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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창세기는 오경의 첫 번째 책이다(‘오경 입문’ 참조). 이 책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세상과 인류와 이스라엘 백성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창세기는 토라(율법)의 일부를 이루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조상들의 족보와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성경은 세상과 인간의 창조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역사를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성경은 다른 종교들도 제기하는 물음들, 곧 우주의 기원과 인간을 위한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에 관한 문제들을 공유한다. 창세기의 첫 열한 개 장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들로 꼽히는 천지 창조,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홍수, 바벨탑 설화를 담고 있다. 성경을 여는 이 이야기들은 창세기 다음 부분에서 펼쳐지는 성조사의 단순한 서막이 아니라, 인간과 그 소명, 인간의 나약성,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이다.

오경에서 창세기는 탈출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펼쳐질 광범위한 단원,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의 증인으로 세우시려고 하느님께서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어떻게 한 민족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는지를 설명하는 대단원의 시작을 이룬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모세가 이집트 종살이에서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는 역사를 기술하는 탈출기에서 시작된다. 그 이전 성조들은 가나안 땅에서 별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창세기의 마지막 역사, 곧 요셉의 이야기는 오경의 다음 책들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이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의 성조들이 어떤 연유로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에 정착하게 되었는지가 밝혀진다. 오경의 핵심 주제인 해방과 함께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 준 행위에 관한 이야기의 서막 역할을 하는 성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는 나름대로 문학적 단일성을 갖추고 있으며 오경의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체를 보여 준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관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창조주이시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지만 이 선택이 보편적 구원 신학과 상치되는 것은 아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일 뿐만 아니라 아랍 지파들의 선조이며, 이스라엘과 유다의 이웃으로서 요르단 동쪽에 위치한 모압족과 암몬족의 혈족이다. 따라서 토라의 다른 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족보들이 창세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경의 모든 책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는 단숨에 저술된 책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된 문학적인 작업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때로는 고통스러운 체험들을 반영하며, 아울러 변천하는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재독되고 재해석된 살아 있는 전승을 제시한다. 현재의 창세기 본문은, 세상과 당신 백성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현실 속에서 증언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읽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느님의 개입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본문의 여러 편집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는데, 이러한 편집 과정을 거쳤어도 그 기초가 된 최초의 밑그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계시들과 더불어 풍요로움을 더해 갔다. 이에 대한 창세기의 대표적 예로는, 성조들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 했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세 개의 장에서(12; 20; 26장) 전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기에 독자는 이 세 장을 상호 비교하고 이를 현실화할 사명 앞에 선다.

1. 구성과 원전

창세기는 통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곧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게 된 인류의 시작을 다루는 1─11장과 성조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12─50장이다. 두 번째 부분은 다시 아브라함과(12─25장), 이사악, 특히 야곱과(26─36장), 끝으로 요셉에(37─50장) 관한 세 개의 이야기로 세분된다. 서로 다른 이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전해진 것은 아니다. 야곱에 관한 이야기는 북 왕국에서 전승되었을 것이며(이 이야기가 언급하는 주요 지역들이 북 왕국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헤브론에 정착한 아브라함의 역사는 남 왕국, 곧 유다의 역사임이 분명해 보인다. 성조들에 관한 서로 다른 전승이 수집되고 끝내 기원사와(1─11장) 결합된 데에는 여러 편집자들의 연속적인 개입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누가 제일 먼저 창세기에 수록된 전승들을 수집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창세기의 ‘사제계’ 문헌이 구성될 때(‘오경 입문’ 참조) 이 책 속에 담긴 주제 대부분이 모아졌으리라 짐작할 수는 있다. 사제계 출신으로서 기원전 515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다음 작품을 하나하나 저술해 나간 저자들은 창세기의 서로 다른 전승들에 일관성을 부여했으며, 이를 위해 창세기를 세상 창조에서 야곱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속적 단위로 편성하는 가운데 “-의 족보(또는, ‘생성’, ‘자손들’)”나 “-의 역사”와 같은 표제들을 삽입시켜 나갔다. [표제는 우리말 성경의 소제목과는 다르며, 대개 그 대목의 첫 구절에 적혀 있다.] 이 표제들은 2,4(하늘과 땅의 창조), 5,1(아담의 족보), 6,9(노아의 역사), 10,1과 10,32(노아 아들들의 족보, 노아 자손들), 11,10(셈의 족보), 11,27(아브라함의 역사를 이끌어 들이는, 테라의 족보), 25,12-13(이스마엘의 족보), 25,19(야곱의 역사를 이끌어 들이는, 이사악의 족보), 36,1.9(에사우의 족보), 37,2(열두 지파의 역사를 이끌어 들이는, 야곱의 족보)에서 발견된다. 족보와 설화를 번갈아 반복하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사제계 저자들은 성조들의 역사를 인류 역사의 일부로 소개하며 창세기의 일관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하느님은 이 역사 안에서 줄곧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이처럼 창세기의 상호 연관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도, 부분 부분에서 서로 다른 차이를 말끔히 지우지는 못했다.

