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성경 > 신명기

입문

1. 가교 역할을 하는 책

신명기는 이집트 탈출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이어 간다. 곧 민수기가 끝나는 대목에서 시작하여 모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신명기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더 이상 역사적 사건의 전개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다른 활동도 찾아볼 수 없다. 백성은 처음부터 요르단강 건너편, 모압 땅에 머물고 있으며(1,5), 모세가 죽는 곳도 같은 장소이다(34,5).

신명기의 통일성과 일관성은 이 책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백성에게 들려주는 말들로 소개되는 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그래서 이 책의 히브리 말 이름을 옮기면 ‘이것은 -말이다.’이다).

신명기의 문체는 그 통일성과 독창성을 잘 보여 준다.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비슷한 표현들이 자주 되풀이되는데, 예를 들면, ‘주님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을 차지하여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선택하시는 곳에서 주님을 찾아라.’,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준 계명과 율법과 규정들을 지켜라.’,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겨라.’ 등이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등에 들어 있는 설교와 묵상들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문학적 유사성은 신명기와 그 뒤에 이어 나오는 책들을 연결시켜 준다. 결국 신명기를 탄생시킨 학파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편집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곧 신명기계 학파이다. 한편, 전승은 신명기와 그 앞에 나오는 책들도(여기에서도 신명기계의 문체가 나타난다.) 연결시켜, 죽기 전에 “온 이스라엘”에게 말을 하는 모세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하나의 커다란 문학 작품을 형성한다. 이러한 연유로 신명기 전체가(넓게는 오경 전체까지도) 모세의 유언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2. 두 번째 법

12─26장은 법전의 규정들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신명기’(申命記), 곧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이 ‘두 번째 법’(17,18 참조)이라고 붙인 책 이름이 설명된다. 두 번째라는 말은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법과(계약의 책, 탈출 20,22─23,19) 비교해서 붙여진 것이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행한 설교의 중심부에서 두 번째 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차 들어가서 평화로이 살게 될 땅에서 지켜야 할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법은 다른 한편으로 ‘헌법’처럼 보이기도 한다(16,18─18,22 참조).

이미 교부들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지만, 중요한 발견을 근거로, 신명기가 처음 기록된 시기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2열왕 22장은 요시야 임금 제18년에, 곧 기원전 622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서”(2열왕 22,8.11) 또는 “계약 책”(2열왕 23,2.21)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 담긴 경고에 충격을 받은 임금은 온 백성을 불러 모아 장엄하게 계약을 갱신하고 종교 개혁을 선포한다. 그런데 이 개혁의 내용이(2열왕 23,4-20) 신명기의 기본 요구와 일치한다. 곧 지방에 있는 모든 성소를 파괴하고 모든 예배를 예루살렘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신명 12). 따라서 요시야가 선포한 문서는 원래의 짧은 신명기 원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요시야는 사마리아가 멸망한 후에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정착한 북 왕국 출신 백성 가운데 한 여예언자에게 이 책을 ‘선포하기’ 전에 확인하게 한다. 이 사실에서 예언자들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특히 호세아의 신학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이보다 1세기 이전 히즈키야 임금이 행한 예배의 정화 역시 예루살렘으로 예배가 집중됨을 보여 주고 있는데(2열왕 18,4.22), 이 예배 정화의 기초가 되는 문서는 없다. 따라서 신명기의 초본은 아마도 히즈키야의 개혁이, 다시 우상 숭배를 번성하게 한 므나쎄의 치명적 통치 아래 실패로 돌아간 시기인(2열왕 21) 기원전 7세기 전반부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옛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 전승을 근거로 하여, 종교 혼합주의와 사회적 무질서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혁가들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성향은 예언 전승의 특징이다. 또한 신명기의 수사학적 특성에서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서기관’ 계층, 또는 요시야의 정책을 이어받아 개혁적 사상을 지닌 고관들의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

신명기는 이렇게 ‘작품화’된다.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백성에게 말을 하는 모세의 입을 통하여, 이 땅에서 살기 위한 조건들, 곧 북 왕국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왕정 시기 동안 체험했던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개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명기 학파 내에서는 이러한 성찰을 계속하여, 유배라는 사건에 직면했을 때에 신명기가 제정한 법의 이상적인 특성을 재차 강조하게 된다.

