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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열왕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긴 기간을 다룬다. 열왕기가 다루는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은 다윗의 말년에 일어난 일로서(1열왕 1─2,10), 그 연대는 기원전 970년경이다. 반면에 열왕기의 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은 기원전 561년 여호야킨 임금이 바빌론 임금의 특전을 받은 일이다(2열왕 25,27-30). 그러나 열왕기를 전기 예언서로 분류한 히브리 말 성경의 목록이 시사하듯, 이 책에 수많은 역사적 자료가 나온다 해서 독자들은 이 책을 단순한 역사 기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책의 내용은 이스라엘 임금들이 통치하던 이스라엘 역사의 일정 기간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라 할 수 있으며, 크게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가. 다윗의 통치 말년과 솔로몬의 통치(1열왕 1─11)

나. 왕국의 분열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까지(1열왕 12─2열왕 17)

다.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에서 유다 왕국의 마지막까지(2열왕 18─25)

1. 열왕기의 기원

우리에게 전해진 열왕기는 뚜렷이 둘로 나뉘어 있지만, 히브리 말 성경은 한 작품이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 말 번역자들이 이것을 둘로 나누어 옮겼다. 이후 이 분리는 점차 굳어져, 유감스럽게도 아하즈야의 통치 시대와(1열왕 22,52-54에서 시작하여 2열왕 1장으로 끝남.) 엘리야 이야기를(1열왕 17장에서 시작하여 2열왕 1장으로 끝남.) 두 권에 갈라놓게 되었다.

열왕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완전히 독립해서 쓰이지 않았다. 열왕기는 본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를 포함하는(여기에는 신명기도 포함될 수 있다.) 하나의 역사 문헌에 속해 있었으리라고 본다. 한 가지 좋은 예로 1열왕 1─2,11은 다윗의 통치를 전하는 사무엘기 하권과 곧바로 이어진다. 사무엘기와 열왕기가 왜 구분되었는지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열왕기를 분석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다른 색깔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열왕기 저자 자신이 이전의 기록을 이용했음을 밝히며, 자기가 의존한 사료들 가운데 몇몇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쳤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1열왕 11,41; 14,19.29 등은 각각 ‘솔로몬의 실록’,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 ‘유다 임금들의 실록’을 언급하는데, 이런 사료들은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본문을 편집할 때 출발점이 되었던 문헌들이다.

그러나 행적이나 실록을 언급하는 단편들은 이 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면서 다른 사료들도 많이 이용하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성전 문서고에 있던 자료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1열왕 4,1-6.7-19; 5,7-8 참조). 이 자료들은 이미 어느 정도 문헌으로 정리되어 있거나, 아니면 구전 전승에서 유래한 것들일 수 있겠으나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스바 여왕의 이야기는(1열왕 10,1-13) 별도의 전승에 속한다. 아합 임금과 관련된 일화들은 전혀 다른 관점의 두 사료에서 나왔다. 한편에서는 그를 맹렬히 비판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를 용감한 임금으로 묘사한다(1열왕 22,9.35). 요시야 임금에 관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기록은(2열왕 22─23,30) 부분적으로 공식 실록이 아닌 다른 사료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어떤 대목들은 특별히 예언자들의 행적을 다루며, 이런 대목들은 예언자들의 제자들이 간직한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와 합쳐진 이유는, 이 이야기들이 같은 시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예언자들이 임금들을 위해 수행한 중개 역할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왕기 안에는 아히야나 이믈라의 아들 미카, 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에 관한 단편들은 말할 것도 없고(1열왕 13; 2열왕 21,10-15), 엘리야와 엘리사와 이사야 예언자의 이야기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러면 서로 다른 이 요소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아졌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열왕기와 관련된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여호야킨의 유배 모습을 전하는 2열왕 25,27-30의 저자와, 솔로몬과 동시대 인물로서 계약 궤를 묘사하고(1열왕 8,7) 그 밖에 다른 사실들을 전하는(1열왕 9,21) 저자는 결코 동일 인물일 수가 없다. 솔로몬 시대와 유배 시대 사이에는 사백 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그렇다면 누가 열왕기를 썼을까? 여러 가설들이 나왔지만,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먼저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서 여호수아기와 판관기와 사무엘기가 있었을 것이다(어떤 학자들은 신명기도 포함시킨다).

