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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1. 레위기의 위치와 역할

탈출기는 만남의 천막 곧 성막의 설치에(탈출 40,16-33) 이어 곧바로, 주님께서 구름 속에 내려오시어 그곳을 당신의 거처로 받아들이신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탈출 40,34-38).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다음, 만남의 천막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레위기의1) 첫 말마디(1,1) 역시 주님께서 이곳을 당신의 성소(聖所)로 받아들이셨음을 나름대로 드러낸다. 탈출기에서는 주님께서 특히 시나이산 위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반면에, 이제는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는 것이다(1,1).2)

모두 27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규칙과 법규들’을 내리신다. 사람이 이것들을 실천함으로써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18,5).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이 “천막”을 잘 이용하여, 그것이 당신과의 진정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종교 의식에 관한 실수나(1─10장) 육체적인 부정(11─16장), 또는 도덕적인 불충이(17─26장)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생명의 통교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므로,3) 모든 경우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경신례 전체가 아니라 몇몇 부분만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경신례 때 바친 기도와 노래는 시편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예언자들과(예레 7,3-11; 호세 6,6 등) 현자들은(집회 34,18─35,10 등) 이스라엘 백성에게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레위기가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신자들의 의식 속에 심어 주고자 하는 것은 어떤 외적인 예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통교가 인간의 궁극적인 진리라는 사실인 것이다.

2. 레위기의 출처와 내용

레위기는 출처가 서로 다른 요소들, 그 가운데 몇몇은 유배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요소들을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열하고 있으나, 경전으로서의 지금의 레위기는 유배 시대 이후 편집 작업의 결과이다. 임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예언 현상 또한 사라져 가면서 사제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하던 시대에, 예루살렘의 사제들은 ‘제2성전’의 필요성에 따라 여러 법과 예식서들을 수집하고 보충하였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단원에는(1─7장), 특정한 경우에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또는 드려야 하는 제사의 여러 범주가 소개된다. 이것은 제사 봉헌자의 의무 규정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사제직과 관련하여 사제의 의무 규정을 상기시키는 예식들을 성문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제사와 의식의 기원이라든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여기저기 내포되어 있는 뜻을 가려내고 이것저것을 비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들에서 제사의 원칙을 빌려 왔고, 그러면서도 그 예식의 틀을 자기들의 세계관과 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따라 새로운 내용으로 채웠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둘째 단원에는(8─10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사제직에 오를 때 펼쳐진 의식이 서술된다. 이 세 장은 탈출기가 29장에서 사제들의 성별에 대하여 언급한 바를 이어 나간다. 특히 이 단원에서는 사제들이 수행하는 중개의 기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성성(聖性)이 요구된다. 그들이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에서 중개자로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단원에는(11─16장), 사람을 하느님과 접촉할 수 없게 하는 부정(不淨), 구체적으로는 성소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부정의 여러 가지 범주들이 열거된다. 곧, 음식과 관련한 부정, 해산에 따른 여인의 부정, 나병을 비롯한 악성 피부병, 남자나 여자의 성과 관련된 부정 등이다. 16장은 레위기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속죄일”(히브리 말로, 욤 키푸르)의 장엄한 전례가 서술된다.

넷째 단원은 17─26장을 포함하는데, 이 장들은 일반적으로 ‘성결법’(聖潔法), 또는 가끔 ‘성결법전’이라고도 불린다. 이 단원은 26장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으로 맺고 있는데, 그 문학 유형은 신명 28장과 동일하며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9,2. 그리고 20,26; 21,8 참조)라는 후렴으로 조율되어 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20,7). 이렇게 백성의 성화는 성결법의 핵심을 이루며 그 법 조항들을 뛰어넘고 있다. 여러 가지 규정과 경계 사항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는데, 짐승과 제물을 잡아 바칠 때 피를 존중하여 먹지 말고(17장), 부부관계 이외의 성적 관계와 자식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행위와 짐승과 교접하는 행위를 거부하며(18장), 하느님과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19장). 또한 매우 중대한 죄를 짓는 경우에 받는 형벌(20장) 등을 언급한다. 한편 몇몇 조항들은 사제(21장), 제물(22장), 안식일과 축일 준수(23장), 성소와 그 유지(24장), 끝으로 안식년과 희년(25장)에 관계된다.

