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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1. 제목과 저자와 저작 시기

지혜서에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내용상으로는 유다교에서 ‘현인’ 그 자체로 여겨졌던 이임금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전에는 이 책을 ‘솔로몬의 지혜’라고 불렀다. 그러나 솔로몬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것은 이 작품의 저작 당시에 흔히 이용되었던 문학적 방법이다. 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권위 아래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혜서는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유다교 문헌들과 관련이 있는 작품으로서, 무명의 어떤 저자가 그리스 말로 쓴 것이다.

저작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특별히 이 책에서 사용되는 어휘, 그리고 당시 이집트에 살던 유다인들이 동등한 시민권을 주장한 사실을 시사하는 표현(19,16) 등에서 제시되는 단서들을 바탕으로 저작 시기를 대충이나마 잡아 볼 수 있다. 곧 위로는 기원전 5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밑으로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부터 시작되는 로마 제국 시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단 한 번에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작 작업이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11,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집트 탈출에 관한 숙고는, 기원전 20년경에 출생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인 ‘모세의 생애’와 수많은 유사점을 드러낸다. 지혜서와 ‘모세의 생애’가 똑같이 일종의 교화적 성경 해설인 미드라쉬 가운데 하나를 이용하였다고 해도, 이 두 저자는 시간상 서로 많이 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2. 저자와 저작의 통일성

지혜서를 처음 읽어 가다 보면 그 문체와 주제의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우선 성경의 시를 모방한 문체가 사용되지만, 특히 11,4에서부터는 문장이 점점 길어져 운율 있는 산문에 가까워진다. 또한 6─10장에서는 ‘지혜’의 창조적이고 섭리적인 역할이 강조되는 반면에, 그 다음부터는 ‘지혜’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학자들은 지혜서의 저자가 여럿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제시한 가설 가운데에서 두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5장은 본디 히브리 말로 쓰였는데 다음 부분을 저술한 저자가 그리스 말로 옮겼다는 것이다. 둘째, 지혜서 전체가 처음부터 그리스 말로 쓰이기는 하였지만, 11─19장은 그 앞부분의 저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 손에 저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저자의 단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지는 추세이다. 이 책이 전체적으로 동일한 문화와 동일한 문학적 인격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두 가지 방식이 지속적으로 이용됨을 볼 수 있다.

1) 대조 또는 비교

예컨대 의인들의 영원한 생명과 악인들의 헛된 삶, 덕의 불모성과 악의 다산성, 이스라엘인들의 운명과 이집트인들의 운명 등이 대비된다.

2) 사고의 점진적 전개

저자는 연속적 터치 기법을 이용한다. 예컨대 이 책의 앞부분에서(1,11-13.16) 제기되는 죽음이라는 주제는 이후 여러 번에 걸쳐 되풀이되며 발전된다(2,20.24; 3,2-3; 4,7-14 등). 저자는 이 주제가 지니는 내용의 풍요성을 바탕으로 때로는 육체적 죽음을, 때로는 영적 죽음을, 또 때로는 둘 다를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그의 사고는, 다른 주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조직적인 요약을 피해 가는 듯하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낱말들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진귀한 어휘를 사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또 수많은 구문 형태나 다양한 수사학적 표현들을 부단히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 용어에 부여된 생소한 의미, 또(우리말에서는 자주 생략하기도하는) ‘그리고’, ‘그러나’, ‘왜냐하면’, ‘그것은바로’등 접속어의 단조로운 반복도 들 수 있다.

3. 구조와 내용

지혜서는 서로 다른 상황과 관심을 반영하는 세 개의 대단원으로 나눌 수 있다.

