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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모세 오경에 이어지는 여호수아기는 우리 앞에 이스라엘 역사의 한 시대를 펼쳐 보인다. 이 시대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에 첫발을 디디고,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시기이다.

유다교에서는 구약 성경을 ‘율법서’(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나눈다. 예언서는 다시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크게 갈라지는데, 여호수아기는 이 ‘전기 예언서’라는 큰 단락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1. 여호수아기의 구조와 내용

여호수아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1─12장과 13─21장).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기에 각각 맺음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 개의 장이(22; 23; 24장) 이어진다.

1) 가나안 땅의 정복(1─12장).

먼저 1장은 책 전체의 서론 구실을 한다. 2장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 정복을 시작하기 위해서 여호수아가 예리코에 정탐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정탐대는 라합의 환대를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리코 쪽으로 요르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친다(3─4장). 그리고 광야를 건너오면서 할례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인들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 이어 약속의 땅에서 처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5장). 예리코의 함락과(6장) 아이의 점령으로(8장) 이제 중부 팔레스티나에서부터 정복 사업이 개시된다. 그 와중에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른 아칸의 죄악이 드러나기도 한다(7장). 그 뒤에 여호수아가 기브온인들과 평화 조약을 맺게 되는데(9장),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임금을 주축으로 한 반이스라엘 연합 세력이 형성되고, 이어 기브온에서 전투가 벌어진다(10장). 북부 팔레스티나에서도 하초르 임금이 이끄는 새로운 연합군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스라엘군은 이 군대도 물리치고 하초르 성읍을 불살라 버린다(11장). 12장은 이스라엘이 정복한 지방들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2) 가나안 땅의 분배(13─21장).

이 부분은 먼저 열두 지파에게 영토를 나누어 준 일을 자세히 전해 준다(13─19장). 그다음,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이가 피신할 수 있는 도피 성읍들과(20장) 레위인들이 살 성읍들이 열거된다(21장).

3) 맺음말(22; 23; 24장).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에 참여하였던 요르단 동쪽 지파들을(1,12-16) 그들의 상속 재산이 있는 요르단 건너편으로 돌려보낸다(22,1-6). 이 첫 번째 맺음말에 일화 하나가 덧붙여진다(22,7-34). 곧 이 요르단 쪽 지파들이 제단을 세우는데, 그것이 열두 지파 사이의 일치를 엄숙하게 재확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23장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담고 있다.

23장의 내용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듯한 24장은, 여호수아가 ‘스켐 집회’를 소집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만 섬긴다는 내용의 계약을 백성과 함께 맺었다고 전한다.

2. 여호수아

이렇게 여호수아기의 구조와 내용을 요약해 볼 때, 이 책 전체 이야기를 주도해 가는 한 인물이 부각된다. 곧 에프라임 지파 소속으로(민수 13,8.16) 눈의 아들인 여호수아이다.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를 뜻하는 이 이름은 그가 일생을 통해서 보여 주게 될 일들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다(특히 23,14 참조). 달리 말하면, 이 이름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예언이다. 곧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된 땅을 정복했다는 것은 정치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영적 해방으로서, 그 참의미가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마태 1,21 참조). 성경의 어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그의 이름을 호세아에서 여호수아로 바꾸어 주는데(민수 13,16), 이름이 바뀌었음은 운명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성경에 보면 다른 이들도 이 이름을 지녔는데, 신약 성경 시대에 와서 그리스 말을 하는 유다인들에게는 이 이름이 예수가 된다(히브 4,8 참조). 이러한 사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구세주로서 하신 행동과 여호수아가 자기 백성을 안식의 땅으로 이끈 행동을 쉽게 연관시킬 수 있게 해 준다.

모세 오경에서는 여호수아가 늘 모세 곁에 있으면서도 그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탈출 24,13에 따르면, 그는 모세와 함께 하느님의 산으로 올라간다. 그는 또 만남의 천막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탈출 33,11), 때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탈출 17,8-16). 그러나 여호수아는 항상 모세의 “젊은 시종”일 뿐이다. 모세가 요르단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여호수아는 드디어 모세에게서 하느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중대한 사명을 받게 된다(민수 27,18-23; 신명 31,7-8).