레위기 전체의 부록이라 할 수 있는 27장은 하느님께 사람이나 물건을 바치겠다고 서원하고, 돈으로 봉헌하거나 또는 그 서원을 무를 때 서원자가 내야 하는 값을 제시한다.

3. 레위기에 나오는 주요 개념들

문체가 법률적이어서 때때로 매우 단조롭고 반복적인 레위기는 읽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다 적지 않은 전문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 동시에 히브리적 사고방식의 몇몇 특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제도에 대해서도 알아 두어야 하겠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사제들을 오늘날 그리스도교 사제의 모습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 명칭이 같다고 해서 이 두 실체가 동일하지는 않다. 다음의 간략한 용어 해설은 레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용어들은 레위기를 크게 네 단원으로 나누는 구분법에 따라 제사, 사제직, 정결과 부정, 성성 순으로 다루고, 첫째 단원에 나오는 제사에 관한 전문 용어들은 가나다순으로 배열한다.

1) 제사와 제물

모든 종교에서 제사는 신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이루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종교사에서는 근본적으로 세 가지 관점에서 제사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다. 첫째는 신에게 바치는 ‘예물’로서의 제사이고, 둘째는 신과의 ‘통교’를 이루는 방도로서의 제사이며, 끝으로 ‘속죄’(贖罪)와 신이 베푸는 용서를 목표로 하는 제사이다. 이스라엘의 제사들은 이 세 범주에 따라 쉽게 구분된다.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맏물 봉헌은 ‘예물’로, 친교 제물은 ‘통교’로, 그리고 속죄 제물과 보상 제물은 ‘속죄’로 분류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정이 바뀌면서 이와 관련된 변화가 나타난다. 곧, 예루살렘의 파괴와 유배라는 엄청난 재앙에 대한 숙고를 거듭하면서, 이스라엘은 죄악의 힘과 용서의 필요성에 대하여 더욱 생생한 의식을 지니게 된다. 레위기가 피를 통한 사죄(赦罪)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곡식 제물을 희생 제물의 보조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면서,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지니는 화해의 구실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1) 가장 거룩한 것: ‘거룩한 것들의 거룩한 것’으로 직역할 수 있는 히브리 말 코데쉬 코다쉼은 흔히 장소적인 의미, 특히 “지성소”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1열왕 6,16 참조) 성소 내부의 깊숙한 곳을 가리켰는데, 레위기의 편집자는 이 표현을 하느님께 봉헌되어 세속적 용도로는 쓰일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데에만 사용한다. 곧, 이 편집자에게 “가장 거룩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제들의 몫으로만 유보되는 속죄 제물과 곡식 제물의 일부분만을 뜻한다.

(2) 거룩한 것: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코데쉬는 사람, 장소, 시간, 물건이나 제물 등 여러 가지를 가리키거나 특징짓는다. 아래 “4) 성성(聖性)” 참조.

(3) 곡식 제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민하는 본디 ‘예물’과 ‘통교’의 범주에 속하는 제물 전체를 가리켰다(창세 4,3-5; 1사무 2,17). 그러다 후대에 와서는 동물을 잡아서 바치는 것 이외의 제물을 뜻하게 되었으며, ‘예물’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아래 “(8) 예물” 참조.

(4) 기념 제물: 곡식 제물 가운데, 제단 위에서 불에 태워 바치는 부분을 가리킨다. 이 말의 뜻에 대해서는 2,2 각주 참조.

(5) 번제물(燔祭物):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올라는 본디 ‘(제단 위에서, 또는 연기로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제사는 사실상 가죽을 뺀(7,8 참조) 짐승 전체를 제단 위에서 불에 살라 바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굽다, 사르다’를 뜻하는 ‘번’(燔)자를 붙여 번제물이라 한다. 이렇게 거의 통째로 하느님께 바쳤기 때문에 이 번제물은 ‘예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사는 고대 그리스, 그리고 기원전 2000년대 중엽까지 팔레스티나 북부 지방에 존재했던 우가리트 왕국에서 바쳐졌지만, 다른 셈족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6) 보상 제물: 레위기 밖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이 제물은 하느님께 속한 것을 실수로 취하여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물로서 보상 또는 상환 차원에서 본디 값어치의 오분의 일을 더해서 바치게 된다. 희생 제물의 피와 함께 바치는 이 예식은 속죄 제사와는 다르다(7,2 참조). 이 두 제사 또는 제물은 이스라엘의 독창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이나 동시대의 어느 곳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것을 찾아볼 수 없다.