3. 계약

신명기의 설교 대상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다(1,1; 34,12). 때로는 이스라엘 자손 개개인을, 때로는 주님의 대화 상대로 불리는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6,4-5 또는 9,1). 모세의 설교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어떤 때는 “너”로, 또 어떤 때는 “너희”로 부르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편집사에 관한 여러 가지 가정들이 생겨났다. 이 사실을 설교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설교를 행하는 시기나 내용에 따라 특별히 개인을(“너”), 또는 모든 이를 다 같이(“너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특성 때문에 한 단락 안에서조차 “너”와 “너희”가 혼용되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 우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 “너희”로 통일해 번역하였다. ‘일러두기’ 참조). 이러한 호칭은 31,9-13이 알려 주는 것처럼, 온 이스라엘이 율법이 봉독되는 것을 듣기 위하여 모이는 전례의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대목들도 분명히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뿌리박고 있는 전례를 암시한다(예를 들어 27,11-14). 이것은 (2열왕 23,1-3에서처럼) 온 백성이 모여 율법의 선포를 듣고, 그것을 실천하기로 다짐하는 계약 갱신의 전례일 것이다.

이러한 전례적 흔적에서 신명기의 저자들이 “온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기초와 근본이 되는 계약의 체험에 대단히 큰 중요성을 부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이라고 하는 개념은 고대 근동의 중대한 계약 체결 전승에 관한 법적, 정치적, 신학적 고찰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법전에 들어 있는 법들과 법전의 틀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주변 문명국의 법률 문서들과 중요한 접촉을 가졌음을 찾아볼 수 있다. 신명기 전체의 구조는 이 문서들에 나타난 순서와 대단히 비슷하다. 역사의 회고와 권고(1─11장), 법률의 선포(12─26장), 상호 간의 약속(26,16-19), 축복과 저주의 선언을(28장) 포함한 약속과 위협(27,1─30,18), 증인의 채택(30,19-20)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평야에서 모세가 했던 설교는 이 계약의 체험을 “오늘”이라고 하는 양식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첫 번째 계약, 곧 홍해를 건넌 뒤에 시나이에서 맺은 계약과 밀접히 연결되며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는 주제를 되풀이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계약을 체결하면서 찾는 구체적인 자세는 종살이에서 해방된 기억에 뿌리박고 있으며, 이것이 십계명에 나오는 안식일의 동기(5,12-15), 빚을 탕감해 주고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는 법(15,1-18), 또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규정들과(24,17-22) 같은 백성의 구체적인 행동의 근거가 된다. 두 번째 계약은 무엇보다도 이집트 탈출의 기억에 뿌리박고 있다. 이 계약은 완고하고 잘 잊어버리는 마음이 장애가 되더라도 자유와 생명을 위한 선택의 조건들을 제시한다(30장). ‘새’ 계약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예레미야서와는(예레 31,31-34) 달리,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삶 안에서 주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하는 전례를 거행할 것을 규정한다(31장).

4. 신명기의 완성과 내용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탄생한 신명기는 오랜 동안의 발전을 거쳐 마침내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구성은 아주 분명하다.

이른바 ‘문서고’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전체적 구성을 살펴보면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각 부분은 “이것은 모세가 …… 한 말이다.”(1,1), “이것이 모세가 …… 내놓은 율법이다.”(4,44), “이것은 …… 계약의 말씀이다.”(28,69), “이것은 …… 축복이다.”(33,1)라는 표현으로 구분된다. 이 표현에서 신명기의 특징이 근본적으로 ‘말’, 곧 모세의 말, 율법의 말, 계약의 말, 축복의 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네 장은 백성의 광야 여정을 다시 들려주며(민수기 참조) 계약 갱신의 거행을 위한 역사적 서언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명기계 역사가(신명 1─2열왕 25) 시작된다.

법전은 책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12,1─26,16), ‘법률들과 관습들’의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전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오래된 첫 부분은(12,2─16,17) 단일성이라는 특징 아래, 유일한 성소(12장), 한 분이신 하느님(13장), 하느님과의 유일한 관계(14장) 등을 다루며 축제에 관한 규정으로(16장) 끝난다. 둘째 부분은(16,18─18,22) 제반 제도들을(판관직, 왕직, 사제직, 예언자직) 다룬다. 셋째 부분은(19,1─26,16) 계약 법전의 규정들을 재차 다루며 이 규정들을 십계명의 금령들에 비추어 배열하고 있다.