열왕기의 첫 번째 편집자는 1열왕 1장에서 2열왕 20장을 저술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한편으로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연대기에, 다른 한편으로 솔로몬의 행적기와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이 담겨 있는 문헌에 의존하였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이 편집자는 구전 전승의 요소들도 이용하고, 나아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파괴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그 사건을 묘사하였을 수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팔레스티나의 한 사제가 기원전 580년경에 이 책을 썼다고 여긴다.

첫 번째 편집자보다 한 세대 뒤에, 곧 기원전 550년경 아직 바빌론 유배가 풀리기 전에 같은 장소인 팔레스티나에서 두 번째 편집자가 나타나, 자기가 수집한 다른 일화들과 전승들을 이용하여 선임자의 작품을 보완하였을 것이다. 그가 첨가한 내용으로는 다윗과 그의 후계에 관련된 이야기와(1열왕 1,1─2,11에 계속되는 2사무의 왕위 계승 대목), 예루살렘 포위를 다루는 본문을(2열왕 18─19; 이사 36─39) 들 수 있다. 스바 여왕의 방문에 얽힌 전승도 그가 이 책 안에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예언자들과 모세 율법이 그의 편집 안에서 각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연결되는(여호수아기에서 열왕기 하권까지 이어진다.)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두 번째 편집자를 예언자들의 집단에 속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제자가 아니었나 추측한다.

끝으로 기원전 6세기 말경 레위 지파 출신의 서기관들이 이 책에 몇몇 부차적인 요소들을 첨가한 것으로 추정한다.

2. 열왕기의 연대

열왕기에 나오는 연대는 매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연대는 이스라엘 역사와 고대 근동의 역사가 분명히 연결되는 경우 말고는 정확하게 정립할 수 없다. 그러나 몇몇 이집트 문헌들과, 아시리아-바빌론 임금들의 실록과 관련된 문헌들은 열왕기의 몇몇 사건들에 관하여 매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점들 말고도 열왕기의 자료들은 해설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우선 유다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보면 언제나 이스라엘 임금들의 통치 연대와 함께 언급되고, 이스라엘 임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부정확한 연대 체계를 끌어들이는 원인이 된다. 그다음 필경사들의 오류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원래의 문헌에 나오는 숫자를 뒤바꾸어 놓거나 다른 숫자와 혼동하여 여기저기서 연대의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솔로몬과(1열왕 1) 요탐이(2열왕 15,5) 선왕과 함께 나라를 공동으로 통치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듯이, 또 다른 공동 통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과, 이로 말미암아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정확하게 나누어 배치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대 측정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열왕기 안에 서로 겹치는 여러 연대 체계가 있기 때문인데, 이 상이한 연대 체계는 저마다 다른 사료들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은 연대를 측정하는 데서 세 가지 서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유다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둘째는 이스라엘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셋째는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이다. 예를 들어 왕국 분열에서 아합 통치의 끝에 이르는(기원전 933-853년) 기간을 우리는 80년으로 보는데(부록의 ‘성경 연대표’ 참조), 유다의 연대로는 84년, 북 왕국의 연대로는 78년, 그리고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는 75년이다.

우리는 연대를 측정할 때 되도록 최근의 고고학 발견들을 참작하려고 한다.

3. 열왕기의 신학

열왕기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과 그 임금들의 역사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다. 열왕기에 나오는 역사 자체는 대체로 매우 간결하다. 예를 들어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므리 임금의 통치를 매우 간단하게 다룬다(1열왕 16,23-26). 그리고 세 해 동안 계속된 사마리아의 포위와 북 왕국의 붕괴는 불과 몇 절로 처리한다(2열왕 17,3-6; 18,9-12). 앞서 살펴보았듯이 열왕기에는 신명기계 어휘와 표현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작품을 신명기계 신학이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언자들의 신학이) 배어 있는 위대한 역사 문헌으로 여길 수 있다. 여기에서는 열왕기의 중요한 주제 몇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1) 왕정 제도