(7) 속죄 제물: 이 제물은 고의적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실수로 지은 죄나(4,2 각주 참조) 부정한 상태로(14,19 참조) 말미암아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이 제물은 (사제나 군주, 백성의 지도자와 같은) 봉헌자의 자질이나 그가 처리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제사에서는 피가 가장 큰 구실을 하는데, 그것은 피가 죄의 용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굳기름은 친교 제물에서처럼 제단 위에서 불태운다. 살코기는 일반적으로 사제들의 몫이 되지만, 죄를 지은 봉헌자가 사제이거나 백성 전체일 경우에는 예외이다. 속죄를 받으려고 희생 제물을 바치면서 동시에 그 제물에서 혜택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8) 예물: 위 “(3) 곡식 제물” 참조.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히브리 말로 코르반이라는 이 용어는, 피 흘리는 제물이든 아니든 하느님께 올리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1,2). 이 용어는 말 그대로는 하느님 또는 제단에 ‘가까이 가는 것’을 뜻하지만, 점차 하느님께 바치는 모든 예물(민수 7), 나아가 하느님께 봉헌된 물건까지 가리키게 된다(마르 7,11).

(9) 친교 제물: ‘화목 제물’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물의 굳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태워 하느님께 올려지고, 살코기 일부는 사제들의 몫이 되며, 나머지는 봉헌한 사람과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그래서 이 제사는 다른 제사들과는 달리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벌이는 잔치의 성격을 지닌다. 레위기에서는 예식 자체보다는, 봉헌자가 어떤 의향으로 제물을 바치는지에 따라 제물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수도 있다). 곧, 감사 또는 찬미의 제물(7,12-15), 서원 제물(7,16), 그리고 자원 제물이다(7,16). 친교 제물은 번제물처럼 우가리트와 고대 그리스에서는 볼 수 있지만, 다른 셈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10) 향: 만남의 천막과 성전의 지성소 안에는 분향 제단이 놓여 있었는데(4,7), 그 위에 특별히 제조된 향을 피웠다(탈출 30,34와 각주 참조). 이 낱말과 같은 어근에서 파생한 것으로 레위기에서 자주 쓰이는 ‘살라 바치다’라는 동사가 있는데(1,9 등), 이는 번제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사르는 것을 뜻한다. 이런 낱말의 사용은 하느님께서 ‘향기로운 연기’로 당신께 봉헌되는 제물을 매우 즐거이 받으신다고 여긴 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11) 향기: 이 표현은 흔히 화제물(火祭物)이라는 표현과(아래 “(12) 화제물” 참조) 밀접히 병행하여 쓰이며, 경우에 따라 화제물로 규정할 수 있는 제물과 묶어서 생각할 수도 있다(속죄 예식을 언급하는 4,31 참조). 이 표현은 본디 바빌론의 대홍수 이야기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제물을 바치는 장면에서 쓰인 아카드 말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창세 8,21과 각주 참조). 이는 호의적인 하느님과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봉헌자의 갈망을 드러낸다.

(12) 화제물(火祭物): 히브리 말로 이쉐라 불리는 이 표현은 제단 위에서 불에 태워 하느님께 바치는 모든 것을 뜻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넓게는 이런 식으로 거행되는 제사에서 바치는 제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표현이 속죄를 위한 제사에서 불에 태워 바친 부분들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표현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히브리 말에서는 그 자음과 모음이 ‘불’을 뜻하는 에쉬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화제’(火祭)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2) 사제직

레위기에 나타나는 사제직의 모습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전개된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영향 등 다양한 영향들의 결과이다. 고대에는 의식을 거행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함으로써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중개했던 사제 기능이 어떤 특정 전문 계급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이스라엘의 가장들은 파스카 제사 때에 직접 짐승을 잡아 바쳤다(탈출 12,3-7).