법전에 앞서서는 무엇보다 십계명이 주어진 사실이 회상되며(5장), 이어서 계약 체험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일련의 권고가 나온다. 계명들을 지키고 주님을 섬기며 사랑하라는 것이다. 법전의 뒤에는 상호간의 다짐(26,17-19), 오래된 전례(27장), 축복과 저주의 선언으로 끝나는 협정(28장), 계약 갱신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권고(29─30장) 등 여러 가지 계약 양식을 종합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님을 ‘이스라엘의 바위’라고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와(32장)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내리는 축복(33장과 창세 49장 참조), 그리고 이 뒤에 나오는 모세의 죽음에 대한 전승으로(34장) 신명기가 끝나고 오경도 끝을 맺는다.

5. 신명기의 신학

비록 신명기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사료들이 섞여(전례 사료, 법률 사료) 형성되어 왔지만, 신명기계 학파의 작업으로서 과거를 종합하고 미래를 위한 이상을 제시하는 뚜렷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신명기가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주요한 신학적 노선을 찾아낼 수 있다. 계약 체험의 중심부에는 근본적인 호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6,4-5). 하느님의 신비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이 백성의 선택,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는 실천 등, 신명기의 중심 주제들이 바로 여기에 요약되어 있는 것이다.

1)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6,4). 이 말씀 안에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자 중심이 되는 기본 내용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주님은, 특히 늦게 기록된 신명기 본문에서는 인류의 창조주로 소개되시기도 하지만(4,32),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백성의 역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분으로 인식된다. 신명기는 이러한 역사에 관해서 몇몇 일화밖에 들려주지 않지만, 설교 내용 안에서 언제나 중요한 과거의 일들이 언급된다. 성조들에게 내린 약속(4,31), 이집트 탈출(7,19), 호렙산에서의 율법 부여(5,5), 광야의 횡단(8,2), 그리고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다(1,25; 4,40). 모세의 연설에서는 미래에 이루어질 일로 나타나는 이 마지막 단계가, 신명기 저자에게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명심해야 할 하느님의 행동의 일부이다(4,9). 이 사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섬기는 하느님의 권능을 똑똑히 보았다. 아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과 당신의 행동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29,3). 그래서 먼 옛날부터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삶 안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회고하는 ‘신앙 고백’이 신명기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명시적으로 표현되는 이 ‘신앙 고백’(6,21-23; 11,2-6; 26,5-9)은 본문 곳곳에 암시되어 있으며, 바로 여기에 우상 숭배를 비판하고 주님만을 섬기라는 호소의 근거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건들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큰 표지이다. 또 다른 표지는 주님의 대변인을 통해서 주어진다. 모세는 이 대변인 역할을 유일하게 수행한 인물이다(34,10.11). 그리고 모세가 선포한 법이 그 역할을 영원히 계속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지속적인 생활 안에서는 예언자들이(18,15), 그리고 예언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레위인들이(33,8-11) 주님의 증인이자 해석자이며, 그분과 사람들 사이의 중개자이다. 이러한 표지들 덕택에,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자기들을 사랑하시어(7,8) 자기들과 계약을 맺으신(26,17) 분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유일한 분이시다. 신명기는 예언자들의 유산을 이어받아 이러한 신학적 확신을 갖게 되고, 계약의 이상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계약의 양식은 빌려 쓴다. 호세아의 신학을 받아들여(호세 1─3 참조) 주님의 유일성을 혼인의 비유를 들어 이해하고 있는데, 계약에서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6,5) 가장 중요하다.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하듯이 질투하시는 분이시다(5,9). 엘리야 전승의 상속자이기도 한 신명기는 주님과만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유를 그분의 유일성에서 찾는다. 첫째이자 가장 큰 계명은 주님만을 섬기는 일이며(5,7-10), 결코 다른 신들에게 이끌려서는 안 된다. 백성의 삶 전체를 좌우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신명기는 처음으로 유일한 성소의 원칙을 도입하였다(12,5). 이 유일한 성소에서 이스라엘 회중은(5,22) 호렙에서처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분산시키는 모든 요소가 제거될 수 있다(6,4). 율법 역시 일치의 표지이다. 신명기는 “규정과 법규”를 길게 나열하는 가운데 율법과 계명에 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1,5; 5,31; 6,1). 율법은 온 백성이 정성을 다하여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을 명시한다. 결국 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밖에 없는 성소, 하나뿐인 율법, 한 백성 등을 강조하는 신명기의 일신론은 이스라엘인들이 영위하는 삶 전체의 유일 개념으로 귀착된다.

