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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1. 문학 유형과 언어

미카서의 자료들은 예언서 본문에서 이미 완전히 고전이 된 구성 방식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곧 단죄의 말씀과(유동적 단락인 2,12-13을 뺀 1─3장과 6,1─7,7) 구원의 약속이(4─5; 7,8-20) 규칙적으로 번갈아 등장한다. 이러한 배열은 신탁들이 집성된 뒤에 편집자들이 작업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이로써 그 안에 들어 있는 요소들의 친저성 문제가 제기된다. 1─3장과 6,1─7,6은 거의 모든 학자가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모레셋 사람 미카가 선포한 말씀으로 판단한다. 다만 2,12-13의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36년 이후, 유배에서 돌아온 때로 잡는다. 7,8-20의 전례도 마찬가지다. 4장과 5장의 저술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활발하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두 장을 유배 이후의 신탁들이 한데 모아진 것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미카의 말씀을 기초로 후대의 사람들이 연이어서 자기들의 시대 상황에 따라 재작업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결정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미카 예언서는 예언 전통에서 물려받은 고전적 문학 유형들을 담고 있다. 곧 경고, 질타, 심판의 신탁, 논고 또는 계약 위반에 관한 소송, 구원의 약속, 전례 의식의 단편 등이다. 이러한 유형들이 미카서에서 단순히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미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분들을 가려내다 보면, 미카 자신이 그것들에 자기의 개인적 표지를 남겨 두었음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여러 번에 걸쳐 단죄가 탄식으로 바뀐다(1,2-16과 7,1-7). 이는 예언자가 사명을 수행하면서 필요할 때에는 억제해야 하는데도, 미카는 그렇지 못해 남긴 풍부한 감정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또 책임자 관리들과의 대립이 미카에게 소송의 문학 유형과(1,2-7; 6,1-8) 논쟁의 문학 유형을(2,6-11) 즐겨 사용하도록 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때때로 대화 형식의 문장도 발견된다. 이 밖에도 가끔 생략형으로 여겨질 정도로 간결한 그의 문체는, 그 신랄함과 노골성으로 아모스의 문체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2,6; 3,5). 다른 한편, 거의 체계적인 언어유희 방식의 사용은 때때로 본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한 이유로 언어유희들이 가끔 변화된 상태로 전승되기도 하였다. 또한 적지 않은 구절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불분명한 때도 있다.

2. 예언자와 그의 고향

미카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7,18 참조)라는 질문의 축약형이다. 그리고 전례 중에 백성이 지르는 탄성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시편 35,10; 89,7-9; 113,5; 이사 44,6 이하). 이 이름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저술 예언자인 이 미카와 판관 17장 등 다른 곳에 나오는 미카와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머리글에(1,1) 나오는 미카의 고향 모레셋이라는 작은 마을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곳으로 생각한다. 이곳은 팔레스티나 중심부의 남북으로 뻗은 산악 지방에서 지중해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평원 지대이다. 유다 땅 모레셋의 이러한 위치는 이 책이 시사하는 시대와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할 때에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

3. 메시지

미카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유다의 윤리적, 종교적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한다. 예루살렘 주민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자기들의 도성에 불가침성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안전 의식이라고 미카는 고발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에 계속해서 성실하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권력가들이 놀랄 정도로 쉽게 매수되고, 예언자들과 재판관들은 자기들의 책임 아래 맡겨진 진실과 공정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생각한다. 가진 자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틈은 더욱 커지고, 사회 상황은 통탄할 지경이 되었다. 경신례는 호화롭게 거행되지만, 마음의 회개는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 이러한 악이 너무나 명백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죄의 화신으로 불리게 된다(1,5). 그리하여 하느님의 심판에 이어지는 징벌이 그들의 반역의 정도에 따라 내려진다. 이러한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미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불행만을 선포한 예언자로 기억된다(예레 26,18). 그러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미카가 예고하는 재앙은, 하느님의 어떤 맹목적이고 냉혹한 분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시는 하느님의 심판이다. 미카 예언자는 계약의 이상을 말한다. 그것은 6,8에 훌륭히 요약되어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받은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미카서가 이러한 어두운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징벌은 회심을 촉구하는 호소로도 바뀔 수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에프라타의 보잘것없는 씨족에게서 일어날 새로운 부흥을 준비하신다(5,1-5). 바로 거기에서 다윗의 후손 메시아 임금이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흩어진 지파들의 재결합은, 땅끝까지 퍼져 나갈 위대한 평화의 시작을 알린다.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중심지가 되어, 민족들이 주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루살렘으로 달려올 것이다(미카 4,1-5).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이 민족들이 받는 복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반항하는 민족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형벌의 도구가 된다. 인간의 잘못된 안전 의식, 허위에 찬 경신례, 우상 숭배는 모조리 없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하느님의 주도 아래 주어지는 구원만 기다릴 것이다.

머리글에 따르면, 미카는 유다 임금 요탐과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 곧 기원전 750년에서 대략 기원전 697년 사이에 임무를 수행한다. 미카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러나 어떠한 본문도 그가 실제로 요탐의 치세 때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 다음의 임금 아하즈 통치 말기를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머리글이 이 예언자의 전체 활동 시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특별히 신랄한 내용을 담은 몇몇 구절은, 하느님께 불충한 므나쎄 임금과 그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설을 따를 경우, 미카의 활동 시기는 기원전 725년에서 기원전 680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으로 눈에 띈다. 우선 왕조의 위기가 줄곧 이어지다가 결국 기원전 722년에 발생한 사마리아의 멸망이다. 미카는 이 재난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1,6-7에서 이 사실을 선포한다. 또 다른 커다란 역사적 사건은 기원전 701년에 일어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평원 지대 침공이다. 이 침략으로 미카 예언자의 고향은 아시리아 군대의 행동반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카는 불행이 예루살렘으로도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멸망은 피할 수 없다고 여긴다(1,8-16과 3,12).

이렇게 미카는 조국에 닥친 격랑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사야와 달리 미카는 사실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예컨대 책임자들이 전개시킨 외교적 행동에 어떠한 심판의 말도 하지 않는다. 반면, 다가오는 사건을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불가피한 결과로 본다. 그 죄악은 특별히 사회적 불의, 그리고 이민족의 종교 의식과 타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들과 싸워 나가는 미카는 외톨이처럼 보인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도 그들 앞에서 혼자이다. 사제들, 판관들, 제후들과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도 혼자이며(3장 참조), 행복하고 편안한 미래를 예고하는 분별없는 예언자들 앞에서도 혼자이다(2,6-11). 그러나 미카는 자기에게 임무를 완수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영이 인도해 주신다는 의식 아래, 그들과 용감히 맞선다(미카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