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입문

1. 코린토의 공동체

바오로 사도는 50년에서 52년까지, 적어도 열여덟 달 동안 코린토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지낸다(사도 18,1-8). 정확하지 않은 어림수이기는 하지만, 그때에 코린토에는 오십만 명 이상 되는 주민이 살았고 그 가운데에서 삼분의 이가 노예였다고 한다. 기원전 146년에 로마군이 완전히 파괴해 버린 것을 백 년 뒤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재건함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된 이 도시는, 지리적인 위치와 두 개의 외항 덕분에 큰 번영을 누린다. 에게해를 향한 동쪽의 사론만에는 켕크레애 항구가 자리 잡고, 아드리아해를 향한 서북쪽의 코린토만에는 레카이온 항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코린토는 어느 시대나 큰 국제 항구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곧 온갖 종족과 종교들의 공존, 갖가지 상업과 공업, 빈부의 격차,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의 무리 등이다. 이 국제도시는 또한 온갖 사상들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지성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2세기의 어떤 수사학자는, 거리마다 볼 수 있는 수많은 학교와 철학자와 문인이 활동하는 코린토를 칭송한 바도 있다. 또 종교의 중심지로서 이러한 코린토에는 특별히 동방의 여러 종교가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2세기의 코린토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로마의 전통적 신들에게 바친 신전들이 있는가 하면, 이집트의 바다 여신 이시스, 치유의 신 세라피스(또는, 사라피스),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 퀴벨레 등을 모신 성역들도 있었다. 특별히 코린토가 풍기가 문란하기로 유명하기는 하였지만,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도 틀림없이 비슷하였을 것이다.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모여든 그리스도교 공동체 역시 이렇게 복잡한 코린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부유한 이들도 있고 가난한 이들도 있었지만(11,21-22), 부유한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1,26). 공동체는 전체적으로 소시민들과 노예들(7,21), 한마디로 멸시받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1,28).

이러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코린토 교회는 활기가 넘치고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변에는 타락에 빠트릴 위험들도 상당히 많았다. 방탕한 성 도덕(6,12-20), 논쟁과 다툼과 싸움(1,11-12; 6,1-11), 이교에서 유래하는 철학적 지혜의 유혹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혜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그리스도적인 모습을 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는(1,19─2,10), 코린토 사람들이 새로이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확신을 왜곡시켜 버렸다(15장). 코린토 신자들이 처한 위험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밀교(密敎)와 사상의 유혹도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잡다한 사상들이 특히 얼마 뒤 2세기에는, ‘영지주의’(靈智主義)라는 총칭으로 널리 퍼지게 된다. 이것들이 이미 바오로 시대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으로 무질서하게 흘러들어갈 위험이 있었다(12,1-2와 14,26-38). 그리스도교라는 나무 자체는 튼튼하고 힘이 넘쳤지만, 자기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땅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상황에서, 성령께서는 당신의 풍성한 은사로 도움을 베푸신다(12─14장). 그리고 바오로는 자기의 서간에서, 이 어린 싹이 갖지 못한 그리스도적인 토양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러한 여건을 변모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바오로가 이 서간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코린토의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서간에서, 이교 문화 속에 들어간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떠한 문제들에 봉착하였으며, 바오로는 또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였는지 볼 수 있다.