2)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주님께서 자기를 ‘당신의 것’(7,6; 28,10)으로, 당신의 ‘거룩한 백성’(7,6)으로 삼으셨음을, 그리고 자기가 보잘것없음에도(7,7) 은혜로 채워 주시고(9,5), 자기를 아들처럼 대해 주셨음을 안다(1,31; 8,5).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읽고 다시 해석하면서 선택의 신학이 생겨났으며, 각 세대에 아니 모든 세대에 해당되는 하느님의 사랑에(11,2; 29,14) 대한 인식도 형성되었다. 백성은 자기들의 하느님께서 “오늘”(1,10; 30,15)도 자기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은 당연히 온 백성과 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능동적인 응답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백성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10,16; 30,6), 곧 친밀한 계약 관계를 맺는 것이다. 주변의 이민족들, 그리고 그들의 신들과 일체의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4,19; 17,3). 그리하여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6,8), 말씀을 듣고 지키며, 세세한 조항에 이르기까지 율법에 충실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주님을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6,5). 그렇게 하여 의로워질 수 있고(6,25), 자기의 삶으로 신앙을 증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구원의 사건들을 되새기게 된다. 이스라엘의 순종은 결국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결실을 이끌어 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5,15). 이스라엘이 햇곡식을 예물로 바쳐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비옥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26,5-10). 축제들을 지내야 하는 이유는 이집트 탈출 때를 기억하기 위함이다(16,1.3.12). 안식일도 마찬가지다(5,15). 이스라엘이 가난한 이들을 존중해야 하고(10,18), 누구든지, 심지어 이집트인이라 할지라도 억압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23,18; 24,18-22), 그들도 이집트에서 억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이렇게 이집트 탈출을 상기시킴으로써, 공동체에서 이방인을 제외시키려는 편협한 삶의 태도를 없애려고 노력한다(14,21; 15,3; 24,21; 26,12).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삶 전체는 그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결국 자신들의 구원 사건들을 기리는 기념 그 자체가 된다.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라는 법은 그 가운데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삼 년마다 바쳐야 하는 십일조(14,28), 빚의 탕감(15,1), 종의 해방(15,12-18), 남의 포도나 곡식에 관한(23,25-26) 규정들을 읽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임금 역시 가능한 대로 가난한 이처럼 살아야 한다(17,16-17). 이러한 가르침은 특별히 신명기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 편집될 때에 삽입된다. 백성의 일치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힘을 더해 가는 부유층과 나날이 더 비참해지는 서민층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공동의 유산으로 지닌 과거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모두 형제였음을 상기시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애쓰라는 명령을 내리는 일이 시급하였던 것이다(15,4). 그러나 신명기의 첫 저자들은 낙관적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호소에 응답하고 실생활에서도 구원의 사건들을 재현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12,28; 26,16-19 참조).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생활에 극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하나는 충성과 행복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배반과 불행의 길이다(11,27-28; 28장). 여기에서 온 미래를 내걸고 전적인 선택을 하여야 한다(30,15-20).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이집트 탈출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배반하였고, 모세는 줄곧 백성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청을 드려야 했다. 이스라엘은 자기 죄악으로 하느님의 분노를 일으켰으므로 멸망해야 마땅하지만(9,7),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진실성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선택의 요구를 받는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볼 때, 구원 역사의 다른 시기들은 어떠하였는가? 신명기의 저자들은 이미 이 상황의 극적인 특성을 예고하였다. 모든 환상이 사라질 때가 다가온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선택하여 생명을 얻을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고, 또 스스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유배 이후에 신명기 저자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며(28,15; 29,21), 주님께 ‘돌아오기’ 위한 조건들을 신학적으로 고찰한다(30장).

역사와 죄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신명기는 희망을 일으키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죄가 마지막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백성을 회개시켜 용서를 받게 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30,3). 이러한 기대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실패한 자유의 비극을 겪었음에도, 마음의 회개와 생명을 위한 선택이 또다시 가능해지는 것이다.

