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스바니야서

입문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가? 그분께서는 역사를 이끄시는가? 재앙의 시기에 회의론자들이 스바니야 예언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1,12).

1. 역사적 배경

스바니야서의 배경은, 다른 예언자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예언자에게 역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는 매우 극적인 시대이다.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아시리아 제국이 다른 나라들을 파멸시키고 잔학 행위를 저지르면서 팽창해 나아가던 때이다. 유프라테스강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아람족 국가들의 붕괴에 이은 기원전 732년의 다마스쿠스 함락, 기원전 722년의 사마리아 함락과 백성의 유배, 기원전 701년의 티로 함락, 티로와 함께 함락된 시돈의 완전한 파괴(기원전 671년), 기원전 663년의 이집트 테베의 약탈, 그리고 다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홍수가 닥친 것보다도 더 험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호언하던 기원전 689년의 바빌론 약탈 등이 일어난 시기이다.

그런데 몇십 년이 지난 뒤에는 상황이 뒤바뀐다.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인들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멸망시킨다. 이어서 바빌론의 신칼데아인들이 서쪽으로 밀려든다. 그리하여 세 차례나 포위 공격을 당한 예루살렘은 결국 기원전 587년에 멸망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치고받는 가운데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는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제3의 물결이 또 들이닥친다. 28년 동안(기원전 639-611년) 근동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게 되는 스키티아족의 침략이다. 흑해 북부 지방에서 내려온 그들은 메디아인들을 밀어내고 소아시아를 빼앗은 다음,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를 향하여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집트 임금 프삼메티쿠스의(기원전 664-620년) 간청과 선물을 받고서야 그들은 되돌아간다. 그러나 아시아와 이집트 변방까지 이르는 지역의 주인이 된 스키티아인들은, 자기들이 점령하거나 통과하는 지방을 약탈하고 철저히 파괴시킨 다음, 피정복민들을 제멋대로 자기들의 지배 아래 묶어 놓는다. 이러한 스키티아족의 통치는 기원전 611년경, 필리스티아 땅에 있는 아스클론 약탈과 아스돗의 함락으로 종말을 고한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 2세가 필리스티아의 다른 도시 국가인 가자를 빼앗고 므기또에서 시리아인들을 쳐부순 다음,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진군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기원전 609/608년).

이 기간 내내, 특히 므나쎄의 오랜 통치를 특징짓는 아시리아 시대에, 예루살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근동의 북서와 남서를 잇는 이른바 팔레스티나 ‘회랑’ 옆에 붙어 있는 예루살렘도, 국제 정치의 음모,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자리 잡은 군소 국가들의 동맹 놀이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다가 유다 임금 아몬이, 아시리아의 멍에를 벗어 던지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이는 일단의 관리들 손에 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친이집트 동향에 곧바로 “나라 백성”이 반혁명을 일으킨다. 그 덕분에 여덟 살밖에 안된 요시야가 왕좌에 오르게 된다(2열왕 21,24; 22,1).

이렇게 요시야 임금이 아직 어릴 때 이루어진 아시리아 지배에 대한 저항의 선상에서, 스바니야의 활동, 그리고 임금의 측근 고관들과 제후들, 또 외국 복장이나 종교 의식을 따르면서 외국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그의 정치적, 종교적 비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구성

예레미야서나 에제키엘서 같은 곳에서 예언은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3부 구조로 정리되어 있다. 곧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민족들에 대한 심판, 복구의 약속이다. 스바니야서 역시 이 구조에 따라서 세 부분으로 정리되는데, 이는 이 책의 편집자들의 작업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배열되어 있다.
가. 편집자들이 붙인 머리글(1,1)
나. 유다에 대한 경고와 위협 신탁(1,2-13)
다. 주님의 날(1,14-18)
라. 남은 자들, 겸손한 이들에 대한 권고(2,1-3)
마. 유다의 적인 민족들에(필리스티아, 모압, 암몬, 에티오피아, 아시리아) 대한 심판과 위협(2,4-15)
바. 배척되고 이민족들과 같아지는 예루살렘(3,1-8)
사. 복구의 약속(3,9-20)

3. 주제

묵시 문학적인 ‘하늘’과 주님의 겸손한 이들의 ‘땅’, 이것이 스바니야의 두 지평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핵심적 실재가 있다. 곧 당신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3,5.12.15). 그분 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신다.