그러다 예컨대 1사무 1─3장의 실로, 판관 18,19-20.27-31의 단과 같이 경신례가 거행되는 곳을 중심으로 성소 업무를 담당하고 전통과 의식을 보존하는 사제 집안이 생겨나게 된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차독이라는 사제 집안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집안은 임금이며 사제였던 멜키체덱과(창세 14,17-20) 관련을 가졌을 수도 있다. 예루살렘이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중요성을 더해 가면서 다른 성소의 많은 사제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게 된다. 기원전 620년에 이르러서는 유다 왕국의 요시야 임금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경신례의 중심 도시로 결정하자, 지방에 남아 있던 사제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이렇게 여러 부류의 사제들이 모여들자,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과 새로 온 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2열왕 23,8-9).

이미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절에, 그 기원이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두 사제 집안, 곧 에브야타르와 차독 집안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일어난다. 이 대결은 차독 집안이 예루살렘 사제직의 경쟁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밀어내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1열왕 2,26-27). 그러다 유배 시대에, 레위 지파에 속하는 아론을 첫 대사제이며 모든 사제직의 출발점으로 삼고 위 두 집안을 족보상 아론과 관련지음으로써, 이 두 집안의 갈등은 모두 끝나게 된다(1역대 24,1-6).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뒤(기원전 538년) 왕정 제도가 복구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직자들은 백성의 운명을 떠맡기에 이르며, ‘대사제’로 불리는 사람이 점점 임금과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왕관과 비슷한 것을 쓰고(8,9), 유배 이전의 임금처럼 기름부음을 받는다(8,12). 그러다 아리스토불로스 1세(기원전 104-103년) 때에는 그때까지 함축적이었던 것이 분명하게 표출되어, 대사제가 결국 임금의 칭호를 갖게 된다.

사제직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발전을 거쳐 오면서 변하지 않고 남은 것, 곧 중개자라는 사제의 특성이다. 사제는 축성을 통해 거룩함의 영역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권한을 지닌 중개자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정결과 부정

부정(不淨)의 개념은, 종교 역사가들이 서로 매우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발견해 내는 ‘터부’ 또는 ‘금기’라는 개념과 상당히 가깝다. 이 개념은 인간이 안정된 규칙들로 둘러싸이고, 알지 못하는 두려운 존재로부터 보호받는 삶을 영위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사람들은 온갖 예외적인 것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이거나 비관습적인 것, 그리고 모든 변화와 변천을 하나의 위협 또는 전염성을 지닌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것들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을 보호하거나 또는 몸을 정결케 함으로써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부정은 단순히 어떤 범법 행위가 아니다. 사실 출산이라든가 죽은 이를 염습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의무들도 당사자를 어쩔 수 없는 부정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러한 상태는 경신례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써 그 부정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부정한데도 정결의 상태에 있는 양 행동할 때, 비로소 범법 행위가 성립된다(15,31).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죄를 특징지으면서 이 부정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문자 그대로의 도덕을 거스르는 행동, 곧 죄까지도 포함된다(에제 22,7 참조). 사실 죄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가장 큰 부정인 것이다.

그런데 레위 11─15장에 나오는 금령들이 이처럼 성문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계명들이 더 이상 자발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레위기는 이것들을 계약의 하느님, 곧 생명의 주님과 관련짓는다(11,44-45). 바로 주님을 위하여 사람은 정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이러한 금령들의 가치에 대한 여러 논쟁을 우리에게 증언해 준다(마르 7,1-23; 사도 10; 1코린 6,12-20).

4) 성성(聖性)

성성 또는 거룩함은 레위기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에게서 성성은 종교 의식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개념으로서의 정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성은 근본적으로 초월하시는 하느님, 절대적으로 다르시고 비교될 수 없으며 파악될 수 없는 하느님, 인간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절대 타자(他者)이신 하느님의 불가사의한 모든 신비를 가리킨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룩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도덕적인 본질을 규정하기보다는, 그분께서 인간이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모든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분이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초월적인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께 접근하도록 허락하신다(23장). 이것은 그분 성성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게 해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19장).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성을 떨치시면서, 인간이 당신의 그 성성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9,2).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면서 이 백성이 다른 백성들과는 다르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당신과 통교를 이룰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 놓으시고 구별하시며 다른 백성들과 갈라놓으신다. 하느님의 이 선택은 이스라엘이 수행해야 하는 도덕적인 의무를 끌어들인다. 이 의무는 선택된 백성이 지니게 된 성성의 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 백성이 하느님과 이루는 생명의 통교 안에 머물고 이를 통해서 다른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성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성화시켜 준다.