2. 기원사(1─11장)

구약 성경은 천지 창조와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설화, 곧 사제계 설화와, 저자를 정확하게 간파하기는 힘드나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사제계 이전의 설화를 보여 준다. 우선 창조에 관한 두 설화 사이에는 차이점이 너무나 분명하다. 1,1─2,3에(사제계 전승) 따르면 남녀가 동시에 창조되고 이들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불리고 있는 반면, 2,4─3,24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먼저 아담을 창조하시고 동물들에게 생명을 넣어 주신 다음 마지막으로 아담의 갈비뼈를 이용하여 하와를 지으신다. 옛 기원 설화는 아마도 서로 짝을 이루는 세 가지 이야기, 곧 남녀의 창조와 낙원에서의 추방(2─3장), 카인-아벨과 인류의 첫 살인(4장), 노아의 홍수와 그와 맺은 계약을(6─9장) 토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설화들은 인류 역사의 연대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신화’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설화들은 인류에 관한 주요 문제들, 예를 들어 인류의 기원, 성, 죽음, 자유, 폭력, 세상의 종말 등과 같은 문제에 해답을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성경 저자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이웃 민족들과 이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전승들을 주저 없이 받아들여 인용하고 있다. 19세기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창세기의 첫 장들과 고대 근동 지방,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서정적이며 지혜 문학적인 문헌들 사이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8장과 매우 가까운 문헌들로는 에누마 엘리쉬라 불리는 마르둑 신의 바빌론 창조 설화, 영웅 길가메시의 모험담 속에 합쳐진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 창세기처럼 창조 설화와 홍수 설화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아트라 하시스(‘뛰어난 현자’)의 서사시가 있다. 세상의 기원에 관한 성경의 첫 전승들은 대략 기원전 7세기경 등장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연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성경 본문은,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인간 실존의 난제들을 숨김없이 기술하는 현실주의적 문체에서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성경 저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셨으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인간과 맺으신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에 이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하는 바벨탑 설화가 덧붙여진다. 이 설화는, 메소포타미아의 성읍 주민들이 그들의 신들을 숭배하려고 세운 거대한 탑들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나, 기원전 705년에 아시리아 임금 사르곤이 전개한 새 수도 건설 작업 또한 참조했을 것으로 본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이 작업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1,1─2,3의 사제계 창조 설화 역시 메소포타미아 전승들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그대로 본뜨지는 않는다. 성경의 첫 장에서 창조는 더 이상 메소포타미아의 설화들이 말하듯 창조주 하느님과 혼돈의 괴물 사이에 펼쳐진 전투의 결과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느님의 위업으로 기술되기 때문이다.