1)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운명(1,1─5,23)

이 단원에서는 의인들의 운명과 그들을 박해하는 악인들의 운명이 대조된다. 이 첫 단원의 목적은 유다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곧 그들이 겪는 여러 가지 시련은 장차 내세에서 받을 영광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다인들에게 죽어 없어지지 않는 정의를 실천하라고 권면한다(1,1-15). 물론 물질주의에 빠져 탈선한 악인들은 의인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박해한다(1,16─2,20).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면서, 하느님께서 순수한 영혼들을 위하여 불사불멸을 준비해 놓으셨고 지혜의 적들은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2,21─3,12). 자식을 많이 낳으면서도 행실이 무도한 여자는 징벌만 받는다. 반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면서도 덕성스러운 여자는 찬미를 받아 마땅하다(3,13─4,6). 의인들은 더러 때 이른 죽음을 맞는 반면에 악인들은 오래 살 수도 있는데, 악인들이 오래 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긍정적 의미도 갖지 않는다. 악인들의 장수와 의인들의 단명으로 이 두 부류의 인생이 뒤바뀔 위험은 없다. 악인들은 심판을 받고, 의인들은 하느님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그때에 가서 후회해 본들 소용이 없다(4,7─5,14). 의인들은 영원히 살면서, 심판 뒤에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5,15-23).

2) 지혜 찬가(6,1─11,4)

이 찬가는 솔로몬이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임금의 이름이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사실 지혜서의 저자는 고유 명사의 사용을 피한다(10,6의 펜타폴리스[다섯 성읍], 10,18과 19,7의 ‘홍해’만이 예외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지혜’가 베푸는 가르침에 마음을 열라고 다른 임금들에게 권고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유다인이 아닌 군주들, 또 그들을 통하여 이교도 지식인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듯하다. 이렇게 임금들에게 권유한 다음(6,1-11), 솔로몬은 사람들이 알고 실천해야 하는 신비스러운 실체인 ‘지혜’를 소개한다(6,12-21). 이어서 그는 ‘지혜’의 본성과 기원을 밝힌다(6,22-25). 솔로몬이 인간적 조건에 얽매여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또 ‘지혜’가 그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주었으므로(7,1-14), 그가 그러한 일을 할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는 또 모든 지식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간청하고 나서(7,15-22ㄱ), ‘지혜’의 본성을 점진적으로 서술한다(7,22ㄴ─8,1). ‘지혜’는 솔로몬에게 나중에 함께 살게될 이상적인 배우자이기도 하다(8,2-16). 그러나 이러한 친밀성은 하느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8,17-21). 그래서 솔로몬은 임금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혜’가 도움을 베풀고 또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를 다시 올린다(9,1-12). 지혜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또 그러기에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9,13-18). 창조 때부터 이집트 탈출에 이르기까지, 지혜는 창세기가 전하는 모든 일화를 통하여 자기가 역사의 주인임을 드러낸다(10,1─11,4).

3) 이집트 탈출에 관한 숙고(11,5─19,22)

이 마지막 단원은 앞의 것들보다 더 길 뿐만 아니라 특히 복잡하다. 탈출기의 재앙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인들의 운명과 이집트인들의 운명을 연이어 비교하는 것이 이 단원의 주된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비교들은 자주 본론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와 우상 숭배에 관한 논쟁으로 중단된다. 아무튼 엄격한 대조와 냉혹한 어조는 저자가 유다교의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누가되었든 자기의 공동체를 괴롭히는 모든자를 경계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가 따라가는 원칙을 제시한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적들을 벌하시려고 사용하시는 도구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혜택을 가져다주는 데에 이용된다는 것이다(11,5). 이 원칙에 따라 이집트인들을 징벌하는 물(피로 변한 나일강)이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의 갈증을 풀어 준다고 말한다(11,4-14).

