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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우리말에서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로 사전적 정의를 내리는 ‘잠언’은 히브리 말로 마샬이라고 한다. 이 명사는 ‘비슷하다’ 또는 ‘지배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어원과 뜻은 확실하지 않다. 히브리 말에서 운문으로 된 잠언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문학 방식으로 표현된다. 첫째는, 다음과 같이 어떤 생각이나 표상을 다른 생각이나 표상에 대비시킴으로써 뚜렷하게 드러내는 ‘비교’이다. “악한 마음에 매끄러운 입술은 / 겉만 매끈하게 칠한 질그릇 같다”(26,23). 그래서 칠십인역은 히브리 말의 ‘잠언’을 그리스 말의 ‘비교’라는 낱말로 옮긴다. 둘째는, 두 개의 생각이나 표상을 두 줄로 병행시켜 표현하는 것이다(물론 같은 생각이 둘 이상의 줄로 전개되는 수도 종종 있다). 여기에는 서로 반대되는 경우와(10,3: “주님께서는 의인의 갈망은 채워 주시고 / 악인의 욕망은 물리치신다.”), 서로 보완하는 경우가 있는데(1,8: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 /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마라.”), 앞의 것을 ‘반의적 병행법’, 뒤의 것을 ‘동의적 병행법’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한 생각이 점진적으로 전개되거나, 둘째 줄이 첫째 줄의 생각을 설명하는 ‘점층적(또는, 종합적) 병행법’이 있다. “현인의 가르침은 생명의 샘이라 /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13,14의 말씀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시편 ‘입문’ 3도 참조). 잠언의 모든 말씀을 이 세 가지 형식 안에 넣어 묶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잠언은 이런 방식으로 현인들의 생각을 두 줄로 나타낸다.

구약 성경의 잠언은 여러 시대와 여러 장소에서 유래하는 잠언들을 모은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작은 묶음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잠언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두 곳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오래전부터 발달해 온 문학 유형인 ‘지혜 문학’ 또는 ‘격언 문학’에 속한다. 이스라엘에도 이 ‘동방의 아들들’(1열왕 5,10)의 지혜가 잘 알려져 있었다(특히 에돔의 지혜에 대해서는 예레 49,7; 바룩 3,22-23; 오바 8 참조). 그래서 성경의 잠언과, 그 밖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잠언과 아시리아-바빌론의 잠언(이사 47,10; 예레 50,35; 51,57; 다니 1,20; 2,24), 이집트 잠언(창세 41,8; 1열왕 5,10; 이사 19,11.12; 지혜 17,7; 사도 7,22), 가나안 원주민들의 잠언, 그리고 시리아-팔레스티나 북부의 히타이트 잠언 사이에는 단순한 유사점 이상의 것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같은 주제를 동일한 표현 정식으로 나타내는가 하면, 때로는 다른 나라의 잠언을 직접 빌려 온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들도 있다. 잠언 안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모음이(30,1-14와 31,1-9) 외국 현인들의 작품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당시에 국제적인 문학 교류가 활발하였고, 이스라엘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1. 표제 ─ 잠언 이해의 열쇠

상호 유사성과 직간접적인 영향에도 성경의 잠언을 단순히 국제 문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지혜 문학과 마찬가지로, 잠언 역시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이스라엘의 고유한 산물임이 분명하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이라는 표제로 시작한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두 가지 칭호로 불리는데,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이다. 솔로몬은 잠언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이름으로, 잠언 전체가 그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을 꼽는가?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적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1열왕 3,3-14.16-28; 5,9-14; 10,1-9.23; 집회 47,14-17 참조). 또한 잠언에 들어 있는 세 개의 작은 묶음에는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솔로몬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하였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은 솔로몬과 그의 궁전을 중심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솔로몬의 국제 정치와 국제무역 활동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그는 당시에 지혜 문학을 이미 활발히 전개하고 있던 이집트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파라오의 딸과 혼인을 하기도 하였다(1열왕 3,1-2). 그래서 모세가 율법 전체를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율법을 그의 권위와 전통 아래로 결집시키고, 또한 시편들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시편 ‘입문’ 2 참조),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잠언의 수집가는 이 작품을 내놓으면서,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임금”이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저자를 “이스라엘 임금”이라고 함으로써, 지혜가 임금에게서 유래한다는 당시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견해를 따른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였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금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로 여겨지기도 하였다(16,10-15. 바로 직전의 16,1-9에서는 주님에 대해서 말하는데, “신탁”으로 시작하는 임금에 대한 구절을 주님에 대한 이야기 바로 다음에 배치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하겠다. 2사무 14,18-20 참조).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자적’ 구실을 다하지 못한 불충한 임금들이 있었음이 사실이고, 잠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28,16; 29,4). 수집가는 또한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한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킨다. 잠언에서는 계약과 약속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하여,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을 통하여 이 계약과 약속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신론을 기조로 하는 고대 근동의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 이미 표제에서부터 독자는 잠언의 이러한 성격을 느끼게 되고, 이는 이 책의 대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31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잠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 계시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나타낸다. 물론 잠언들은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라는 큰 임금의 권위와 전통 아래 수집되고 선포되었기 때문에, 하느님 계시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2. 구성

1) 잠언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설명하고 1장 1절의 표제를 정당화하는 짧은 머리글로(1,2-7) 시작한다. 잠언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을 가르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는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젊은 세대가 다양한 삶의 상황 속에서 올바르고 슬기롭게 처신하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이 경험은 과거와 현재의 스승들의 가르침 안에 들어 있으며, 이것이 말 그대로 일종의 교육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의 시초에 이미 주님께서 존재하심을 잠언은 강조한다.