3. 성조사(12─50장)

창세기는 네 명의 선조들과 그 아내들, 곧 아브라함과 사라(12─25장), 이사악과 레베카(24─26장), 야곱과 레아와 라헬(27─36장), 끝으로 이집트 대사제의 딸 아스낫과 혼인한 요셉에(37─50장)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조들 가운데 이사악은 가장 쉽게 잊힐 수 있는 존재이다. 그에 대한 일화는 얼마 되지 않으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아브라함 이야기들과 병행을 이루는 것들이다. 이사악을 제외시킨다면 창세기는 세 유형의 선조들을 소개하게 된다. 우선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랍 종족들까지 포함하는 후손을 거느릴 것이기에 가장 탁월한 공동의 선조로 볼 수 있다. 다음 이스라엘의 선조로서 열두 지파의 아버지인 야곱이 있으며, 끝으로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 곧 디아스포라 유다교의 선조인 요셉이 있다. 특히 문학적인 차원에서 이 선조들 사이의 차이점들이 드러난다.

아브라함에 관한 전승들은 추정컨대 헤브론에서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조 아브라함이 마침내 정착한 곳이며 사라와 아브라함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모세 오경 이외의 작품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이 처음으로 명기되는 곳은 에제키엘서이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땅의 저 폐허에 사는 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아브라함은 혼자이면서도 이 땅을 차지하였는데, 우리는 수가 많다. 그러니 이 땅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소유로 주어진 것이다’”(에제 33,24). 바빌론 유배 시대(기원전 597-539년)의 상황을 반영하는 이 본문에 따르면 유배당하지 않은 잔류민들은 유배민들의 소유권 요청을 거슬러 토지 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에제 11,15 참조). 이 본문은 아브라함에 대해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이 인물이 잘 알려진 인물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아브라함에 대한 전승들이 에제키엘이 활동하던 기원전 6세기보다 더 오래된 것들임을 가리킨다.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하여 구전으로 (나아가 글로 기록되어) 전해지던 이야기들이 유다 왕국 시대에, 특히 성소 헤브론을 중심으로 이미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야곱에 관한 전승들은 북 왕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브라함 전승들보다 더 오래된 전승들일 것이다. 기원전 8세기 작품인 호세아서는, 청중들이 성조 야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창세기에서 읽을 수 있는 야곱의 구체적인 행동에 관한 주요 일화들을 알고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그는 모태에서 제 형을 속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하느님과 겨루었다. 그는 천사와 겨루어 이기자, 울면서 그에게 호의를 간청하였다. 그는 베텔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에서 그와 말씀하셨다. …… 야곱은 아람 땅으로 달아났다. 이스라엘은 아내를 얻으려고 종살이하고, 또 아내를 얻으려고 양 떼를 돌보았다”(호세 12,4-5.13). 이처럼 성조사를 부정적으로 요약하는 가운데 다음의 일화들을 암시하고 있다. 형 에사우에 대한 야곱의 속임수(25장과 27장), 하느님과 야곱의 씨름(32장), 베텔에서 하느님을 본 환시(28장), 라헬과 혼인하려는 여러 해의 노력(29장) 등이다. 호세아와 그의 청중들은 야곱 이야기를 대강 알고 있었다. 야곱의 행동이 설명해 주는 이스라엘의(32,29) 기원은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중심 세력 없이 부족과 씨족으로 이루어진 사회 조직을 말한다. 이렇게 야곱의 이야기는 왕정 시대 이전(기원전 이천 년대 말엽)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야곱의 역사에 관한 첫 일화는, 그의 장인 라반이 속해 있던 아람 종족과 구별되는 별개의 동일 종족을 무대에 등장시킨다. 따라서 야곱의 역사는, 물론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본디 스스로를 ‘야곱의 아들들’이라 불렀던 한 씨족의 전설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훗날 야곱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하면서(32,29) 전 이스라엘의 기원 설화로 발전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요셉에 관한 전승들은 독자들을 또 다른 세계, 곧 이집트로 이끈다. 흔히 사람들은 요셉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젊은 조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솔로몬 시대에 저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편 105편을 예외로 한다면, 창세기 37─50장 이외에 성경 어디에서도 요셉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비교적 후기에 저술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힘을 실어 준다. 이집트식 이름들에 대한 연구와 파라오 시대 이집트의 관습과 제도들에 대한 암시가 이를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요셉에 관한 소설은 페르시아 시대 이집트에 살던 유다인 공동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요셉은, 이민족들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진정한 유다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렇게 창세기는 디아스포라에 살고 있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은 전설적인 모든 조상들의 운명, 역사가가 보기에 너무나 힘겨운 운명을 함께 나눈 인물들이다. 성조 이야기들 가운데 어떤 이야기도 그들이 언제 그런 모험적인 행동을 보였는지 그 시기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성조들의 삶의 방식은 고대 근동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통해 지속되고 실증되어 온 방식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는 남녀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제들은 신앙인들은 물론 비신앙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4. 주제와 인물