2. 집필 동기

이제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처음으로 설교한 뒤 이 서간을 보낼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난 뒤에도 자기가 그곳에 설립한 공동체와 줄곧 접촉한다.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오지는 않지만, 5,9-13을 통해서, 바오로가 이 코린토 1서 전에 또 다른 편지를 써 보냈음을 알 수 있다(이 잃어버린 편지를 가끔 ‘경전 전[經典前] 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편지에서 바오로가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이다. 어떤 학자들은 2코린 6,14─7,1이 그 편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 편지는 코린토의 신자들이 어떤 질문을 담아서 보낸 짧은 서신에 대한 바오로의 답장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의 이야기(사도 18,24-28) 덕분에, 코린토 공동체가 아폴로라는 훌륭한 그리스도교 설교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다인으로서 이미 새로운 신앙을 배워 알고 있던 아폴로는, 에페소에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또는, 프리스카)의 도움으로 완전히 그리스도께 돌아선 다음, 에페소 신자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코린토로 간다. 사도행전은 아폴로가 달변가인 데다가 성경에도 정통한 사람으로, 코린토에서 특히 유다인들과 논쟁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바오로는 말주변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2코린 10,10). 이러한 면에서 아폴로는 바오로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폴로를 내세우는 파벌 하나가 생겨나, 바오로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신자 집단과 경쟁 관계를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1,12). 아폴로는 틀림없이 이러한 파벌 형성을 좋지 않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코린토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바오로가 코린토 1서를 쓸 때에는 이미 에페소로 돌아가 바오로 곁에 있었다. 그리고 코린토로 돌아가라는 사도의 간곡한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16,12). 자기를 내세우는 파벌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이른바 ‘아폴로 파’에 바오로 편이라느니, 케파 편이라느니, 또 그리스도 편이라느니 하는 집단이 들고 일어난다(1,12). “바오로 편”은 바오로를 경모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졌는데, 바오로에 대한 애착이 분파적이고 파벌적인 성격을 띤 것 같다. “케파 편”은 베드로 사도를 내세우는 신자들이 코린토를 거쳐 지나간 뒤에 생겨났을 것이다(이 사도는 본디 아람 말로 케파라고 불렸는데, 이를 그리스 말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이다). 아니면 베드로 자신이 코린토에 갔었을 수도 있다. 사실 9,5에 따르면, 베드로가 코린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편”에 관해서는 아주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된 상태이다. 이들은 곧 예수님이 유다인의 메시아일 따름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테두리 안에 넣으려는 사람들이라거나, 또는 자기들은 그리스도의 영과 관련이 있을 뿐 어떠한 조직도, 어떠한 교회 공동체도 거부한다는 영적 영지주의자라는 것과 같은 해설이다. 그러나 이 이른바 그리스도 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는 말 자체가 이 서간의 필경사가 본문 속에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러한 파벌을 꾸짖는 바오로 자신의 대답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분열에는 밀교적(密敎的)이고 철학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어떤 지혜 운동이 코린토 사람들에게 미치던 영향도 한몫을 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두 가지 주제를 통합하여 다룬다. 분열과 거짓 지혜, 그리고 그 거짓 지혜에 대립되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십자가의 지혜이다(1,10─3,4).

세 번째 선교 여행을 하던 중(사도 19) 에페소에 들른 바오로는 먼저 아폴로에게서, 이어서 클로에 집안 사람들에게서, 코린토 교회의 이 걱정스러운 상황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소식들도 전해 들을 것이다. 곧 자기 계모와 동거하는 근친상간자의 이야기(5,1-13), 신자들이 이교도들의 법정에 서로를 고발하는 상황(6,1-11), 불륜이 자행되는 사태(6,12-20), 성찬례 거행과 전례 모임에서의 무질서(11,2-34),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잘못된 교리(15장)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코린토 신자들 자신이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바오로에게 서신을 보내어 개입해 달라고 요청한 바도 있다. 이는 혼인이나 독신 생활과 관련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7,1 참조).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는 문제나(8,1 참조) 성령의 특별한 은사 문제도(12,1 참조), 코린토 신자들의 질의에 대한 바오로의 답변일 수 있다. 그에 따라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이다. 사도는 공동체가 여러 가지 오류를 바로잡고 평화와 조화를 이루게 하며, 코린토 신자들이 그리스도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나날이 접하게 되는 제반 문제에 해답을 주려고 한다.

이러한 코린토 1서의 집필 시기는 봄이 분명한데(5,7-8에 나오는 파스카 축제에 관한 시사 참조), 어느 해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52-57년 사이의 한 해를 제시한다.