6. 성경에서 차지하는 신명기의 위치

신명기는 성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유다인들의 전승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아, 들어라!(셔마 이스라엘)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6,4)라는 기본 신앙 고백을 발견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6,5)는 가장 큰 계명을 이끌어 내셨다. 그러나 이것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신명기 전승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독특한 정신과 역사적, 신학적 사상의 힘으로 구약 성경의 다른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신명기와 예레미야서를 비교해 보면 용어와 주제상의 유사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곧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잊지 마라.’(6,10-13; 예레 2,4-7), ‘마음의 할례’(10,16; 예레 4,4 참조)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신명기의 사상이 신명기를 넘어서서 신명기계 학파 안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주는 신명기계 저자들의 전형적인 주제들이다. 역사서들 전반에 걸쳐 역사의 중요 단계들을 알려 주는 설교들과 반성의 문체가 신명기의 문체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 거대한 역사서들에 대한 신명기계 학파의 영향을 드러내 준다. 신명기와 마찬가지로 이 역사서들도 특별히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의 계명들에 대한 순종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두 번째 법’, 곧 율법과 신앙에 관하여 계약의 체험을 바탕으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신명기는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명으로 이끄는 길과 죽음으로 이끄는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주제는(30장) 시편에서처럼 후대 유다인들의 윤리 가르침뿐만 아니라 복음서에도 계속 나온다(마태 7,13-14). 신명기의 일관된 관심사이며 유다인 공동체 생활의 누룩이 되는, 가난한 형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성이 복음서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요한 복음이 주로 설교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나 사랑의 신학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명기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7. 오늘날의 신명기

신명기가 21세기의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신명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법령들은 우리 시대와는 다른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다. 신명기의 신념과 그 신념을 표현하는 양식이 후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선택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하느님의 유일성, 또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어떠한가?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믿음과 은총과 성령의 나라를 세우신 뒤로는 율법이 무효가 되지 않았는가?(로마 3,28; 6,14; 갈라 3,23; 5,18 참조)

여기에서 다시 한번, 신명기가 계명들의 모음집이기 전에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순종, 곧 하느님 백성의 삶과 역사 안에서 일어난 그분의 활동에 대한 묵상이라는 점을 말해 둘 필요가 있다. 믿는 이들의 실존을 지배하는 것은 인식, 곧 현존의 발견과 선물에 대한 응답이라는 이중의 인식이다.

계명들 자체도 더 이상 우리에게 문자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비추어 줄 수 있게 표현된 것들이다. 사실, 이 모든 가르침은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에서 참된 충성을 찾으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이 윤리의 근본에 관하여 질문을 제기하는 오늘날, 신명기는 밖에서 부과되는 법이 아니라, 묵상과 마음의 결단 안에 뿌리박고 있는 ‘법’의 본보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명쾌하고 성숙한 윤리이며 참된 지혜인(4,5-8)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는 윤리이다(16,20). 이 윤리는 하느님의 정의를 믿는 것이다(10,18).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역사 안에서이기 때문에, 구원 사건 안에서 매일의 행동 지침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사랑의 실천 윤리를 가르쳐 준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모든 분야,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 적용된다. 정치에서 시작하여 보건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다른 형제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존중에 이르기까지(20,19; 22,7) 주님에 대한 사랑과 관련이 없는 것이 없다. 개개의 상황은 모두 우리에게 주님을 위하든지 거스르든지 선택을 하게 하며, 이 선택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받을 심판은 우리의 행위,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또한 하느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순종을 토대로 맺어진 계약 관계의 무상성과 진지성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조하며 들려준다. 사실, 신명기의 법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채워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선택을 받고 또 가나안 땅에서 상속 재산을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결과를 일러 준다. 동시에 신명기의 저자들은 진지하게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다. 법의 선포와 함께 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약속되고,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예고된다. 그것은 계약의 법이 백성 앞에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내놓기 때문이다(30,15-20). 신명기는 이렇게 계약 관계의 두 가지 특성, 곧 무상성과 진지성 사이에 균형을 유지한다. 이 균형은 지키기가 힘든 것이다. 이미 후기 유다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에서도 종종 공로의 윤리나 도덕 지상주의에 빠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성경의 모든 증언 가운데에서 신명기는 신학적으로 성숙하고 균형 잡히고 살아 있는 윤리를 재발견하는 데에 더없이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