1) 주님의 날

이것이 스바니야의 예언을 유명하게 만든 주제이다. 이 예언자의 사고에는 중심축을 이루는 두 극이 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들이다. 이 두 적대적 힘이 충돌할 때에 “남은 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 “주님의 날”의 주제는 당시의 거대한 정치적 혼란이라는 역사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 이 “날”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날, 이집트 탈출 때처럼 그들을 구원하시는 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민족들에게 당신의 무서운 이적들을 다시 행하시는 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스바니야의 지평은 역사의 제한적 틀을 넘어선다. 그가 예언하는 것은 우주적 대이변이다. 그 어떠한 주저도,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는 일 없이, 예언자는 이 ‘진노의 날’(라틴 말로, dies irae)과 파멸의 날을 선포한다. 겸손한 이들은 계속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역사는 하느님께서 친히 주재하시는 피의 축제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미 아모스, 나훔, 요엘도 이야기한 “주님의 날”은 총체적 전복(顚覆)의 날이 될 것이다. 스바니야는 공포와 파멸 속에,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생명체까지 휩쓸어 가는 일종의 창조의 붕괴가 될 심판을, 그 누구보다도 폭넓게 서술한다(1,2-3.15).

그러면서도 스바니야 예언서에서는 “주님의 날”이 근본적으로 세상과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변형과 개조, 죄악의 시대의 종말로 나타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남은 자들”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로 흘러 들어간다(3장).

2) 예루살렘과 민족들을 질타하는 신탁

예루살렘 도성이 불충하고 완고하기 때문에, 그 우두머리들과 판관들, 예언자들과 사제들이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가 막힌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스바니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하느님의 심판 아래 놓이고 불행에 빠지리라고 예고한다. 주님께서는 심문하고 단죄하고 벌하실 것이다. 그리고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들, 관리들, 상인들, 불신자들도 고통을 당할 것이다. 성전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이 도성의 모든 것이 이러한 하느님의 행동반경 안에 들어갈 것이다.

이민족들 역시 하느님의 벌을 받게 된다. 다른 예언자들처럼 스바니야도 사방으로 몸을 돌려, 필리스티아(서쪽), 모압과 암몬(동쪽), 에티오피아(남쪽), 아시리아(북쪽)에 파멸과 멸망을 예고한다.

이 예언서는 시대의 표징들을 읽는 예언자적 독해를 제시한다. 이 독해가 바로 묵시 문학의 탄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3) 겸손한 이들

예언자는 한편으로 청천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작은 이들에게는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 겸손한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진노가 일으키는 대이변을 피할 희망이 있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다.

4) 주님의 거룩한 산

하느님께서는 자격을 갖춘 이스라엘 곧 “남은 자들”을 모으시어, 민족들 앞에서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흥겹고 자유롭고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데, 그분 친히 임금으로 이 예루살렘에 거처하실 것이다. 이처럼 스바니야서는 구약 성경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이루면서도, 몇 쪽만 더 넘기면, 희망과 기쁨의 말로,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춤판을 전망하면서 끝맺음을 볼 수 있다.

4. 저작 시기와 친저성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예언자들은 전기(傳記)가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스바니야의 경우, 자기 시대의 역사를 시사하는 그의 표현은 매우 분명하고, 아울러 정치 세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음을 전제한다. 이로써 그의 작품 시기를 대략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다. 우선 요시야 임금이 아직 어릴 때에 그가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바니야가 기원전 630년쯤에 활동을 개시하였다면, 그가 기원전 612년의 니네베 몰락 소식을 직접 듣고, 게다가 예루살렘에 대한 두 번의 포위(기원전 597년과 기원전 587년), 그리고 이 도성의 함락까지 직접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불행의 예언을 그렇게 많이 한 스바니야가 왜 유배자들에게 귀향과 복구를 약속하는 신탁들을 선포하였는지를 설명해 준다.

스바니야 예언자의 실존 여부나 이 예언서의 경전성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문이 제기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중에 손질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일부 절이나 구절이 그의 친저가 아니라는 비판을 그냥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신중히 고찰해 보아야 한다. 친저성이 불분명하다는 본문들 가운데에서는, 앞뒤로 이어지는 ‘애가 운율’(히브리말로는, 키나)이 중단되는 2,8-11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