3. 구성과 그 방식

코린토 1서를 여러 단락으로 나누는 일은, 예컨대 로마서와 달리 지금까지 별다른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위에서 열거한 주제들을 바오로가 연이어 다루기 때문에 단락 구분이 명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락들을 더 큰 부분으로 결집할 수 있는가? 이 서간이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 가끔 제기되었다. 첫째는, 코린토 공동체 안에서 분열과 물의가 빚어지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1─6장), 둘째는, 공동체의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는 것이다(7─16장). 그러나 신자들이 자기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이교도들의 법정에까지 끌고 가는 것이(6,1-11), 둘째 부분에서 거론되는 성찬례 거행 중의 분열이라든가(11,17-34) 믿음이 약한 이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세보다(8,7-13) 더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이 서간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데에 무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한 예이다. 그래서 바오로가 이 서간을 쓰면서, 문제가 되는 여러 가지 주제를 특정 순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생각에 떠오르는 대로 다루었다고 말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바오로가 쓴 코린토 1서와 2서에 관해서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이 서간이 처음부터 이러한 형태로 집필된 것은 아니라는 가설이다. 코린토 이외의 공동체에서도 서로 돌려가며 볼 수 있도록, 후대에 와서 바오로의 여러 서신을 이를테면 일종의 ‘선집’처럼 하나의 서간으로 편집해 놓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현대의 많은 주석서들은 이른바 ‘원전’을 분리해 내려고 애를 쓴다. ‘원전’은 여기에서 이러저러한 주제에 관하여 바오로가 쓴 서간들의 단편을 가리키는데, 이것들을 가지고 후대의 ‘편찬자들’이 현재의 코린토 1서와 2서의 형태로 편집하여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서는, 바오로가 일정한 구상을 가지고 이 서간을 집필하였다는 말이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런데 이 코린토 1서에서,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또 중요도도 같지 않은 주제들이 모아져 있는 부분들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공동체의 모임 중에 신자들이 취해야 하는 자세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그 사분의 삼이 “성령의 은사” 문제를 길게 이야기한다(12─14장). 이러한 은사와 관련하여 “사랑”이 하느님의 다른 모든 은총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바오로는 13장에서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노래하기도 한다. 이 사분의 삼 앞에 나오는 사분의 일에서는, 교회 모임 때에 여자가 취해야 하는 자세와 성찬례 거행 문제가 간략하게 다루어질 따름이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여러 단락의 결집이라든가 한 단락 내부의 소재 배열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전체적 구상을 이 서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주제를 다루면서 바오로가 자기 생각을 전개시키는 방식이 때로 현대인에게는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주제를 직선 구조가 아니라, 이를테면 A-B-A′라는 순환 구조로 펼쳐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7장에서는 먼저 혼인과 독신에 관한 자기의 교리를 밝힌다(A: 1-16절). 이어서 근본 원칙을 제시하는데, 저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B: 17-24절). 끝으로 이러한 원칙에 따라 자기의 가르침을 더욱 명확히, 그리고 깊이 있게 밝힌다(A′: 25-40절). 이와 비슷한 구조를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한 부분(8,1─11,1),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관한 부분에서도 볼 수 있다(12─14장). 제물에 관한 부분에서 기준이 되는 원칙은(B) 사랑의 우위성과 복음을 위한 봉사의 우위성이고(8,7-13; 10,24), 은사에 관한 부분에서는 사랑의 찬가이다(13장).

이러한 A-B-A′ 구조를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성찬례에 관한 단락에서는(11,17-34), 성찬 제정을 상기시키는 구절이(11,23-26) 핵심이다(B). 그래서 그 앞에 서술된 무질서가(A: 11,17-22) B의 성찬 제정 정신에 따라 단죄를 받고 교정된다(A′: 11,27-34). 사랑의 찬가(13장) 자체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은사라도 소용이 없다는 사랑의 우월성이 펼쳐지고(A: 1-3절), 이어서 사랑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열매가 나열된다(B: 4-7절). 이를 바탕으로 바오로는, 다른 모든 것이 없어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우월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그리고 더욱 심도 있게 전개시킨다(A′: 8-13절).