이어서 저자는 동물숭배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곧바로 하느님께서는 알맞게 벌하시고 또 참회로 이끄시려고 벌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11,15─12,2).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전망에서 가나안인들이 전멸당하기 전에 말벌들이 수행한 기능을 해석한다(12,3-11). 어쨌든 하느님께서는 더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신다. 그분께서 징벌을 알맞게 내리신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이스라엘인들에게 득이 되라는 것이다(12,12-22). 동물숭배에 관한 논쟁은 풍자적인 말로 계속된다(12,23-27). 그다음에 저자는 우상 숭배의 두 가지 큰 형태를 구분해 낸다. 곧 자연을 신격화하는 것과(13,1-9)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경배하는 것이다(13,10─14,11). 교활한 방식으로 도입된 이 둘째 형태의 우상 숭배는(14,12-21) 사람들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부패시켰다(14,22-31). 이스라엘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민족은 진흙으로 신을 빚어내는 도공 자신처럼 우상 숭배에 떨어지고 만다(15,1-19). 저자는 16장에서 다시 이스라엘인들과 이집트인들을 비교하기 시작하는데, 여섯 가지를 연이어 비교한다. 곧 메추라기 기적과 개구리 재앙(16,1-4), 이스라엘인들의 상처를 고친 구리 뱀과 이집트인들을 물어 죽인 치명적인 해충들(16,5-14), 만나와 우박(16,15-29), 암흑의 재앙과 불기둥(17,1─18,4), 이집트 맏아들들의 죽음과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겪은 죽음(18,5-25),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홍해에 빠져 죽은 일과 이스라엘인들이 그곳을 마른 발로 건넌 일이다(19,1-12). 이집트인들은 이방인들을 소돔 주민보다 더 거칠게 대하여 벌을 받은 것이다(19,13-17).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집트 탈출의 기적들을 다시 한번 거론하면서, 그것들을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에 관한 학설과 관련짓는다(19,18-21). 지혜서는 이어서 찬미가 형태로 된 짧은 결론과 함께 끝을 맺는다(19,22).

4. 지혜서에 영향을 끼친 문헌들

지혜서의 저자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할 줄 아는 시인이며 영성의 대가이다. 그는 많은 자료를 이용하면서도 그것들을 그냥 되풀이하지 않고 자기 작품 속으로 부드럽게 융합시킨다. 구약 성경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한다. 지혜서에는 그 이전 성경 본문들에서 따온 인용구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이 작품은 기존의 성경 본문들에 관한 깊은 지식과 묵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그 가운데에서 창세기, 탈출기, 이사야서, 잠언, 집회서 등이 돋보이는데, 저자는 성경을 그리스 말 역본인 칠십인역으로 읽은 듯하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지혜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종의 교화적 성경 해설로서 전설적인 부연 설명들을 폭넓게 덧붙이는 어떤 미드라쉬의 영향을 분별해 내기도 한다.

헬레니즘의 문학과 문화도 마찬가지로 지혜서에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자기의 식견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시, 수사학, 과학, 특히 철학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예외적으로 호메로스나 플라톤의 작품이 거의 말 그대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접 인용이나 단순한 시사로 그친다.

저자가 이전의 성경 본문들과 동시에 그리스 문헌들에서도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세계의 한 특징이다. 그곳에서는 성서적 주제들과 개념들이 모든 신학적 숙고의 바탕을 이룬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리스적 관념의 힘을 빌려 점검되고 해석되며 발전되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여기에서 지혜서의 독자들이 두 부류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히브리말을 거의 또는 전혀 모를뿐더러 자기처럼 헬레니즘 문화에 젖어 있는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 독자들이 있다. 저자는 이들에게 유다교 지혜의 절대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고자 한다. 이 두 부류의 독자들이 이스라엘의 특수한 유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고, 저자는 그리스적 관념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다른 문명권에서 빌려 온 요소들을 쇄신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유다교 전통의 충실한 증인이 되려는 뜻만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철학을 분명히 단죄하고, 천체에 따른 결정론이나 디오니소스제(祭)와 같은 비의(秘儀)적 종교 의식에 단호히 반대한다.

5. 지혜서의 가르침

이 책은 중요한 두 가지 사항, 곧 의인들의 영혼의 불사불멸과 ‘지혜’의 의인화와 관련하여 지혜 문학에 더욱 새롭고 자세한 해설을 보탠다.