이 책은 신명기계 저자와 예언자들이 생각하는 왕정 신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참다운 임금은 주님의 규정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는 주님의 길을 걸으며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분의 법규와 계명과 규정과 명령을 따른다(1열왕 2,3). 임금의 임무는 백성이 하느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1열왕 3,8-9 참조), 그 백성을 지혜와 정의로 다스리고, 동시에 백성을 “섬기는”(1열왕 12,7) 것이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분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데에 전념하는 일은 임금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열왕기 저자는 이런 의무를 기준으로 모든 임금의 통치마다 짧은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임금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단호한 비판을 받는다. 열왕기 저자는 서른네 명의 임금들에 관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후렴처럼 되풀이한다. 그는 실례들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주님에 대한 불충은 여러 가지이다. 이를테면 우상을 숭배하고, 거짓 신들에게 신전이나 제단을 세워 바치며, 이민족 신들에게 문의하고, 온갖 억압과 폭력으로 백성을 괴롭히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하느님의 동의 없이 전쟁에 나서며, 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 등이다.

저자가 임금들, 특히 북 왕국의 임금들에게 던지는 가장 큰 비난 가운데 하나는, 율법을 거스르는 경신례에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죄를 짓게 했다는 점이다. 때때로 어떤 임금들은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암울하기만 하다. 열왕기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멸망은 결국 임금들의 죄와, 그들이 백성들에게 짓게 한 죄에 대한 마땅하고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2) 다윗과 그 왕조

유다 임금들의 맨 앞에는 때때로 하느님의 “종”이라고 불리는(1열왕 3,6; 8,24; 11,13 등), 이 왕조의 창시자 다윗이라는 인물이 자리 잡는다. 다소 이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주님에 대한 다윗의 충성과 열성은 그의 후계자들의 평가 기준이 된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따라 살고(1열왕 3,3), 아사는 자기 선조 다윗처럼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며(1열왕 15,11), 요시야는 자기 선조 다윗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2열왕 22,2). 요시야에 관해서 저자는 1열왕 13,2에서, 다윗의 자손들 가운데 요시야라는 인물이 이스라엘의 불충을 그치게 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대 임금들이 다윗과 일치했다는 증언에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아히야 예언자는 예로보암이 다윗과 같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1열왕 14,8).

열왕기 저자는, 다윗 후계자들의 불순종을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분열과(1열왕 11,9-11) 유다 왕국의 멸망을(2열왕 23,26 이하 참조) 가져온 직접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1열왕 2,4에 담긴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다윗 집안에 내리신 주님의 약속은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네 자손들이 제 길을 지켜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걸으면,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1열왕 2,4. 그리고 2사무 7,12-16 참조). 주님께서는 “다윗을 생각하시어” 예루살렘에 “등불을” 하나(다윗 왕조의 왕자) 남겨 두신다(2열왕 8,19. 그리고 1열왕 15,11 참조).

마침내 열왕기는 한 가닥 희망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다윗 왕조의 마지막 후손은 비록 칼데아에 유배된 몸이었지만, 자기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 바빌론 임금은 그에게, 죄수복을 벗고 날마다 임금의 식탁에서 음식을 들 수 있는 은혜를 베푼다(2열왕 25,27-30 참조).

3) 예루살렘과 성전

신명기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열왕기는 예루살렘과 성전 안에서 거행되는 예배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다. 우선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도성이다(1열왕 8,12). 그리고 그곳은 성전의 성읍이다. 1열왕 8,15-19에 따르면 이 성전 건축은 원래 ‘주님의 이름을 위한’ 집 한 채 짓기를 간절히 바라던 다윗의 소원이었다(2사무 7,1-16 참조). 성소의 중요성은 성전 봉헌 때에 솔로몬이 바친 기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1열왕 8,23-53).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생존 환경에서도 하느님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이다(탈출 33,7의 “만남의 천막” 참조).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관한 이야기도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2열왕 22─23). 율법 두루마리를 발견한 곳도, 우선 먼저 정화를 시도한 곳도 성전이며, 이후 이 성전은 이스라엘의 모든 제의 생활의 중심이 된다. 열왕기 저자는 이 개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나머지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예전에는 예루살렘 밖에서 제사가 바쳐졌음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1열왕 3,2; 22,44; 2열왕 12,4; 14,4; 15,4.35), 사실 이러한 제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었다(엘리야가 카르멜산에서 올린 제사를 전하는 1열왕 18 참조).