3. 여호수아기의 저작 과정과 의도

여호수아기를 단순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대로 기술하는 보고서로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현대의 성서학은 이 책이 근거로 한 전승들, 곧 그러한 과정을 담고 있는 전승들의 중요성을 점점 더 크게 인식한다. 그렇지만 여호수아기가 이야기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때와(기원전 13세기 말경) 이 책이 최종적으로 편집된 시기 사이에는 여러 세기의 간격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연맹 전체가 가나안 땅 전부를 정복하였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의 땅 가나안은 다윗 시대에(기원전 10세기) 와서야 완전히 정복된다. 그 이전에는, 여호수아기 자체도 자주 시사하듯이, 가나안인들이 전멸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주로 산악 지방만 내주었을 뿐, 계속 평야 지대에 살면서 이스라엘인들과 공존하였다(15,63; 16,10; 17,12.18 참조). 여호수아가 죽을 때, 가나안 땅 전체가 이미 열두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정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13─23장, 특히 13,1-7 참조).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어떤 전망에서 읽어야 하는가? 여호수아기는 어떠한 의도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가?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2─10장이 벤야민과 에프라임, 곧 중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있던 두 지파에 고유한 전승이면서, 동시에 길갈, 그리고 이어서 베텔 성소와 관련된 전승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기의 이 첫 부분은 기원전 10세기 말에 편집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여호수아가 백성 전체를 지휘한다. 이 백성은 아직 뚜렷한 체제를 갖춘 집단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집트 탈출에 참여한 몇몇 지파의 전사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군사적인 면이 계속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그 너머로는 경신례적인 차원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의 자료 자체가 전례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갈대 바다 횡단과 짝을 이루는 요르단 횡단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3─4장). 이스라엘인들은 성전 전례에 참석하기 전에 하듯이 자신들을 정결하게 한 다음, 하느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을 앞세우고 요르단강을 건넌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사실을,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계약 궤를 모시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전례 행렬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5장에는 할례에 이어서 가나안 땅의 소출을 가지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명백히 전례적 순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신명기를 저술한 ‘학파’에 속하면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최근의(기원전 7-6세기) 체험에 비추어 묵상하려는 편집자가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해서, 그때까지 형성된 여호수아기의 자료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묵상은, 이전 작품에 가한 수많은 손질 외에도, 특히 1장과 23장에 나오는 긴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로써 가나안 땅의 정복은 이제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일로 제시된다(10,28-39 참조). 그리고 이 책에서는 요르단 동쪽 지파들이 계속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가 위협받는 시대에 그것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1,12-16; 12,1-6; 13,8-32; 22,1-6 참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이스라엘에게 나뉘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위하여 투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다른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과 공존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충성이 언제든지 훼손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기에 이 충성에 관한 생생한 관심이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곧 그들을 모두 “완전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망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6,17.21; 11,12.14).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조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자 하는 하나의 이론적인 설명이다.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피할 수 없던 우상 숭배의 위험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난 뒤의 생각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투영시킨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면보다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이유로, 신명기계 편집 작업의 손질을 훨씬 덜 받은 13─19장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개개의 경계선과 각 지파에 속한 성읍 명단이 나열된다. 우리에게는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부분은 이스라엘 지파 연맹의 구성원들이 가나안 땅을 나누어 받은 전통적 배분에 관한 아주 값진 문헌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다윗 왕조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왕조 시대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후대의 첨가문들도 있다.

여호수아기의 편집 과정에서 신명기계의 편집 이외에 사제계의 영향도 있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몇몇 장에서는 엘아자르 사제와 그의 아들 피느하스의 역할이 여호수아의 역할을 대신하는 데까지 이르는데(14,1; 19,51; 21,1; 22,13.30.32),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실로의 성소와 연관된다.

4. 여호수아기와 역사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편집 작업을 염두에 두면, 여호수아기의 역사적 관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수아 혼자 지휘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사료들을 그러한 방향으로 체계화시킨 데에서 기인한다. 실제의 사건들은 그러한 단순화-체계화 이전에 상당히 복잡하게 복합적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베텔의 정복은 여호수아기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판관기에 가서야 다루어진다(1,22-26). 스켐을 빼앗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이 성읍의 원주민과 평화적인 협정을 맺고 그곳에 자리 잡았음을 드러내는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헤브론과 드비르의 함락이 여호수아가 한 일로 나오지만(10,36-39), 다른 곳에서는 칼렙이 헤브론을 정복하고, 오트니엘이 드비르를 정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15,13-14.17; 판관 1,11-13).

이 시기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서 가끔 고고학적 증거들이 원용되기도 하였다. 사실 고고학의 발굴로, 기원전 1200년경에 끝난 후기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팔레스티나의 몇몇 도시가 격렬한 방식으로 파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시기를 대략 기원전 1230년경으로 잡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이 이 땅을 정복하면서 그렇게 파괴한 것이라고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떠한 통일 왕국도 이루지 않았던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 사이에 지속된 적대적 경쟁 관계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느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이스라엘인들이 아닌 다른 침략자들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모습만 보여 줄 뿐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을 지목하여 설명하지 않는 고고학적인 논증을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고학자들이 기원전 13세기 말경에 파괴되었다고 확신하는 하초르와 같은 성읍은, 여호 11,10-11에 나오듯이 실제로 이스라엘인들이 불살라 파괴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반면에 예리코의 경우, 이 시대와 관련된 고고학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예리코 함락을 이야기하는 6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살펴보게 된다. 그러면 복잡한 과정과 복합적 구성을 드러내는 이 6장이 예리코라는 성읍의 포위 공격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가 아님이 드러난다. 6장의 이야기는 일종의 ‘종교 의식’,‘전쟁 전례’로 제시되는 것이다(6장 첫째 소제목 각주 참조). 성경 본문이 우리가 제기하는 의문이나 질문에 항상 시원한 대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5. 약속의 땅

이 책의 중심인물인 여호수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이다. 모세 오경에서 이 땅은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대상이었다. 그 약속이 이제 여호수아기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이들은 이 책까지 포함해서 ‘오경’이 아니라 ‘육경’이라고 말한다. 땅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진실성과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충성이 실현되는 곳이다. 땅은 또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가시적 보증이다. 그리고 이 보증은 생기 없는 상징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피조물들과 만나고 삶을 통해서 그것들을 성화시켜 나가라고 사람들을 부르는, 생생하고 간절한 초대이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시고 또 모세를 통해 새롭게 하신 약속의 실현이다. 그래서 수많은 지명이 나열될 때에 그 가운데 서서 무미건조하게 관망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신 상속 재산을 꼼꼼히 기술하는 성경 저자의 기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약속의 땅은 이미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늘 새롭게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호수아기는 말한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이 제거되지 않고 늘 존재한다. 이 긴장은 또한 하느님 백성의 실존을 구성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