2) 잠언은 1,2-7의 머리글 다음에, 다양한 길이와 내용을 지닌 아홉 개의 모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구분이 본디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잠언이 번역되어 오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고자 이루어졌고, 때로는 같은 목적으로 소제목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과 각 단락의 간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1,8─9,18.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아버지 또는 스승의 훈계가 나오고, 여기에 지혜에 대한 찬양과 지혜 자신의 말씀이 첨가된다(1,20-33; 8,22-35). 의인화한 ‘지혜’와 이에 맞서는 ‘우둔함’이 9,7-12를 가운데 두고 마치 균형을 이룬 두 개의 저울판같이 나란히 제시된다(9,1-6과 9,13-18).

나. 10,1─22,16.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 두 번째 모음은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주님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 잠언 안에서 가장 오래된 잠언들이 들어 있다는 데에 학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다. 22,17─24,22. 현인들의 잠언들을 묶어 놓은 첫 번째 모음이다. 이 모음에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이집트의 ‘아멘엠오페의 지혜’와 매우 흡사한 단락과(22,17─23,14) 술버릇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풍자가 들어 있다(23,29-35).

라. 24,23-34. 24,23이 말하는 바와 같이 현인들의 잠언들을 묶어 놓은 두 번째 모음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게으름뱅이의 초상화’라 할 수 있는, 게으른 자에 대한 묘사가 주목된다(24,30-34).

마. 25─29장. 127개의 잠언들을 묶은 것으로서, 10,1─22,16에 이어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 모음으로 불린다(25,1). 솔로몬의 첫 번째 잠언 모음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대부분의 잠언이 한 쌍을 이루는 두 줄로 되어 있다. 첫째 모음과 같지는 않지만, 이 25─29장의 잠언들도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바. 30,1-14.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인데, 아구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국의 현인이다.

사. 30,15-33. ‘수(數) 잠언’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수 잠언’은 수의 점진적 나열, 곧 X+1의(예컨대, ‘이 셋은……, 이 넷은 ……’)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수사학적 방식은 아모스 예언서 첫째 장에서도 볼 수 있다.

아. 31,1-9. 마싸 임금 르무엘의 말로서, 외국 현인의 금언을 모은 묶음으로는 30,1-14에 이어 두 번째 것이다.

자. 31,10-31. 훌륭한 아내를 노래하는 유명한 알파벳 시이다(시편 ‘입문’ 참조). 이는 9장에 일종의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나오는 ‘지혜’에 대한 묘사와 한 쌍을 이룰 수 있는 단락이다.

3. 지혜와 지혜로운 이들(현인들)

잠언에서 주제가 되는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혜는 사람보다는 하느님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곧, 지혜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도 동참한다(3,19-20; 8,22-31). 여기에 지혜가 생명의 탁월한 근원으로 제시되는 근거가 있다. 이로써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언에서 지혜는 육적인 것으로부터 유리된 순전히 영적인 존재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8장에서 지혜는 ‘하느님 앞에’ 있는 존재로 소개된 뒤, 9장에서는 집의 여주인 구실을 하는 인격체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지혜를 일종의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고대 근동, 특히 이집트에서와 같이 ‘지혜’를 하나의 신으로 여긴다거나, 또는 어떤 신적 존재를 ‘지혜의 신’으로 받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구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른바 실재 인격체와 시적 인격체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주님의 손(민수 11,23; 신명 2,15; 이사 59,1), 주님의 팔(시편 98,1; 이사 51,9; 59,16), 주님의 칼(이사 34,5; 예레 12,12; 즈카 13,7), 주님의 영(이사 32,15; 63,11.14) 등은 시적으로 마치 하나의 인격체와 같이 묘사된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된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이다. 결국 잠언의 교육이 추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 존재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 성경의 사고방식에 따라, 정신과 육체, 종교적인 면과 세속적인 면을 동시에 포괄하는 전인적 인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지혜로운 이는 예술과 기술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하게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능숙한 뱃사람(에제 27,8), 조각가, 가구 제조인, 세공인(탈출 31,5; 이사 40,20; 예레 10,9), 방적공(탈출 35,25), 전문 곡(哭)꾼(예레 9,16) 등이다. 특히 임금의 서기, 보좌관, 고문 등 정치 전문가들을 ‘지혜로운 이’ 또는 ‘현인’이라 한다. 예레미야 예언서는 사제와 예언자와 함께 현인을 이스라엘의 정신적 권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본다(예레 18,18). 비록 예레미야 자신은 이른바 현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판단하지만(예레 8,8-9; 9,11. 그리고 이사 29,14도 참조), 예레 8,18의 말은 당시의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다. 또한 이들 가운데에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25─29장에 들어 있는 이른바 “솔로몬의 잠언”을 수집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육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도 ‘현인’이라 불린다. 잠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경험을 토대로 한 이들의 가르침은 사실 ‘지혜’의 정수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술자나 예술가들의 자질 면에 비추어 볼 때, 잠언은 문장의 전문가들, 곧 ‘서기관’들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서기관’은 정부 관리들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이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문학적 작업을 할 수 있는 많은 여유와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솔로몬의 둘째 잠언 모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으로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또는, ‘필사’)한 것이다”(25,1). 이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바로 서기관들로서,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미 다른 이들이 말한 것을 수집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외국인들, 그리고 외국 문학과 접촉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외국 현자들의(아구르, 르무엘) 금언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모방하기도(‘아멘엠오페의 지혜’) 하였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하기 전에 이미 상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던 가나안의 지혜 문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임금과 제후의 직무, 그리고 임금의 고문들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잠언의 편자들이었던 바로 이 서기관들의 배려로 그 안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4. 잠언과 이스라엘의 믿음

