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말라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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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키서는 대예언서에서 소예언서에 이르는 예언서집 전체를 마감한다. 예언서 가운데 마지막이라고 하여 이 예언서의 중요성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예언서의 저자는 말라키라고 불린다. 이 히브리 말은 3,1에 나오는 “나의 사자(使者)”를 뜻한다. 그래서 예언자의 이 이름은 일종의 가명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마지막 예언서를 우리에게 남긴 이 예언자는 같은 절에서 예고되는 메시아의 선구자와 동일시된다. 그리하여 구약 성경의 증언 전체에서 말라키 예언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여러 표지를 종합할 때, 말라키 예언자의 활동 시기를 기원전 480/46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이 예언서에 따르면, 백성은 이미 유배에서 돌아왔고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지어졌으며, 경신례를 다시 거행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기원전 515년에 성전 재건축이 완료되고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이민족과의 혼종혼 문제에 관한) 에즈라의 대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개혁은 기원전 440년경에 가서야 실행된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회의론이 팽배하던 때이다.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성전 재건과 결부시켰던 희망은 기대하던 대로 성취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실망으로 신앙이 식어 간다. 그리고 전례를 등한시하고 사람을 매수하며 여러 가지 불충과 부정을 저지름으로써, 다시 과거의 잘못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현실에 말라키 예언자는 강력하게 대응한다. 그는 사제와 일반인을 막론하고 저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지니는 책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예언자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유배 이후 유다교가 결정적인 모습으로 꼴을 갖추던 중요한 시기에, 그는 개인의 종교적, 도덕적 생활의 개혁자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온 유다 공동체의 안내자가 된다.

훨씬 후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말라키 예언서의 메시아적 내용에 감명을 받고, 이 예언자가 기다리던 이가 바로 나자렛의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유다교는 오늘날까지도, 말라키가 명확히 하고자 한 종교적 가치들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말라키서는, 때로는 냉혹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리라는 사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에게, 곧 동일한 메시지의 상속자들인 우리 모두에게 경고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