그런데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표현하는 모든 것 또한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역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는데도 세속적인 행동을 삼가야 하는 사제들이 우선 거룩한 존재이다(21─22장).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성별된 날로서 세속적인 일을 멈추어야 하는 주님의 날, 곧 안식일 같은 시간과(탈출 20,8-11), 세속적인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성소와 같은 장소(사도 21,28; 히브 9,7-8), 또한 세속적인 용도로는 쓸 수 없고 오직 성별 의식에만 사용할 수 있는 성유와 같은 물건도 거룩한 것이다(탈출 30,23-33).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성이라는 개념은 세 가지 근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모든 속된 것으로부터의 분리, 하느님과의 통교를 이루기 위한 성별,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그분께 봉사하겠다는 다짐이다.

4. 레위기의 의의

레위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후대에 나타났기 때문에 구약 성경의 다른 책들에 현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또한 이 책은 예컨대 제사나 사제 임명과 같은 종교 생활의 기술적인 면만을 서술하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서도 그렇게 자주 인용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들은 무엇보다도 ‘성결법’(17─26장)에 나오는 도덕적인 법규들이다. 그러나 어떤 책의 영향을 인용 횟수로만 헤아릴 수는 없다. 바로 이것이, 비록 간접적이라 할지라도 레위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다.

사실 신약 성경이 예수님의 죽음과 그 온전한 의미를 해설하려고 하는 배경에는, 레위기가 성문화한 규정들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된 경신례가 있다. 또한 레위기가 없었다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서간 구절이나 히브리서의 논거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결여되었을 것이다(히브리서 ‘입문’ 참조).

레위기는 오늘날 구약 성경의 책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덜 읽는 책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은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효력을 상실한 옛 관행들만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아직도 이런 ‘효력을 상실한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고유의 예식을 만들어 내려고, 이웃 민족들에게서 종교적 몸짓을 취하거나 또는 새로운 몸짓을 창안해 내면서, 자기들이 거행하는 경신례를 자기들이 고백하는 신앙과 일치시키도록 노력하였다. 경신례는 거룩한 하느님과 거룩한 백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화해와 통교를 표현하고 또한 실현시켜야 한다. 예언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바로 이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투쟁하였던 것이다. 축제와 의식과 몸짓은 사람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이를 위한 실행 방법에 따라 시대와 장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동으로 거행하는 축제를 통하여 자기들이 고백하는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는 원의와, 그때 사용되는 몸짓 언어의 의미는 그대로 존속한다. 예언자들이 잘못 거행되는 경신례에 혹독하게 비판을 가했다는 사실도, 성전을 상실한 유다교와 그리스도의 희생이 지니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가치를 인식한 그리스도교가 레위기에 서술된 의식을 더 이상 거행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도, 레위기가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를 지워 버리지 못한다. 레위기가 경전의 일부를 이룸은, 종교적인 몸짓으로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성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통교를 당신의 말씀 안에서 드러내시고 또한 당신의 삶으로 실현시키실 분의 오심을 예고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주석
1

‘레위기’라는 이름은 이 책이 레위 사제 지파의 구성원들, 곧 ‘사제들’의 책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히브리 말 책 이름은 단순히 이 책의 첫 글자를 따서 와이크라(그분께서 부르셨다.)로 되어 있다. 이 책 전체가 사제계 전승에 속한다(‘오경 입문’ 참조).

2

그러나 레위기의 몇몇 구절에서는 주님께서 계속 시나이산 위에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25,1; 26,46; 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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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에서는 경신례와 사제직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근본적인 중개 역할을 한다.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임금이나 예언자에게서 이 중개의 역할을 찾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