 언급은(신명 12) 이 법전을 기원전 622년 요시야 임금이 단행한 정치적 경신례 개혁과 연계시켜 준다(2열왕 22─23 참조). 비록 개혁의 토대가 되었던 “율법서”(2열왕 22,8.11)가 현재 신명기의 간결한 초본이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하느님의 유일성에 관한 신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경신례를 위한 유일한 장소를 강조하는 가운데 그 이름을 직접 거명해 본 적이 없는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를 경계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신명 6,4-5). 이러한 배타적 섬김은 선민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느님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백성들과 그 종교 의식들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어야 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신명 7 참조).

신명기에서 율법의 보유자이며(신명 33,8-11) 모세 곁에 서 있는 설교자로(신명 27,9) 소개되는 레위인들에 대한 관심 표명은(신명 18) 흔히 신명기가 레위인들의 가르침의 결과일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적지 않은 본문에서 레위인들은 경신례의 예루살렘 중앙 집중화 이후 실업자들로 등장하고 있어 이들을 신명기계 문헌의 저자들로 보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저자들은 오히려 왕실의 영향력 있는 가문들과 관리들 사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신명기가 예루살렘 궁정에 잘 알려져 있던 아시리아 문헌의 용어와 문체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이후 신명기는 이러한 재앙에 비추어 다시 읽히고 재해석되었으며, 이 재앙은 오경의 신명기계 본문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본문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야말로 유배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다시 말해서 유배는 하느님의 징벌로 인식된다. 신명기를 읽는 각각의 모든 세대에게 건네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이(신명 5,3)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 율법과 규정과 계명 준수가 바로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5) 법전

신명기 한가운데에서 법전 하나가 발견되며(신명 12─26), 이 법전의 가장 오래된 부분들은 본디 요시야의 개혁과 관련이 있었다. 동시에 이 신명기계 법전은 탈출 21─23장에 기록되어 있는 “계약의 책”(탈출기 ‘입문’참조)을 현실화하기 위한 법전, 나아가 이 법전을 대체하기 위한 법전으로 인식되었다. 이 계약 법전은 아마도 왕정 시대(기원전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오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법전이 될 것이다. 이 법전은 신명기계 법전과는 달리 경신례 장소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계약 법전이 오래된 것이지만 탈출기 19장과 24장 사이에 삽입된 것은, 신명 12─26장의 새로운 법전이 있었음에도 이 오래된 법전을 보존하고자 했던 후대 편집자들의 작업 결과로 보인다. 사제계 저자들 역시 제물 목록과(레위 1─7) 정결례와(레위 11─15) 같은 제의들과 규정들을 담고 있는 모음집들을 병합시켰다(레위기‘입문’참조). 레위기 제2부는 ‘성결법’이라 불리는 법전을 담고 있다(레위 17─26). 이 법전은 상당한 윤리 질서를 내포하기도 하는 공동체의 성성(聖性)을 강조한다. 이 성결법의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늘날 이 법전은 사제계 관심사들과 신명기계 관심사들이 상호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경의 최후 편집자들은 이 상이한 법전들이 공존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연이은 이 법전들을 보존하면서 편집자들은, 율법을 정지된 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석되고 현실화할 수 있는 법으로 제시하고자 했으며, 이는 율법을 신장시켜 나간 라삐들의 토론과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의 문서들, 곧 신약 성경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6) 오래된 서사체 전승

사제계와 신명기계 편집자들은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더 오래된 전승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전승들은 그 기원에서나 신학에서 매우 다양했으며, 여러 성소에서 독립적으로 전해 내려왔고 부분적으로는 구전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아브라함 설화집에서는 헤브론이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는 이 설화집이 마므레-헤브론 성소에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야곱 성조의 설화집은 이 설화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들이 가리키고 있듯이 북 왕국과 관련이 있다. 이 설화집은 분명히 가장 오래된 성조사이다.

이집트 탈출 전승은 야곱의 이야기와 함께 오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전승은 오경의 중추에 해당하는 요소로서 오경 전체가 이 전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요약하는 성경 본문에서 이집트 탈출 사건은 늘 상기된다. 그러나 언제 이 전승이 글로 처음 옮겨졌는지 단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민수기에서 읽을 수 있는 이스라엘의 광야 체류 전승은 유배 시대 이전 호세아서와 예레미야서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이 두 예언서에서는 좀 더 긍정적으로 제시되는 반면 민수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점들이 많기는하나, 오경에 담긴 대다수의 기초 전승들은 왕정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특히 페르시아 시대에 와서 이 전승들은 새롭게 태어난 유다교에 신학적이며 제의적인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정리되고 공유화되기 시작한다.

5. 오경의 의의

오경은 우리를 한 백성 또는 종교적인 한 공동체 앞에 서게 하며, 하느님께서 이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셨는지, 이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체결하신 계약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오경의 백성은 거룩한 백성(특히 레위 17─26 참조), 곧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기에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백성이다. 어떤 제도도, 심지어 고대 근동의 종교 생활에서 그토록 중시되었던 왕정 제도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지고의 권위는 하느님의 말씀, 모세가 중개하고 이 율법서가 담고 있는 말씀에 속했다. 이 율법은 단순한 법적 규범이나 제의나 규정으로 축약될 수 있는 법이 아니다. 역사 안에서 탄생되어 그 역사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토라는, 유다교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이끌어 준 역동적인 책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에서 이 책들을 물려받았다. 분명 그리스도교는, 신약 성경이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의 다양한 증언에 따라 메시아이시며 주님으로 고백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오신 다음에 이 책들을 새롭게 읽어 나갈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마태 5,17). 이렇게 해서 오경은 유다인들을 위해서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나 현실적인 책으로 머문다. 이들은 모두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책에서 온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아본다.

주석
1

유다교는 하느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고 다른 용어들, 특히 아도나이(주님)로 바꾸어 불렀으며, 이 번역에서도 이를 따랐다(‘일러두기’와 탈출 3,14-15 각주 참조).

2

엘로힘계 본문들은 매우 단편적인 그 특징 때문에 흔히 독립적인 한 문헌의 단편들로 여겨지지 않고, 오경의 비교적 오래된 본문에 덧붙여진 다른 첨가문으로만 간주되었다.

3

창세기에 신명기계 본문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토론 중에 있으나, 탈출기와 민수기에 비해 창세기에서는 신명기계 문체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본문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