성전을 제의 생활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까닭에, 사제들은 경신례 안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따라 제사를 바치는 권한은 오로지 사제들, 곧 레위 지파에 속한 사제들에게만 귀속된다. 1열왕 8,1-6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부터 이미 그들이 본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묘사한다. 열왕기 저자는 나중에 아탈야가 다윗 가문의 혈통을 끊어 버리려 할 때에 다윗 왕조의 존속을 가능하게 한 일도 사제들의 공적으로 돌린다(2열왕 11). 저자는 요아스가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게 된 것도 여호야다 사제가 그를 잘 지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열왕 12,3). 사실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도 사제였다(1열왕 1,39).

열왕기 저자는 예루살렘 중심으로 레위 지파 사제들의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예배를 철저히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 예로보암의 주도로 단과 베텔 같은 다른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를 온전히 배척한다. 저자는 “예로보암의 죄” 또는 “예로보암의 길”을(이런 표현은 스무 번가량이나 나온다.) 엄하게 단죄하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예로보암 자신과 그를 따른 그의 후계자들의 잘못을 고발하는데 이 역시 스무 번가량 나온다. 열왕기 저자의 견해로는 예루살렘에서만 제사를 바치라는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로서 한 왕국에 총체적인 단죄와 심판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비록 그 왕국의 임금이 바알의 제단들을 철거하여 주님께 충성을 보인다 할지라도 죄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2열왕 3,1-3 참조). 이 같은 분열적 종교 의식은 사마리아가 함락되기까지 한탄의 대상이 된다(2열왕 17,32 참조).

4) 예언자들의 개입

예언자들과,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한 개입은 열왕기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승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엘리야와 엘리사뿐 아니라, 나탄, 스마야, 아히야, 미카야, 이사야, 여예언자 훌다도 큰 권위를 지닌 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킨 기적들(특히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들) 못지않게 그들의 정치적 행적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나탄은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며(1열왕 1,11-17), 엘리야는 하자엘을 아람의 임금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기름 부으라는 명령을 받는다(1열왕 19,15 이하. 그리고 2열왕 9,1-3; 8,11-13 참조). 죽음의 신탁을 전하여 임금과 그 집안의 파멸을 선언하는 것도 예언자들의 몫이다. 아히야 예언자와 예로보암 임금(1열왕 14,10-11), 엘리야 예언자와 아합 임금의(1열왕 21,21-24)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이 밖에 이사야는 바빌론 임금의 승리를 예고한다(2열왕 20,14-19). 그런가 하면 예언자들이 적대국과 싸우는 이스라엘 임금의 승리를 알려 주거나(엘리사: 2열왕 7,1; 13,17-19. 이사야: 2열왕 19), 군사 행동에 개입하기도 한다(무명의 예언자: 1열왕 20,13-14. 미카야: 1열왕 22,19-28. 엘리사: 2열왕 3,9-19; 6,8─7,20).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에 얽힌 이야기에서 스마야 예언자는 동족 간의 전쟁을 막는 자로 나타난다(스마야: 1열왕 12,22-24).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아합 임금 앞에서, 임금이 포도밭 주인 나봇의 조상 대대로 이어 오는 권리를 짓밟았다고 비난한다(1열왕 21,3-17 이하).

이 모든 경우에 예언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면서 그분께 순종할 것을 호소하고, 주님께서 충성하는 이들을 보호하시리라는 약속도 선언한다.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과 규정을 존중하도록 하려는 예언자들의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이끌어 낸 법전이 발견되었을 때, 여예언자 훌다가 한 역할이 그 좋은 예이다(2열왕 22,14-20). 이처럼 열왕기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종교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윤리와 정치 영역에서도 탁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이런 영역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한 분 “임금님”께 속하기 때문이다(이사 6,5; 44,6; 즈카 14,16. 시편 ‘입문’ 4의 “찬양 시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