코린토 공동체 내의 파벌 문제를 다루는 첫째 단락은(1,10─4,21) 상당히 복잡하여 그 구조를 밝혀내는 일이 매우 어렵다. 우선 이 단락이 1,10─3,23과 4장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부분은 구성이 잘된 신학적이고 교리 교육적인 설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일차적으로 사도적 삶의 구체적인 면을, 그리고 이 서간이 쓰일 당시 바오로와 코린토 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둘 가운데 첫째 부분이(1,10─3,23) 주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오로는 여기에서 코린토 공동체에 일어난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수사학에서 ‘봉합법’(縫合法: 라틴 말로는, inclusio)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경계가 그어져 있다(‘봉합법’은 같은 어휘, 또는 동일하거나 상반된 문구를 한 단락의 앞과 뒤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곧 1,12의 “나는 바오로 편 …… 아폴로 편 …… 케파 편이다.”와, 3,21ㄴ-23의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이다. 여기에서는 앞과 뒤의 내용을 대비시키는 대조법을 사용하면서, 바오로의 논지가 코린토 신자들을 분열의 상황에서 일치의 상황으로 넘어가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파벌을 일으키는 두 가지 원인을 잇달아 꾸짖는다(1,17 참조). 곧 하느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A: 1,12─3,4), 이러한 복음의 선포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B: 3,5-23). 그리고 시작 부분에서 제기된 문제가 이 A, B 두 부분의 연결 지점에서 일종의 봉합법으로 재차 제시된다. 3,4 곧 A의 끝부분에 나오는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와, 3,5 곧 B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이다.

인간 지혜의 산물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하느님의 지고한 지혜를 알게 해 주는 복음에 관하여 말하는 A(1,12─3,4)는 a-b-b′-a′라는 일종의 교차 대구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 a: 인간적 지혜와 그리스도교 복음의 어리석음(1,18-25) ─ b: 코린토 교회 설립을 예증으로 하는 설명(1,26-31) ─ b′: 바오로의 복음 선포 방식을 예증으로 하는 설명(2,1-5) ─ a′: 하느님의 지혜인 복음(2,6─3,4).

복음 선포자들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B(3,5-23)는 다음과 같은 소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a: 하느님의 밭에서 수행하는 공동 작업(3,5-9ㄴ) ─ b: 하느님의 성전인 교회의 건설, 곧 교회의 성장을 위한 공동 작업(3,9ㄷ-17).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는(3,18-23) 이러한 활동의 전체적인 면과 거기에서 나오는 실천적 결과를 종합한다.

4. 주제

바오로가 이 서간에서 다루는 여러 특수 주제는 모두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교회 역사상 모든 시대에, 특히 선교 활동을 펼치는 중에 야기되는 문제로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현실적인 현안으로 대두되는, ‘문화적 차이’의 문제, 그리스도교 복음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는 토착화의 문제이다. 코린토 1서에서는 유다-팔레스티나 세계의 문화에서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로 건너간다.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는 매우 다양한 역동성이 그 근본 특징을 이룬다. 이러한 세계에 들어가면,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단순히 변질될 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 세계에 동화되어 버리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본질상 이교적인 헬레니즘 문화는 복음의 메시지 가운데에서 자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배척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세기에 가서, 여러 가지 영지주의적 사조에 물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게 된다. 이는 시대가 흐르면서, 조급하게 복음화가 이루어진 여러 나라에서도 되풀이된다. 그리하여 속으로는 이전의 이교가 그대로 존속하면서, 겉으로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져온 여러 요소로 치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바오로는 확고하면서도 동시에 여지가 있는 자세를 견지한다. 그는 자기가 선포하는 메시지와 화합할 수 없는 교리나 행실을 가차 없이 단죄하여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립이 가능할 때에는 수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오로가 이 서간에서 다루는 주요 문제들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공동체 분열의 문제, 그리고 참지혜와 거짓 지혜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면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헬레니즘의 종교 세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당시의 여러 종교 집단을 모델로 삼아 생각하기가 쉬웠음을 뜻한다. 이 종교 집단들은 때로 비밀스러운 입문 예식을 통하여, 유명한 스승을 중심으로 제자나 신도들을 모아들이는 예가 많았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코린토의 일부 신자들이, 이교의 스승들처럼 재능과 언변을 겸비한 아폴로에게 열광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저마다 각 파의 우두머리를 스승으로 모시려는 바람에 분열도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바오로는 강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상태에 단호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한낱 인간의 철학적 지혜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파벌 간에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오로가 인간적 지혜와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대립시켜 갈 때(1,18-25), 그 언사가 때로는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오로가 추구하는 이 논쟁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것이 결코 과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기에서 그는 신자들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고”(2,5)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지혜의 추구를 가로막는 일이 없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철학적 연구의 결실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사인 참지혜를 코린토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2,6-16).