지혜의 근본, 또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본은 다음과 같은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을 경외함”이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9,10. 그리고 1,7과 15,33 참조). 이로써 현인들은 비록 자기들과 방법은 달리하였지만, 같은 경외심을 지니고 살면서 같은 경외심을 가르쳤던 이들, 곧 레위기와 신명기의 설교가들, 예언자들, 시편 저자들,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세의 법’에 호소하고 그것을 가르치며 설명한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 몇 가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잠언 첫 부분의 정열적이고 이성적인 훈계는 이들의 공통점을 뚜렷이 보여 준다. 여기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신명기적 선택의 도식’(신명 11,26-28; 30,15-20)으로서, 생명과 거기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고, 죽음과 거기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는 것이다.

또한 두 개의 강한 표상이 율법과 예언서에 나오는 전통과 잠언 사이의 깊은 일치를 드러낸다. 곧 생명의 나무와 생명의 샘이다(3,18; 10,11; 11,30; 13,12.14; 14,27; 15,4).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낙원 이야기가 어떻게 이해되고, 또 어떻게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갔는지를 말해 주기도 한다.

‘지혜’가 설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을 연상케 한다(1,21; 9,3). 그런데 예루살렘은 ‘땅’ 그 자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땅’은 올바른 이들에게는 주어지고, 악인들은 쫓겨나는 땅이다(2,21-22; 10,30. 그리고 신명 4,26 참조). 이렇게 해서 집회서 24,8-17에서 선언될, ‘지혜-율법’이 시온에 뿌리를 내린다는 표현이 마련되는 것이다.

시나이산에서 일어난 원초적 사건(율법, 돌판에 새긴 십계명의 부여) 역시 예언 사상과의 연계 아래 현인-교육자들에게서 실생활 속에 동화되고 전승된다. 이들도 예언자들처럼 가르침을 “마음의 판에”(3,3 각주 참조) 새길 것을 촉구한다(3,3과 7,3을 예레 31,33과 비교).

이 밖에도 이스라엘의 믿음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 공통점을 더 언급할 수 있다. 첫째, 2,17에 따르면 혼인의 계약을 깨는 때에 하느님과의 계약 자체가 깨진다는 것이며, 둘째, 5,14에서는 “회중”과 “공동체”라는 특별한 용어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5. 저자와 저작 시기

간략한 입문에서는 서로 다른 여러 부분의 생성 시기와 저자 등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항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언의 뿌리가 이스라엘 공동체 생활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에는 학자들이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구약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글자로 쓰이기 전에 이미 구두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관리 양성과 교양 교육을 담당하던 조정의 서기관 사회에서 잠언의 수집과 기록은 일찍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이 구약 성경의 잠언에서는, 이보다 휠씬 오래된 이집트의 ‘교육’에서처럼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특별히 왕정 시대를 잠언 수집의 초기로 고려해야 하겠지만, 유배 이후 시대에야 이에 대한 중요한 작업이 수행되었고 주변 문화권으로부터 지혜 문학을 수용한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잠언들 역시, 시편들처럼, 구약 성경의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되었다.

6. 우리말 번역의 문제

잠언은 일상생활과의 밀접한 관계 아래 형성되고 말해지고 전해졌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해당 민족의 총체적 문화 배경이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사실 잠언 본문의 배경과 번역문인 우리말의 배경이 달라, 구체적인 이해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그 배경까지도 모두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잠언은 금언이나 격언 또는 속담처럼, 어떤 생각을 압축된 언어와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번역에서도 이러한 잠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잠언을 이해하려면 그 내용을 되새겨야 한다는 사실, 비록 처음에는 그 뜻이 분명하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제맛이 난다는 데에 바로 잠언의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