다양한 주제들이 창세기를 수놓는다. 먼저 형제들 사이의 경쟁 관계라는 주제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카인과 아벨의 비극적인 설화에서(4장) 출발하여 이스마엘과 이사악, 에사우와 야곱, 끝으로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창세기 저자는 이처럼 한 가족 또는 한 공동체 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반복적인 문학 동기를 취한다. 이 주제는 카인과 아벨의 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형제 살해로 전개되지만, 50장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듯이 형제 사이의 화해로 마무리된다.

성조 이야기들은 또한 후손에 관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는다. 아브라함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가 수태 불가능한 여인임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기에 독자들은 이 집안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궁금증을 갖는다. 사라가 약속의 아들을 낳자 하느님께서는 이제 아브라함에게 그 아이를 직접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개입하시어 아이를 구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보장해 주신다. 이 주제는 속임수를 썼음에도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되는 야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끝으로 요셉 이야기는 열두 아들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발전하는 전이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는 탈출기 초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창세기는 풍부한 주제와 인물들을 담고 있다. 이 주제와 인물들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도 나올 뿐만 아니라, 유다교 전승은 물론 그리스도교 전승도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을 멈추지 않는다. 창세기는 창조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시편도 이 이야기를 노래하고(시편 8; 104) 이사야서 제2부 저자도 이를 되새긴다(이사 40 이하). 바오로 사도는 에덴동산에서 보인 아담의 태도를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비교한다(로마 5; 1코린 15). 아브라함은 모세에 이어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은 기원후 1세기의 유다 문헌들을 본떠서, 흔히 ‘선조’라 불린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저자에게 아브라함이 ‘선조’임은 물리적 족보를 기준으로 해서가 아니라, 그의 업적을 본받는 모든 사람들, 하느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큰 무리의 후손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모든 사람들의 선조라는 의미에서이다(로마 4; 요한 8).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사건은(22장) 유다교는 물론 그리스도교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유다교는 이사악 제물 봉헌을 유다 백성이 기나긴 역사를 통해 견뎌 내야 했던 모든 고난의 상징으로 해석했으나,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이 사건을 성금요일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세상 기원의 신비와 그 운명의 의미를 터득하기 위해서, 또 당신 백성의 선조들과 모든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개입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경의 첫 번째 책을 읽고 또 읽어 왔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아담과 하와는 섬세하면서도 실감나게 인간의 한계를 밝히면서 그들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노아는 또 주님의 마음에 들어 은총을 받고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이제 열거되는 성조들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아브라함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동시에 신앙인들의 선조로 모시는 인물로서 끝까지 자신을 투신한 믿음과 소망의 증인이었으며,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음에도 이사악을 낳았다. 이스마엘인들의 조상인 하가르는 이 성조 부부에게 쫓겨나지만 하느님의 도움을 받는다(16장과 21장). 속고 속이는 야곱은 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존재와 이름까지 바뀌는 철저한 변화를 맛본다(32장). 또한 그의 아내 레아와 라헬은 몸종들과 함께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원을 이룬다(29─31장). 요셉은 형제들에게 배반당하나 결국 그들의 구원자가 되며, 대사제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또 다른 문화 속에 동화될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의 운명은 무엇이든지 공동선에 기여하도록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위업을 드러낸다.

다양한 주제와 인물들을 담고 있는 창세기는 성경의 세계에 들어서게 하는 관문 역할을 하며, 이 세계 앞에서 신앙인들은 물론 비신앙인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