성 윤리와 관련된 문제들도,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신앙과 주변 문화의 만남에서 야기된다. 이 문화는 양 극단적인 특징을 이룬다. 한쪽에서는 성적으로 너무 방종하고(5,1-13; 6,12-19. 그리고 6,14 각주 참조), 다른 한쪽에서는 당시의 특정 철학적 사조에 따라 육체를 멸시하고(7,1 각주 참조) 혼인의 포기를 절대적 이상으로 여긴다. 바오로가 코린토 1서에서 애쓰는 바는, 이렇게 양쪽으로 도가 지나친 성 윤리 앞에서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시는 온갖 형태의 성적 무질서를 가차 없이 단죄하고 혼인의 정당성과 가치를 부각시키며 독신을 칭송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7장). 그리고 이러한 분별의 바탕이 되는 원칙은 6,12에서 천명되고 10,23에서 되풀이된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외적인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도덕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성령께 영감을 받는 새로운 삶에 더욱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10,23 참조) 다음에 이어지는 문제, 곧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8─10장). 이 현안에서도 주변의 이교 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정 사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이 찬성 또는 반대 가운데에서 택일을 해야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여기에서도 해결의 원칙은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믿음에 위배되는 것은 다 배척해야 한다. 이교의 제의적 식사를 함께 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10,14-22). 반대로 이교에서 제물로 바쳤던 제물을 자기 집에서나 다른 사람의 집에서 먹는 행위는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어떻게 해도 무방하다(8,7-8). 그러나 이 문제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한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형제적 사랑에 따라,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8,9-13) 것이다.

공동체 집회 중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무질서는(11─14장), 이교의 종교적 사고방식에서 유래하는 행동들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앙이 오염되는 새로운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서로 관련된 두 가지 사항이 문제가 된다. 첫째는, 당시 이교에서 거행되는 종교적 식사 때에 참석자들이 곧잘 술에 잔뜩 취하곤 하였는데, 성찬례 중에도 이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이다(11,21).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종하기 전에 참석하였던 이교 집회에서는 사람들이 흥분하여 열광하는 상태가 빚어졌는데, 그리스도교의 전례 모임에서도 이러한 면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바오로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다. 곧 그리스도교 전례의 고유한 성격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 전례는 주변의 종교적 관습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위로 거행되는 신비를 드러내야 한다. 이 신비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일치이다. 여기에서부터 근본적인 판단 기준이 나온다. 곧 공동의 유익성(12,12-30), 공동체의 성장(14,1-19),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다(13,1-13).

끝으로 15장은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주변의 사고방식 사이에 벌어지는 충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 곧 죽은 이들의 부활과 관련된 문제이다. 유다인들은 인간을 단일체로 이해해 왔기 때문에, 적어도 바리사이적 유다교에서는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육은 필멸하고 영은 불멸한다는 이원론적 철학의 영향을 받은 문화에서는 부활 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구약 성경 지혜서의 저자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철학자 필론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종의 타협의 길을 걷는다.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부각시켜, 전체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서 최소한의 것만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를테면 정면 돌파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강력히 단언하고 나선다. 그는 부활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이고(15,13.16), 그렇게 되면 코린토 신자들의 믿음도 헛되다는 점만 보여 준다(15,14).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표현만 달리할 뿐 똑같이 제기된다. 그런 면에서 코린토 1서가 바오로의 모든 서간 가운데에서 시사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바오로가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우리와 문화적 조건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11,2-16 참조). 그러나 사도가 직면한 여건은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면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바오로가 내놓는 해답을 결정짓는 원칙들이 우리에게도 항상 빛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