1) 의인들의 불사불멸

저자는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의인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리하여 그는 욥기에서 제기된 괴로운 질문에 대답한다. 지상에서 박해를 받은 덕성스러운 사람들의 영혼은 하느님 곁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심판 날에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2,22; 3,1-9; 4,7-14; 5,15-23). 영혼의 우위성과 불사불멸성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저자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플라톤의 이원론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그에게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단일한 존재이다. 그리고 다니 12,2-3과 2마카 7,9에서 확언되는 육신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이 지혜서의 몇몇 구절에 전제된다(특히 3,7과 5,15-16 참조). 전형적인 두 그리스 말이 지혜서에서 의인들이 장차 받을 보상에 관한 생각을 요약한다. 곧 ‘불사’(1,15; 3,4; 4,1; 8,17; 15,3)와 ‘불멸’(2,23; 6,18-19)이다. 저자는 의인들의 생명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그리고 영광스럽게 지속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반대로 악인들은 그들의 못된 행실로써 지금부터 벌써 ‘불사’를 포기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다. 지혜서의 저자에게 불사불멸이란 누구에게나 구분 없이 적용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의인들의 영혼과만 결부된다.

2)‘ 지혜’의 의인화

‘지혜’를 의인화함으로써 지혜서의 저자는 잠언 1─9장의 본문을 이어받아 나름대로 발전시킨다. 그는 지혜의 창조적 활동과(7,12.22; 8,5-6) 우주적 기능을 강조한다(7,24; 8,1). 그리스인들에게 혜는 무엇보다도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과 관조에 이르기 위한 도구였다.그러나 저자에게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그래서 지혜는 하느님의 뜻과 의향을 드러낸다(9,13.17). 또 지혜는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면서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관련된다(8,3-4). 지혜는 세상을 자비롭게 다스리며(8,1), 특별히 의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영혼 안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해 준다(1,4; 7,27). 끝으로 지혜는 모든 지식과 인식의 원천이다(7,16-21).

이러한 ‘지혜’의 의인화로 미묘한 질문이 제기된다. 이 의인화가 단순히 문학적, 더 정확히 말해서 시적 작업의 방식인가, 아니면 저자가 지혜를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중개자 구실을 하는 어떤 실체, 곧 신적 인격체로 생각하는 것인가? 지혜서 본문에서는 명백한 답을 얻지 못한다. ‘지혜’는 하느님의 활동의 기본적인 면들을 드러내는 존재로, 그리고 동시에 그 활동을 담당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지혜가 하느님의 ‘영’과 이루는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1,6; 7,7.22-23; 9,17), 어떤 학자들은 지혜를 성령의 예형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근거를 대기가 어렵다. ‘지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모든 ‘계시’와 동일시되는 경향을 지닌다. 더 나은 표현을 쓰자면, 지혜는 “만물을 훌륭히 통솔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시킨다고 할 수 있다(8,1). 이러한 의미에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정점에 다다 르는 하느님 은혜의 활동을 예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여러 번에 걸쳐 전개되는 축약된 다른 가르침들을 찾아볼 수 있다.

- 전통에서 이어받아 독창적으로 펼쳐 가는 ‘고통받는 의인’의 주제(2,10-20).

- 군주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권력을 행사할 때에 가지는 특별한 책임(6,1-11).

- 특히 영적인 것과 관련된 인간 인식의 한계에 관한 숙고(9,13-18).

- 피조물에서부터 출발하여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을 인식하는 능력(13,1-9).

- 옛 성경 이야기들과 관련된 하느님의 섭리적 통치에 관한 독창적 숙고(11,21─12,1; 12,15-18).

-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된 아론 대사제의 중개 역할(18,20-25).

지혜서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종교에 대한 충실성과 함께 이 종교를 활성화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지는 유다교 문헌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에 나오는 몇몇 가르침이 신약 성경에 다시 나오고(로마 1,20-23; 콜로 1,12.15.17; 히브 1,2-3 참조) 교부들에게도 널리 인용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